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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https://youtu.be/xEpGz9GMQ3M


누가복음 210절 말씀을 보면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미칠 영향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될 대상과 범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의 대상과 범위는 온 백성들입니다. 여기서 미칠 이라는 단어의 뜻이 임할 이라는 뜻으로 온 백성에게 임하는 즉 영향을 받게 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로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첫째로는 인간들이 이제껏 경험하거나 체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소식일 뿐만 아니라, 기대할 수도 없으며, 일어나리라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 소식이야 말로 인류 전체가 그동안 목말라 하며, 애타게 찾던 것일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새로운 소망을 주는 소식일 뿐더러, 인간의 삶 전체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으며, 새롭게 할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그것이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두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첫째는 지극히 높은 곳 즉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그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분의 존귀와 위엄의 나타나고 드러남 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분의 힘과 능력은 어떠하신가 하는 것이 드러나게 됨으로 그분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높아 지셨으며, 피조물과 구별되는 창조주 되심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셔서 오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높이 드러내며, 나타내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충돌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의 성품이 전혀 손상되지 않는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손상되지 않는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시는 방식이었기에 하나님의 두 성품인 사랑과 공의가 온전히 만족되어지는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이루신 것임과 동시에 인간의 죄책을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시고 죄의 책임인 죽음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며,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를 볼 때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게 되며,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으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에 관하여 성경의 두 구절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 첫째는 로마서 5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증명 즉 입증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아니며, 편파적이거나, 또는 사랑받을 이유가 있어서 하는 자기 중심적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란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나, 조건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거룩하심이 죄에 대하여 격동 되시며, 죄를 대적하시며, 멸하시고자 하심을 알 때에 그것을 참으셨으며, 인내하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때에 멸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그의 사랑이 분노를 누그러트리셨다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326절을 보면 곧 이 때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신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자기 곧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나타내다 라는 말은 증명하다, 입증하다라는 뜻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포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하여 반드시 벌하시는 분이심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죄를 짓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디계시는가? 하나님의 진노가 어디에 나타났는가? 그는 계시지도 않으며, 심판하시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인간들의 죄를 담당하고 대신 죄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나의 죄에 대한 진노를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각 사람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지를 보라고 보이신 것입니다. 나는 살았고, 나를 구하지 않는 자들과 내 말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이 어떠한 죽음을 맛보게 되는지를 자신의 아들의 죽음 속에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리신 것이며,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누가복음 214절을 보면 여기서 우리는 두번째로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둘째로는 사람들 가운데에 평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는 사람들간의 평화를 조장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간의 불화나 다툼이나 전쟁을 종식하고 서로 화평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선이 아니며, 주된 목적이 아닙니다. 여기서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얻어지는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에게만 큰 기쁨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자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불신자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자라고만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 안에서 역사하는 죄는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안에 내재하는 죄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적의를 품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0절을 보면 [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원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원수되었던 상태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 즉 화평하게 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심각성은 인간 스스로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원수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그분께 순종하는 것을 미워하며, 그분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원수로 대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로 대하신 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거룩한 성품은 악을 멸하시고자 하시며, 본성적으로 악을 대적하시며,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간과 더불어 싸우는 것도 우리를 피곤하고 힘들게 하는 일이며, 멸망을 당할 수 있는 사안인데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하여 싸우신다면 어찌 그분의 진노를 막을 수 있으며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30-31절을 보면 [ 10:30-31]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시는데 만약 그 갚으심이 나를 향한 다면 그래서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간다면 이것 만큼 두려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안다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복되며, 감사하며, 기뻐할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큰 기쁨은 아무나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우리는 누가복음 210절에서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이라고 말하는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온 백성이란 모든 사람들로 번역이 되는데 모든 사람들은 제한 적인 사람들을 표현한 것으로 14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가운데 평화로다 라는 말씀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즉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호의를 얻은 사람들에게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나를 위하여 오심을 알고 믿으며,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 되어졌다면 이것이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내가 그분의 기뻐하심이 되심으로,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심으로 인하여 얻은 것이기 때문에 더 할 나위 없이 우리는 기뻐할 수 밖에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기쁨이자 즐거움이며, 영원히 부를 찬송이며, 노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시큰둥하며, 아무런 정서적 느낌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까? 마음에 그것보다 세상의 것이 더 크고 기쁘게 여겨지고 있다면 자신의 불행을 깨닫고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나의 것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더하여 달라고 구하셔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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