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기도 외에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는 이유

by YC posted Jul 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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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5z1pN8lJdcY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세 명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내려왔을 때 벌어진 사건입니다. 마가복음 914절을 보면 [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When they came to the other disciples, they saw a large crowd around them and the teachers of the law arguing with them.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 오셔서 보게 된 광경은 큰 무리들이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리들 가운데는 예수님과 산에 함께 오르지 않은 9명의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과 변론을 벌이고 있는 서기관들 그리고 이들의 변론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변론하다는 말은 본래는 '함께 토론하다'라는 중립적인 의미였으나,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에서는 주로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로 논쟁하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됩니다.

   즉 단순한 의견 교환이 아니라, 서기관들이 제자들의 '실패'를 빌미로 그들의 권위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담긴 공격적 논쟁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변론의 시발점은 예수님과 세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가 변화산에 올라간 사이, 산 아래 남겨진 9명의 제자에게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변론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무능력을 목격하자, 이를 근거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던 권세가 가짜이거나 유효하지 않다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메시아적 표적 중 하나였습니다. 제자들의 실패를 통해 예수님이 과연 참된 메시아인지에 대한 신학적 시비를 걸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가복음 916-17절을 보면 [ 9:16-17]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What are you arguing with them about?" he asked. A man in the crowd answered, "Teacher, I brought you my son, who is possessed by a spirit that has robbed him of speech. 예수님께서는 논쟁중임을 아시고 무엇을 변론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KJV을 보면 이 질문은 서기관들에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대답을 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어렸을 적부터 귀신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귀신은 아이의 귀를 멀게 하고 또 입을 막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막았습니다. 또한 아이를 자해하게 하여 아이가 심히 말라가는 상황입니다. 아버지에게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938절에 보면 외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모든 상황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19절을 보면 [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You unbelieving generation," Jesus replied, "how long shall I stay with you? How long shall I put up with you? Bring the boy to me." 믿음이 없는 세대라며 책망을 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이 없다는 것은 작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음이 아예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불신앙적 상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책망의 대상은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시고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서 도와 주소서라고 청합니다. 마가복음 923절을 보면 [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If you can'?"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one who believes." 이 요청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나중에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비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하고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주십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나오는 장면은 집에 들어가서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묻는 장면입니다. 종용히 묻는 이유는 자신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알고 싶은 것은 왜 자신들이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가 입니다. 이 질문에 누가복음 929절을 보면 [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He replied, "This kind can come out only by prayer."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예수님 왜 우리들을 그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대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라는 것은 이 귀신은 기도 외에는 사람의 몸에서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종류의 원어적 의미는 종족, 가문, 종류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악한 영들 즉 귀신들 중에서도 특히 완악하고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 특정한 부류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할 때에 이 말은 이런 종류에는 이런 방법이 아니면 나갈 수 있는 법적·실제적 능력을 갖지 못한다는 강력한 부정적 제한을 둡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대답 속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기도가 능력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십니까? 본문을 읽으면 기도가 답이다 하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기도를 강조할 수 밖에 없고 기도를 많이 해야 이런 능력이 발생하는 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귀신은 기도를 통하여 나가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낼 때 기도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기도는 귀신을 쫓아 내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쪽으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 외에는 이런 귀신이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도구가 됩니다. 귀신 잡는 해병이 아니라 귀신 잡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성경이 말하고 싶어하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자꾸 놓치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들은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등장합니다. 드라큘라나 엑소시즘적 영화를 보면 귀신이 십자가를 보면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성수라고 해사 예배 의식에 사용된 물을 사용하면 귀신이 도망을 칩니다. 이런 것들이 보여주는 사상은 그것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능력이 있는 것은 십자가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까? 금으로 만든 것은 더 힘이 있고 은으로 만든 것은 조금 덜하고 그럽니까? 세례 줄 때 그 물 자체가 능력이 있습니까? 다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힘이나 능력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것에 능력을 부여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기도가 능력이고 힘인 것은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의미도 그렇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라는 의미는 귀신이 나가는 것이 기도라는 도구의 힘으로 기도라는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20절을 보면 [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But if I drive out demons by the finger of God,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upon you. 