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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uiRTANnQ0kU


오늘은 성경이 죽음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많은 말씀 가운데 네번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첫번째의 내용은 인간의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은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부분인데 이러한 인간 사후에 대한 것은 오랜 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프쉬케라는 단어는 영혼이란 뜻으로 해석이 되는데 이 뜻은 생명 또는 생명을 소유한 것, 살아 있는 생명체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프쉬케라는 단어가 죽음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는 인간의 한 측면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 28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던져 넣으실 수가 있는 분인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몸은 죽을 수 있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렇다면 죽은 자들의 영혼은 어디에 존재하게 되며, 어떠한 상태로 있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신적 사고는 구천을 떠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천이란 불교 용어로 땅속 깊은 밑바닥이라는 뜻으로 죽은 뒤에 영혼이 돌아가는 곳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몸이 죽은 후에 영혼이 떠돌아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은 육체의 죽음 이후에 그들의 영혼이 두 장소에서 존재하게 된다고 합니다. 첫번째의 장소는 마태복음 102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옥이라 불리우는 장소입니다.

시편 9415절을 보면 스올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심판과 형벌의 장소로 앞서 지옥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 전제에서 동일하게 가르쳐지고 있는데 누가복음 1623절을 보면 부자의 몸이 죽은 후에 그의 영혼이 간 곳이 음부라는 곳입니다. 이 음부라는 단어는 하데스라는 헬라어로 스올과 지옥이라는 헬라어 게헨나와 함께 고통과 형벌을 받는 장소로 상징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몸이 죽은 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식의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죽은 후의 상태 즉 중간 상태라고 부르는 기간 동안에 비록 몸이 없는 상태이지만 의식이 있는 상태로 존재하게 되며, 어떤 이들에게는 큰 고통의 기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9절은 이러한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하여 주는데 베드로후서 29절을 보면 불의한 자에 대하여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심판 날까지 지킨다는 의미가 몸이 죽은 후의 상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이 죽은 후에 영혼은 무의식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벌을 받는 다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형벌을 받는 것이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형벌을 받기 위해서는 그 형벌을 받는 영혼은 반드시 감각이 있어야 하며, 고통을 느껴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 영혼은 아무런 감각이 없거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사후의 문제에서 우리에게 소망이 있고 아직 유익한 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육체가 죽음에 이르기 전에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형벌 아래 있게 되는 이들은 육체의 죽음을 맛본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이들은 불의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경건한 자는 주님께서 시험에서 건져 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형벌 아래 두어 심판의 날까지 고통 가운데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후의 두 장소에 대한 결정은 바로 경건과 불의라는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사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 깊이 두려워하며, 공경하며, 존귀하게 여기며, 그분 말씀에 합당하게 살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을 말합니다. 말에서나 행동에서나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사는 삶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반드시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며, 경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살펴볼 것은 불의한 자의 몸이 죽은 후의 상태가 아니라 경건한 자의 죽은 후의 영혼의 상태에 대하여 입니다. 그들이 형벌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끝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고린도후서 51절을 보면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란 육체를 가리킵니다. 즉 육체가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어 그곳에서 거하게 될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영혼은 형벌을 면하는 것만이 아니라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서 거하게 될 것인데 육체는 땅에 묻힌바 되었기 때문에 영혼은 영원한 집에 거하게 될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때는 아직 영혼만이 존재하게 되어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복된 상태이며, 평안을 누리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계시록 1413절을 보면 [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는데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들이 이러한 복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면 그들이 행한 일들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쉰다고 하는데 이 수고가 가리키는 의미는 크게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이 수고를 그친다고 할 때에 인간이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으려는 모든 노력에 대한 것으로, 신자에게 있어서는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모든 수고가 이제 마쳐진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 끝없는 죄와의 싸움이나, 육신의 소욕에 대한 싸움들이 그치게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수고들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경험하게 되는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들을 가리키며 이제 이 세상의 삶의 방식과 방법에서 벗어나 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간 상태의 또 다른 부분은 이 때에 주님과 함께 있던 영혼들은 마지막 몸의 완성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11절을 보면 [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마지막 날에 신자의 영혼은 영혼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몸이 살아나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처럼 우리의 몸도 다시 살아나게 하셔서 이제 몸과 영혼을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주님과 함께 있으며 이 날을 기다리는 상태로 몸의 부활을 고대하며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죽은 신자들의 영혼이 고대하는 몸은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러한 몸이 아니라 다른 몸을 입게 될 것인데 고린도전서 1553-54절을 보면 [고전 15:53-54]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여기서 썩을 것은 현재의 몸이며, 썩지 않을 것은 새로 입게 될 새로운 부활의 몸인 것입니다. 이 몸이 가진 특징은 첫째로 지금과 같이 죄의 욕구와 욕망이 없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몸의 특징은 범죄하기 전의 첫 사람인 아담의 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몸이 부활할 때에 입게 되는 새로운 몸은 첫 사람 아담보다 더 나은 몸인데 둘째로 이 몸은 죄를 지을 수 없는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아담은 죄는 없으나 죄를 지을 수는 가능성이 있는 몸이었지만 신자가 부활 후에 입게 될 새로운 몸은 죄를 지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완전히 새로워진 몸이 될 것입니다. 신자의 죽은 후의 영혼은 이것을 기대하며 지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신자의 죽음에 대하여 가르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자의 죽음은 공허한 것도, 의미 없는 것도, 무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신자의 죽음은 주님께로 가는 것이며, 새로운 몸을 입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며, 죄에서 벗어나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사는 것입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망이나 곡하는 것이나, 질병이나, 슬픈 것이 없는 상태에서 완전한 복락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불의한 자들의 경우에는 죽음은 여전히 두려움이며, 공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도 인생의 문제로 인하여 슬픔과 고난 가운데 살다가 죽어서는 예비 형벌 가운데 슬피 울며 이를 갈며 고통하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는 영원한 불못에 던져져서 꺼지지 않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듣는 자들에게 돌이킴을 주기 위함 이며,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 임을 깨달어야 합니다. 위협이 아니라. 초대이며, 생명을 주시기 위함 임을 깨닫고 부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 길 부탁드립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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