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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S3yuU-dP9_o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시는데 그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분자의 중요한 목표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2절을 보면 온전하게 한다는 말은 골절되거나 위골 된 뼈를 교정하는 것으로 회복하게 하여 머리의 뜻대로 움직이며 지체의 용도에 따라 사용될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 직분자들은 그들을 위한 봉사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봉사란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바르게 전하며 가르치는 일이며 교훈하며 모범을 보이는 일들이 이에 해당하는 일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기능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인식하게 하고 그 지체로써 감당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제 13절을 살펴보면 13절 말씀의 중요성은 첫 번째 단어로부터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번역상 이 단어가 맨 마지막에 번역이 되어서 그 의미가 약해집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우리가 어디까지 이른다는 말이 첫 번째 단어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이르기까지 라는 말에서 이르다는 말은 어디에 도달하다 라는 뜻으로 향하는 방향성과 더불어 도착해야 될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향과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입니다. 여기서 온전한 이란 뜻은 성숙한, 완전히 발전한, 완전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직분자의 직무의 대상은 성도입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하여 혼동하거나 오해에 빠지면 안됩니다. 이것이 사람을 섬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교회로써 머리이신 주님을 닮게 할 뿐만 아니라 머리의 뜻과 목적과 계획에 순종하여 몸으로써 바른 기능을 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야 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또 다른 목적은 교회가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비하기 위해서 입니다. 에베소서 414절을 보면 첫째로 온전하지 않게 되면 어린 아이 상태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상태가 비유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속임수 놀아 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간사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온갖 세상적인 가르침이나 세속성에 대한 것들이 들어와 교회를 요동치게 하며, 쓰러뜨려 교회를 교회 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교회의 온전함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며, 그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직분자들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온전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되는가? 에 대한 내용이 바로 13절의 말씀으로 첫번째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두 실행과제에서 우리가 다 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여기에 예외가 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에 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지만 사실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닌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의 희생과 헌신적 정신을 믿는 자들도 예수를 믿는 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류애적인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인류애적인 사랑이 아니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쏟아 부으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믿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필요를 도와 주시는 돕는 분으로만 믿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 하나됨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완전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지적이나 이해를 초월한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보다 더 깊고 심오한 것이며 경험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다른 구절을 봅시다. 에베소서 1 17절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입니다. 알게 하는 것이 인간 스스로에게서 난 지식과 이해에 근거한 것이 아님은 바로 이 앎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는 분을 통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으로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영광의 아버지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셔야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은 오직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이러한 앎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직분자들이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적용에 대한 것은 바로 나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끊임없이 전하며 가르치며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하여 우리가 누구를 믿으며 무엇을 믿고 있는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사람이 만들어 내고 고안해낸 예수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로 섬기며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기를 위하여 애를 써야 합니다. 직분자들은 끊임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무릎을 꿇는 자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도록 하는 일이 직분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고 저들의 생각을 바꿔주시고 새롭게 해 달라는 매달림이 있어야 합니다.         직분자들이 하나님께 무릎 꿇는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세속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직분자들이 자신의 일에 취해 있고 성도를 돌보는 일을 하지 않고 책임과 의무에 게을리 할 때에 교회는 잠을 자게 될 뿐만 아니라 세속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빠지게 되고 영적 무기력에 빠져 교회인지 아니면 친목 모임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직분자들이 일어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직분자들이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교회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부디 우리 교회가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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