주님께서는 귀신을 쫓아 내실 때에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합니다. 즉 기도 외에는 이라는 말은 기도가 수단으로서 사용되어 귀신을 쫓는 방식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손을 힘입는 다는 의미로서 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이것은 너희들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기도 외에는 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이런 능력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외에는 이라는 말속에 들어 있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67절을 보면 [ 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Calling the Twelve to him, he began to send them out two by two and gave them authority over impure spirits.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송합니다. 그때 그들에게 주신 것이 귀신을 제어할 권세입니다. 이 권세를 받은 제자들은 마을을 다니며 많은 귀신을 쫓아 냈습니다. 이런 과거의 경험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는데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고 당연히 귀신이 나가리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귀신이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과 시비가 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사역을 위임했다고 해서, 그 위임 자체로 자동적인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역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의존과 기도를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정작 주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잊었던 것입니다. , 기도 외에는 이라는 말씀은 인간의 기술이나 과거의 영적 커리어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만을 신뢰하라는 철저한 자기 부인의 요청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한번 받은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자신들에게 지속적으로 존재 할 줄 알았습니다. 아니 이런 능력과 힘이 자신들의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귀신을 충분히 쫓아 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귀신을 쫓아 내는 능력은 자신들에게 나온 것도 자신들에게 속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자신들이 귀신들을 쫓아 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자신들 위에 역사하신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예수님의 책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자초지정을 들으시고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말은 믿음이 전혀 없다는 말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있는데 그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실을 더 명확하게 해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비잔틴 사본을 보면 29절에 한 단어를 첨가해 놓았습니다. [ 9:29] 이르시되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He replied, "This kind can come out only by prayer." 금식이라는 말로 이 사본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음식을 금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먹지 않는 다고 금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그냥 먹지 않는 것을 굶식이라고 합니다. 금식이라는 것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뜻을 두고 먹지 않음으로 벌어질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금식을 잘못 이해하면 생명을 담보로 하나님을 협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금식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적 유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심이며, 탐욕인 것입니다. 진정한 금식은 항복입니다.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다는 항복이요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행위가 금식입니다. 본문에서 기도와 금식 이 둘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기도하지 않고 얻은 것은 저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너무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곱씹으면 씹을수록 동의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고 얻는 것이 저주가 될 수 있습니까? 수고하지 않고 얻었는데 저절로 얻었는데 공짜로 얻었으면 축복이지 왜 저주입니까? 기도하지 않았는데 사업이 잘되는데 저주입니까? 기도하지 않았는데 병이 낫고 기도하지 않았는데 하는 일마다 잘되는데 축복 아닙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하지 않아서 얻게 되면 반면에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 즉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풍족히 잘 살고 있는데 왜 기도합니까? 넉넉한데 부족한 것이 없는데 필요한 것이 없는데 기도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얻은 것은 저주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더 이상 찾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을 좋은 신앙인 혹은 믿음 좋은 사람이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다른 사람보다 더 경건해 보이고 더 열심이 있어서 라면 그것은 잘못 아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신앙이 좋은 것은 하기 싫은 기도를 하는 수고를 감내했기 때문도 아니고 경건을 위해 애를 쓰는 노력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좋은 신앙 혹은 믿음의 사람인 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는 살수 없는 존재이며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심을 믿기에 기도하고 하나님만 바라기 때문에 신앙이 좋고 믿음이 좋은 사람인 것입니다. 기도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자가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인식하는 자 만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기도하라고 요청합니다. 이 요청은 단순히 여러분이 더 부유해지고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사업이 잘되고 다른 이들 보다 더 복 받으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누가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신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의 힘으로 살아 온 것도 살아 갈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여러분에 신앙이 생깁니다. 기도해야 여러분에게 믿음이 생깁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신앙이 좋아지리라 믿음이 성장하리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유는 기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얻은 것이고 받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불신앙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가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으로 온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다릅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내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코의 호흡 조차도 그분이 주장하시며 나의 세포 하나 하나를 세신바되고 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까지도 그분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여러분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이 교회가 저절로 혹은 어떤 사람에 의해서 되어지는 줄 착각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사람의 손과 능력으로 되어지는 줄 오해하게 되기 때문에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그분이 직접 이끄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믿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이 하는 줄 압니다. 교회의 외적 성장이 누군가의 고생과 노력으로 되는 줄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 그분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교회가 되고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 세워지게 된 줄 압니다. 기도는 내가 못합니다 라는 고백이며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