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의 문맥을 생각해 봅니다. 문맥을 살펴보는
것은 기록된 말씀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이해를 돕게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교리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기에 자세히 살피는 것은 우리의 신앙 유익을 위하여 필요합니다. 그 가운데 15절부터는 바울의 에베소 교회를 향한 기도가 시작되는
부분으로 문단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 가운데 19절부터의
내용은 바울의 세 번째 기도문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즉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19절 말씀은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his
incomparably great power for us who believe. That power is the same as the
mighty strength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강력한 힘과 능력을 소유하거나 얻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부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해석은 본문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본문을
잘못 이해할 수 있는가 하면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라는 말씀이 에베소 교회가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있어서
그것을 이제 소유하기 위해서 알고 구하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의 의미는 에베소 교회가 가지지 않은 어떤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그들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바른 인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17절에 바울은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I
keep asking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glorious Father, may
give you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so that you may know him better. 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구절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라고 합니다. 지금 이 말씀이 주어지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에베소
교회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까? 아직 복음을
접하지 않았나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까? 이미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라는 기도를 드립니까? 본문의 의미는 더 깊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우리가 시간을 내어 살펴보겠습니다만 하나님을 아는 것도 수준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도 겉으로만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분 정도로만 아는가 하면 나에게 막연히 좋으신 분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하면 자신들의 삶의 주인이며 인생의 목적이고 삶의 이유이신 분으로 감사와 감격가운데 경외감으로 섬깁니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삶의 자세를 만들어 냅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가 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말하며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에베소 교회를 신앙의 더 깊은 차원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바울은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I pray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his holy people, 라고 말합니다. 다시 한번 본문이 증명하는 것은 에베소 교회가 이미
소유하거나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구하는 기도가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눈을 밝히는 것은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데 보지 못하여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풍성한 자들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음 눈을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봄으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19절 말씀도 동일합니다. 다시
19절 말씀을 보면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his incomparably great
power for us who believe. That power is the same as the mighty strength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구하는 것이 그들 가운데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전혀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이나
경험하지 못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이미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단순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능력은 믿는 자들을 위해서 여전히 지속적으로 지금까지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19절 말씀에 바울이 소망하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능력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것을 바울이 기도한다는 것은 이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미 에베소 교회는 구원을 얻은 신자들이고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이미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꼭 알기를 바라는 것이 바울의 기도의 목적입니다. 신자가 더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꼭 알아야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바울의 기도의 제목이 될 정도로 신자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그들 안에 소유하고 있으며 경험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신자 안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을 표준새번역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힘으로 활동하는데 바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입니다. 신자들을
위하여 활동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한번도 그 활동을 멈추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활동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울이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19절 말씀을 보면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his
incomparably great power for us who believe. That power is the same as the
mighty strength 바울은 지금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있는데 그 능력을 그의 힘의 위력이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의미 없는
단어들을 장황하게 나열해 놓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힘의 위력 능력의 지극히 크심 이것은 바울이 알고 있는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은 힘의 강력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힘이 강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힘은 강력 즉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며 승리하는 힘이며 저항하는 것을 완전히 정복하는 힘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막힌 것과 닫힌 것을
여시며 거치는 것을 무너뜨리는 힘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힘의 강력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극히 크다는 의미는 비교 불가라는 뜻으로 훨씬 능가하는 하는 크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전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이 가지신 고유한 능력으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대적할 수 없으며 상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크신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힘의 강력이 성도들을 위해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비교할 수 없고 대적할 수 없는 전능한 하나님의 고유한 힘이 오직 그의 백성을 위해 그 힘이 사용되고
있으며 성도들 안에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도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으며 경험하지 못했으며
소유하지 못한 어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능력에 의해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에베소 교회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오늘 신자들이 신앙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이런 능력 안에
이미 들어와 있으며 그 능력을 받고 살고 있으며 그 능력의 보호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서나 나타나는 일이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이런 능력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나는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힘의 강력이라구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요 만약 그런 것이 지금도 신자 안에 활동하고 있다면 매일 쓰러지고 넘어지고 불순종하며
결심해도 안되고 다짐해도 안되고 매주 마다 죄짓고 회개하는 이런 반복적인 생활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도 신자 안에 역사하신 다면 내 신앙은 여전히 이 수준일까요? 그렇다면 나는 참 신자가 아닙니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이런 질문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나님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역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에베소 교회에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확신되지 않는 그 능력이 지금 너희 안에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성도 안에 지금도 역사하는 힘의 강력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좀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2장 1-5절 입니다. [엡
2:1-5]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바울은 에베소 교회 너희가 누구였지를 지금 설명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세상 풍속을 좆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 육체의 욕심을 따지 지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궁휼의 풍성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그 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공의로운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소유한 힘입니까? 우리의 능력입니까? 우리의 지혜입니까? 무엇이 이것을 우리에게 가능하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힘의 강력입니다. 그분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입니다. 이것 이외에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 능력이 어떻게 오늘 우리를 이끄시며 인도하십니까? 세상 풍속을 좆던 자들이 육체의 욕심에 따라 지내던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경우 넘어지며 쓰러지지만 그래도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고 와서 울며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붙잡으려 애를 씁니다. 그분의 말씀을 지키려고 힘을 내 봅니다.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압니다. 창피한 것도 압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 밖에 없음도 압니다. 왜요? 어떻게 이런 일들이 우리 안에 일어날 수 있습니까? 누가 이렇게
우리 마음을 바꾸었습니까? 나 자신인가요? 내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힘의 강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입니다. 그것이 나를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자꾸만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바라는 신앙의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너무나 약하고 보잘것 없고 때론 한심하고 때론 내 안에 정말 믿음이 있는가?
나는 정말 신자일까? 하는 의심과 불안함이 있지만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어떻게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를 사랑한다는 나의 고백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이 자리에서 앉아 주님을 찬양하는 것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서 왔느냐 너희의 고백이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 안에 있음이 아니냐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단에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너를 돕지 않으며 하나님은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힘의 강력을 무시하는 소리에 그분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조롱하며 불신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디에 있었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하십시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