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속죄의 필요성 5

by YC posted Jun 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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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필요성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은 속죄에 대한 대속적 견해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공의를 손상시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죄한 자를 벌하는 것은 불의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무죄한 자가 자원하여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그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켜 벌해 달라고 요청하였다면 여기에는 어떤 불의도 없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의 영원하신 합의를 통해 내려진 위대한 결정이었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말씀하셨음, 성부 하나님은 그에게 육체를 제공하셨습니다. 완벽한 합의가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불의도 없는 것입니다.

        속죄에 대한 대속적 견해가 하나님의 사랑을 손상시킨다는 주장은 사람들은 죄를 용서하기 위해 유화책으로 피를 요구하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하나님인가 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이 용서하시기 위해 값을 요구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손상시킨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님은 거룩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위대하고 영원하 속성들은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전에 주장되었던 가르침은 속죄에 대한 대리적 형벌의 견해는 사도 바울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일 대리적 형벌이 진실이었다면 우리 주님도 물론 이것을 가르치셨을 것인데 이 개념은 오직 서신서에만 등장할 뿐 복음서에는 나오지 안는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옳지 않은데 그 이유는 주님이 친히 마태복음 2028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대속물이라는 말은 속죄입니다. 죄를 사하시 위하여 죄 값으로 지불된 것입니다.

이것 만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마다 제자들이 매번 그 가르침을 오해했습니다. 요한복음 1612절을 보면 [ 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들을 때마다 낙심했고 반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어두워져 있었으며 그들의 가슴은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죽음의 목적과 이유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주님이 자신의 죽음의 이유에 대하여 구약 전체를 설명해 주심으로 제자들은 이 설명을 받아 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대속적 관점을 가르치시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