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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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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https://youtu.be/Ss5K2g_Q0Us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사도신경의 두번째 부분이 성자 하나님에 관한 부분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는 것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달리 돌아가신 것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하는 궁금함 입니다. 마태복음 27 22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것은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형을 당하는 판결을 받으시는 과정 속에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유대인들의 강력한 요청과 요구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유대인의 모함에 의해서 억울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0 18-19절을 보면 주님은 이미 자신이 어떻게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이 부분을 좀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10 17-18절을 보면 주님은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죽음은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없다는 것에서 누구도 주님의 생명을 주님의 허락이 없이는 빼앗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잘못된 가르침 중 하나는 어떤 이들은 사단이 유대인들을 충동질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였기 때문에 사단이 예수님의 생명을 빼앗은 것으로 생각하며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으며,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말하는 것은 사단이나 그 누구도 예수님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주님은 직접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즉 내어 놓으신다는 자신의 의지가 담긴 표현을 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려 했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고 한다면 도대체 십자가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이며, 누가 인도한 것입니까? 답변을 말씀 드리자면 십자가의 죽음은 성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분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성부 하나님의 뜻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뜻에 우리 주님은 순종하셨으며, 기쁘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려 놓고 드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라고 외친 유대인들은 죄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으며 죽이는 일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였으며, 악을 행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내셨고,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유대인들은 질투와 시기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십자가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므로 그가 십자가에 달리심은 내게 임한 저주를 대신 받은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게 됩니다. 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돌이나, 칼에 의해서 죽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가 있는 그것은 십자가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내게 임한 저주를 대신 받은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하여 나는 믿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는 말씀을 고백할 때마다 그분의 죽으심은 나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임을 나는 확신하며, 믿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나의 죄로 인한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으시도록 요구할 수 밖에 없으며, 주님은 내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음 가운데 있을 때에 이미 나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이미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셔서 나의 죄로 인한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확신하며 믿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셨는가를 설명하는 해석의 열쇠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죄인들의 형틀 이라는 의미로 설명하고 이해합니다. 그 예로 십자가는 로마의 흉악한 죄인이 사형을 당하는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로마에 의해서 아주 흉악한 죄인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죄인으로 죽으셨기 때문에 죄 없으신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의가 된다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는 로마가 정하며, 의미하는 십자가 형으로써가 아닙니다. 로마가 정한 십자가 형은 극악 무도한 죄인을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한 장소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예수님을 아주 극악 무도한 죄인으로 여겼으며, 그렇게 죽으셨다는 것이 우리의 죄가 얼마나 극악 무도하여 십자가 형을 받을 만큼 악독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이며,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바라보는 십자가는 극악 무도한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1:23절을 보면 [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기 때문인데 왜 나무에 달린 시체가 땅을 더럽히게 되는가 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일반적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 13절을 보면 [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 구절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 저주는 율법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율법을 범한 자들은 이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서 율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은 모든 율법을 어긴 자들을 고소하는 고소자인 것입니다. 타락으로 죄의 지배아래 놓여 있는 인간은 모두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저주는 죽음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 죽음의 방식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나무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하는 이유와 그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내며 드러내시고자 하시는 것은 바로 인간은 사람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상태에 놓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지킬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기에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저주는 모든 인간을 나무에 달려 죽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받아 마땅하며 당면한 저주에서 건져 내시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2 14절을 보면 이 부분을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모든 인간들에게는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이 있습니다. 거스린다는 말은 대적하는 것으로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아 버림으로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모든 죄책에서 자유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속에서 자유를 얻었음을 확인하며, 내가 이제 복된 자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확신하며, 고백한다면,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우리는 마음은 뜨거워져야 하며, 감사함이 넘쳐야 합니다.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감정이 죄와의 싸움으로 인하여 때론 무뎌지고, 덤덤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러한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흐르도록 부단히 노력하여 우리의 감정과 정서가 이런 귀한 복음에 대하여 메마르고, 무뎌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부디 주님의 복음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흘러 깊은 감사와 찬송이 주님께 올려지기를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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