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고요하고 평안 하기를 힘쓰라

by YC posted Mar 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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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n_DDNi1D8EQ


25여년전 한국에서 청년들 사이에 크게 논쟁이 되어 이슈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들어서서 자신들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할 때에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무엇으로 세워야 하는가? 세상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논쟁이었는데 크게 두 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리에 올라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 위치로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건, 물질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이건 사람들이 흔히 성공이라고 말하는 자리에 올라 가야 무엇인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지론 입니다. 고지란 전투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를 가리키는 말로 산 정상을 말합니다. 적을 훤히 볼 수 있으며, 올라 오는 적을 쉽게 격퇴시킬 수 있는 위치입니다. 이와 같이 높은 곳에 올라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고지론에 맞서서 미답지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미답지론이란 미답지 즉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이나,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하며, 낮은 곳에서 남을 섬기고 돕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호응하는 이들은 심히 적습니다. 남들이 알아 주지도 않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스스로 처하고자 하는 이들은 적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이 이론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였던 이들이 50세가 되어 후회하며, 낙심에 빠지는 경우들을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럼 이 두 이론에 대하여 어떤 것이 옳은가? 어떤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인생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둘 다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 다함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삶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각기 다른 부르심의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어려운 인생의 길을 택하는 것이 경건함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여기는 것부터 문제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애쓰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마치 자신의 헌신과 노력으로 극복해 보려는 것 또한 다른 차원의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재능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직업으로서의 소명을 주셨기 때문에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 부르심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시편 131편 이 시는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이어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성전 순례 시모음집에 속해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가 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삶의 터전을 잠시 뒤로하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 험난하고 긴 여정 가운데 그들은 이 노래들을 부르며 서로를 격려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다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 여정 역시 하나의 순례길과 같습니다. 세상이라는 광야를 지나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 이 순례의 노래는 깊은 울림과 위로를 줍니다.

특별히 한 권위 있는 주석이 지적하듯이, 시편 131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깊은 영적 상태를 노래한 감사 예배 시입니다. 그 핵심은 바로겸손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만 피어나는심령의 평온입니다. 참된 평온은 세상의 조건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과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되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이제 시편 1311절을 보면 131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My heart is not proud, Lord, my eyes are not haughty; I do not concern myself with great matters or things too wonderful for me. 이 구절에서는 세 개의 동사가 나오는데 교만하다, 오만하다, 힘쓰다 라는 단어들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으며, 자신의 눈이 오만 즉 끌어 올리는 일을 하지 않으며,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먼저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만하다 라는 단어는 높다, 치솟다 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이 '높아졌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를 의지하는 내면적 교만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폈으며 이 마음의 내면 세계를 재정립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마음의 교만이란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모든 영적 문제의 시작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겸손의 출발입니다. 이처럼 교만을 버리고 낮아진 마음의 상태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가 싹틀 수 있습니다.

다윗이 두번째로 생각한 것은 자신의 눈에 대한 것으로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라고 합니다. 다윗은 관계 세계의 재정립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반드시 오만한 눈빛, 즉 다른 이를 향한 태도로 드러납니다. 오만한 눈은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낮게 여기는 멸시와,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여기는 독선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독소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는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며 사랑과 온유함으로 바라봅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정죄와 비판의 눈이 아니라, 긍휼과 이해의 눈이 됩니다.

세번째로 다윗은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다윗의 외부 세계를 향한 재정립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넘어서는 일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큰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롭고 기이한 일을 뜻합니다. 이는 정당한 노력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여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탐욕을 부리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모든 야망과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2929절을 보면 [ 29: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The secret things belong to the Lord our God, but the things revealed belong to us and to our children forever, that we may follow all the words of this law.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일이란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들은 우리가 알아야 하며,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속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추어진 일들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어떤 일들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다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은 바로 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교리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 어깨에 짊어지고 스스로 내 인생의 주권자가 되려는 그 처절한 불안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결코 무기력한 체념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주권자께 내 삶의 운전대를 기쁨으로 내어드리는 적극적이고도 평안한 신앙의 결단입니다.

1절에서 교만을 내려놓는 철저한 자기 부정을 고백한 다윗은 2절에서 그 결과로 찾아오는 놀라운 영혼의 평온을 노래합니다. 시편 1312절을 보면 [ 131: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But I have calmed and quieted myself, I am like a weaned child with its mother; like a weaned child I am content.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라고 합니다. 이 평온은 결코 우리의 노력이나 다짐, 혹은 좋은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1절의 겸손한 자기 포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설 때, 위로부터 주어지는 거룩한 선물입니다.

다윗은 이 '심령의 평온'을 설명하기 위해 '젖 뗀 아이'라는 아름답고도 심오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유대인들은 3살부터 아이들이 젖을 떼게 한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성숙한 신앙이 무엇인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가르쳐 줍니다. 첫째로는 욕구로부터의 자유 입니다. 갓난아기의 신앙, 젖먹이 신앙은 시끄럽고 분주하며 끊임없이 요구하는 신앙입니다. 배고픔이라는 즉각적인 본능에 따라 울고 보챕니다. 아기에게 어머니는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수단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나의 문제 해결사이자 소원을 들어주는 우주적 해결사로만 여긴다면, 우리는 영적 갓난아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젖 뗀 아이의 신앙은 다릅니다. 더 이상 젖을 갈구하며 소란을 피우지 않습니다. 대신, 어머니의품 그 자체에서 만족과 안정, 그리고 깊은 사랑을 누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성숙한 신앙입니다. 문제 해결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기뻐하는 조용하고도 깊은 만족의 상태입니다.

둘째로는 절대적 신뢰와 안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서 누리는 평온의 본질은 어머니에 대한 완전한 신뢰에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머니가 자신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며, 모든 필요를 공급해 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그 품 안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깊은 안식을 누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생 전체를 다스리시는 그분의 절대 주권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는 세상의 어떤 풍파와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하려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고, 모든 것을 아버지의 손에 맡길 때 비로소 참된 평강이 찾아옵니다.

결론적으로 '젖 뗀 아이'의 평온은 모든 것을 포기한 체념이나 무기력한 상태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안전하고 능력 있는 분의 품 안에서 모든 것을 맡기고 누리는 충만한 신뢰의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평온을 우리의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시편 131편을 통해 참된 평온에 이르는 길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교만을 내려놓는 철저한 자기 부정(1), 하나님 안에서 젖 뗀 아이처럼 누리는 영혼의 평온(2)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 안에 깃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며, 우리의 마음과 눈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교만한 마음과 오만한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감당 못 할 큰일을 좇으며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의 범위를 넘어, 끝없는 야망의 짐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을 필요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젖먹이 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기억하십시오. 이 시편은 성전을 향해 나아가던 순례자의 노래였습니다. 이 성전 순례 시편들이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주제는 바로성전 중심의 신앙입니다. 이 노래들은 우리에게 인생은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영원한 진리를 힘주어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이 노래들은 우리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과 그의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갈 때에만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종말론적 승리와 구원의 희망을 굳게 붙들고 살아갈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라는 순례길에서, 우리가 머무는 가정과 일터가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이 되고, 우리의 모든 삶의 계획과 목적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바로 설 때, 비로소 시편 131편의 '젖 뗀 아이와 같은 평온'이 우리의 삶에 실제가 될 것입니다. 교만의 짐을 내려놓고,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복된 순례자들이 다 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