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르치는 대속의 교리에 대해 갖는 진정한 어려움은 사람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 중 일부를
잊어버립니다. 한 가지 측면의 성품만 강조하다 다른 쪽은 배제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깨닫는다면 그들이 가진 어려움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대속의 교리를 거부하는 자들의 경우에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대속적 형벌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기를 꺼리셨고, 하나님이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이 죽으셔야만 했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자기의 죽음과 피의 공로를 내세워야 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복음주의적 설교자들이 속죄의 교리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도록 설득하기 위해 우리 주님이 하나님께 탄원해야 했던 것처럼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를 지독한 웃음 거리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이 모든 것을 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가 답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도 의로우시며
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이 되시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구원의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일을 수행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벌하셨을 것이고 우리는 모두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속과 형벌의
교리를 접근하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주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자기 아들에게 지우시고,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벌하셔서 모든
고통을 당하게 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위대한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이보다 더 잘 보여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 놓은 도덕적 감화설이나
다른 이론들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속하여 우리가 초래했고
우리가 받아 마땅한 율법의 형벌을 당하시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