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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4번에 걸쳐서 신명기 22장과 23장의 말씀들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번째의 내용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없는 자연인이 가지는 삶의 자세와 태도에 대하여 입니다. 민수기 22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을 나온지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모암 평지에 진을 치게 된 것입니다. 다음절을 보면 십볼의 아들 발락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사람은 모압 왕이었습니다. 2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하였던 것은 그들과 전투를 해서 이겼으며, 무너뜨렸으며, 쫓아 내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모압왕 발락이 보았던 것입니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땅을 점령한 것을 보았을 때에 그는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위협을 느꼈습니다. 3절에서 모암이 심히 두려워하였다라는 표현은 2절에서 바락이 보았다는 것에 이어서 이제 모압 백성들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며 공포감이 확산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해결할 수 없는 잠재된 두려움과 공포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번민입니다. 번민이라는 표현은 마음이 괴로움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연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연인이 인생을 사는 방식은 주변의 상황과 환경에 쉽게 반응하고, 쉽게 동화되어, 매이게 되며, 그것에 이끌려 삶이 불행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발락과 모압 사람들의 이러한 행위들이 불신과 쓸데 없는 걱정이며, 불안이라면 이해가 되십니까? 어째서 그렇습니까? 신명기 228-29절을 보면 이 말은 모세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전달한 말인데 헤스본 왕 시혼은 아모리 사람입니다.

모세는 아모리 사람들에게 요청하기를 돈을 받고 양식을 팔라고 합니다. 그리고 돈을 받고 물을 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냥 걸어서 그들의 땅을 지나가게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공격하거나 그들의 땅을 정복하거나 탈취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단지 요단을 건너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을 가려면 너희의 땅을 지나가야 하니까 허가해 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힌트가 등장하는데 세일에 거주하는 에서 자손과 아르에 거주하는 모압 사람들이 내게 행한 것 같이 하라는 말입니다. 즉 이미 모세는 모압 사람들과 한번 대면하고, 의도를 전달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땅을 지날 때에 공격할 의사가 없으며, 단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 이르기 위해서 걸어 지나가는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신명기 28-9절입니다. 모세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즉 모압 땅을 지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와 싸우지도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이유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의 교제를 통하여 모압은 이스라엘이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가기 위하여 지나가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발락과 모압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하신 것을 믿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 땅에 거할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인 롯을 생각하심으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다는 것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왜 입니까? 왜냐하면 발락과 모압 백성들은 보이는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자연인의 삶의 방식은 그들이 보고 느끼는 것에 지배를 당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이 이들과 다른 점은 보이는 것에 현혹되거나,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거나, 보이는 것에 지배되어 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자연인과 신자의 삶의 방식과 사고가 어떻게 다른 지를 모압왕 발락을 통하여 보게 되는데 민수기 225-6절을 보면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의 중요한 내용을 생각해야 하는데 첫째로 하나님이 없는 자연인의 사고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내가 라는 단어가 5섯번 등장합니다. 자신이 모든 일에 중심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연인의 특성입니다. 언어는 생각의 표현이며, 생각은 삶을 만들어 냅니다. 즉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나를 위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나를 위하여 나의 대적과 싸우시고 나를 위하여 승리하셨으며, 나의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며, 성령을 통하여 내 안에 역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신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분을 위하여 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여기에 중요한 한 단어가 나오는데 혹 이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혹 이라는 단어는 완전한 확신의 단어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혹이 그럴수 있으려면 전제 조건은 그가 바라는 발람이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혹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자연인의 믿음과 신뢰는 자신의 노력과 인생에서 우연이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불리는 것과, 사람으로부터 오는 도움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세상을 살면서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모든 좋은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주심을 믿고 삽니다.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인생에서 좋은 일들과 좋은 것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어주신 은혜의 결실이며, 나를 돕는 주변의 선한 사람들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시는 도움의 손길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복된 길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발락은 사람을 의지함으로 결국 그는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연인의 생각은 사람이 복과 저주를 줄 수 있다고 믿는 다는 것입니다. 사람 자신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이 복과 저주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실제로 복술자인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조정할 수 없으며, 자신이 복과 저주를 주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복과 저주를 스스로 조절하며, 저주를 피하고, 원하는 복만을 얻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인간의 운명이나, 복과 저주는 결과 인간이 조절하며, 통제하며,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과 저주를 주관할 수 있다고 믿는 발락과 그것을 위해 함께 하는 발람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들의 인생이 파멸에 처하였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이외에 누구도 우리에게 복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주 할 수 없으며, 그 저주가 실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야 해야 할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저주 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발락과 모압의 멸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지배된 그들의 마음의 이끌림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오히려 행함으로 화를 자초하며, 멸망을 자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연인들의 삶이 왜 심판을 자초하는지를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과 삶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자연인의 삶의 방식이 자기 중심적이며, 자신의 노력이나, 운이나, 사람의 도움에 의지하는 것인데 반하여 우리는 결코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 살지 말아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복과 저주는 바로 유일하신 우리 하나님의 주권에 있으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진노에 손에 빠져 저주를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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