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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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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https://youtu.be/6hr0byqyE-0


사도신경이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신 것을 고백한 후에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들을 모두 생략하고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이 중요하지 않음이 아니라 모든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의 목적이 바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신경 가운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은 바로 예수님의 비하 즉 낮아 지심에 대한 내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입니다. 고백 가운데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는 믿음의 고백이 무엇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이 고백이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이 본디오 빌라도에 의한 것이다 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실과 다르지 않은가 라는 의문들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영문 성경을 보면 under 라는 표현으로 이는 예수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치세 즉 다스리고 있는 시기에 고난을 받았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바로 그의 치세로 통치 기간 중에 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예수님은 재판장 본디오 빌라도의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첫째로는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53 9절을 보면 예수님은 강포를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포란 폭력이나 그에 따른 범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셨습니다. 또한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습니다. 둘째로는 그분이 이 재판을 통하여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죄가 증명되거나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이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였으며, 그러한 그들의 악함이 이 재판 과정에서 완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재판관으로 세운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떠한 죄도 찾지 못합니다.

        셋째로는 이 재판이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의 구원에 대한 확증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러한 세상의 재판관과 재판에서 정죄를 받게 하신 것은 이후에 있을 하늘의 재판에서 아무도 핑계하거나 자신의 죄를 변호할 수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세상의 재판관에게 정죄를 받으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사셨던 모든 기간에, 특히 생의 마지막 시기에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의 몸과 영혼에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은 유일한 화목제물로 고난을 당함으로써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원하셨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습니다. 라고 합니다.

        답변의 첫 부분을 보면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사셨던 모든 기간에 그리고 특별히 생의 마지막 시기에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의 몸과 영혼에 짊어지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셨던 모든 순간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만으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셨던 모든 삶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되게 하시려는 순종의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 19절을 보면 여기서 순종하지 않은 한 사람은 아담을 가리키며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 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의인이 되게 하셨는가 하면 그의 순종하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4 4-5절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며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율법에 순종하여 완전하게 지키심으로 인해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 되어 우리의 의가 되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뿐이라면 지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곧바로 골고다로 가시는 것 만으로도 구속의 성업을 달성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보듯이 그리스도께서 여자에게서 나신 것은 죄 가운데 잉태되고 살아가는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말씀들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실은, 우리의 칭의에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생에 걸친 완벽한 율법의 순종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전가 되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 된 이중전가의 사실이 우리 칭의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 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사셨던 삶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가를 깨닫게 해 주시는데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우리의 의로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만 됩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 여전히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다고 나의 양심이 고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습니다. 또한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여전히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양심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나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하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지상의 삶이 얼마나 우리의 구원에 필수적인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신 주님께 감사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모든 삶은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사 라고 할 때에 주님의 지상 생에 뿐만 아니라 생의 마지막 시기에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함께 내용을 알아 생각하며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생의 마지막 시기에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의 몸과 영혼에 짊어지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교리는 인간의 죄가 주님의 신성에 쏟아 부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써의 주님은 신성은 죽거나 더럽혀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신성만이 아니라 인성까지 함께 가지고 계셨기에 주님의 인성 즉 몸과 영혼 모두에 인간들의 죄가 쏟아 부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짊어 지고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분이 신성을 함께 지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의 신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 그의 인성에 짊어지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죄의 무게를 견디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유일한 화목제물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영혼 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 모두다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에 죄가 완전히 죽는 다는 것입니다. 현재 죄와 우리의 상태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아직 우리에 대하여 죽지 않고 살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 몸을 입게 되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을 뿐만 아니라 죄 또한 우리에 대하여 완전히 죽는 새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새 몸을 입고 우리의 몸이 부활하게 되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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