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com/live/0mKg_q5qimg
오늘 우리가 함께 듣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음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 입니다. 음식에 대하여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성경 전체의 음식에 대한 가르침과 그 변화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둘째로는 음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오늘날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a태도와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먼저 성경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음식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 앞쪽의 내용 즉 인간의 창조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 대로 지으신 인간들에게 주신
음식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9절을 보면 [창 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Then God said,
"I give you every seed-bearing plant 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and
every tree that has fruit with seed in it. They will be yours for food.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주시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먹거리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먹을 거리 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성경에서 '음식', '식량', '먹을
것'으로 번역됩니다. 문맥 속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물질을 뜻하기보다, '생명을 유지하고 지탱하기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라는 생명 중심적 뉘앙스를 강하게 풍깁니다. 원문을 좀더 자세히
보면 이 단어 '오클라' 앞에 히브리어 전치사(접두어) '레오클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문법적 구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히브리어
전치사 '레'는 ~를
위하여, ~가 되도록이라는 목적과 결과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 정확히 직역하면 "음식이 되도록",
"식량의 용도로"가 됩니다. 또한
앞의 동사 되리라는 미완료 성격을 지녀, 이 공급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식량이 될 것임을 법정적으로
선포하고 확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 음식을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공급 받아 생명을 유지하게 되며,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설명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물을 다스릴 권세(창 1:28)는 주셨지만, 동물을
먹을 권리는 아직 주지 않으셨습니다. 채소와 과일을 음식으로 지정해 주신 것은 모든 생명 물질의 주인은
나 여호와이며, 너희는 내가 허락한 테두리 안에서만 생명을 유지하는 대리 통치자이다 라는 사실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셔야만 살 수 있는 의존적 존재임을 식품법을 통해 한계를 지어주신
셈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의미는 아담과 하와에게 식탁은 매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는 은혜의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이 의미가 신약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후에
알아 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타락 후에 주어진 육식입니다. 창세기 9장 3-4절을
보면 [창 9:3-4]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Everything that lives and moves about
will be food for you. Just as I gave you the green plants, I now give you
everything. "But you must not eat meat that has its lifeblood still in it. 노아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고 합니다. 이것을 채소 같이 다 너희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신 이유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홍수 이후 극적으로
변화한 지구 환경에서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홍수 심판은 전 지구적인 격변이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땅은 황폐해졌고 기후
환경은 척박 해졌습니다. 에덴동산 시절처럼 풍성하고 영양가 높은 채소와 과일을 곧바로 구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인간의 수명과 생명력은 급격히 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기근과 척박한 기후 속에서 인류가 굶어 죽지 않고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단백질과 영양이 응축된 '동물의 고기'를 대안적 양식으로 허용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듬으시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적 배려이자 인류 보존을 위한 실천적 조치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주의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피째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식을 허용하시면서 하나님은 매우 강력한 제한 조건을 하나 거셨습니다. 바로 "핏째 먹지 말라"는 법입니다. 여기에는 인류의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한 고도의 영적 목적이 있습니다. 피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을 보면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For
the life of a creature is in the blood, and I have given it to you to make
atonement for yourselves on the altar; it is the blood that makes atonement for
one's life.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피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서 제단에 뿌려 그들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셨습니다. 피를 뿌림이 속죄가 되는 이유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속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 3-4절에서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은 피를 쏟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 되는 이라고 하며 생명이 피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의 고기를 먹되 피를 쏟아내고
먹으라는 것은, "네가 지금 다른 피조물의 '생명'을 희생시켜 네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번 기억하게
하려는 목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가르침은 무엇을 위한 목적인가 하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셨습니다. 피를 쏟음으로 인하여 그 피로 인하여 우리는 속죄함을 받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로 살게 하는가 하면 우리 주님의 피 즉 그분이 자신의 생명을 쏟아 죽으심으로 나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즉 주님이 나의 죄책 담당하시려고 생명을 쏟으심으로 나의 죄책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위하여 피에 대하여 먹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신약에서는 여전히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선지를 먹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피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 주님에 대한 모형으로 원형이신 주님께서 오셔서 이 일을 이루셨음으로 피에 대한
금지는 이제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레위기에 나타난 부정한 짐승에 대하여 먹지
말라는 가르침에 대하여 입니다. 레위기 11장은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8절을 보면 [레 11:8]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You must not eat their meat or touch their
carcasses; they are unclean for you.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러한 고기란 낙타, 사반, 토끼, 돼지 등입니다. 이러한
육류는 먹지 말라는 가르침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말도 안되는 해석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짐승들의 고기가
좋지 않다거나, 기름이 분해가 안 된다거나, 몸에 해로운
것이라거나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기들에 대하여 금하신 이유에 대한 위생에 대한
문제나, 고기 자체의 문제에 대한 문제로 이야기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짐승들을 누가 만드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짐승들을 만드신 후에 보기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정한 짐승이라고 금하신 것입니까? 레위기 11장에서 짐승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누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류 중에서 이스라엘을 '정한 백성'으로 구별하셨음을 식탁 위에서 날마다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시는 교육을 위함입니다. 매일 세 번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앞의 음식을 가려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맛있는 돼지고기를 안 먹지? 아,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부정한 짐승을 금지하신 것은 너희는
세상과 구별된 존재라는 정체성을 뼛속 깊이 새기기 위한 거룩함의 시각 자료인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4-45절을 보면 [레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I am the Lord your God; consecrate
yourselves and be holy, because I am holy. Do not make yourselves unclean by
any creature that moves along the ground.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to be your God; therefore be holy, because I am holy. 레위기 11장 44~45절은
레위기 전체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인 '거룩'의
본질과 목적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성구입니다. 음식에 대한 길고 엄격한 규례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은 이 모든 까다로운 법을 주신 궁극적인 이유를 이 두 구절에서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는 것입니다. 거룩의 어원적 의미는 원래 '잘라내다', '분리하다', '구별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피조물 및 죄와
완전히 '구별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것은, 자녀가 부모를
닮듯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역시 하나님을 닮아 세상의 죄악과 문화로부터 구별된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별을 훈련하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로 '매일 먹는 음식'을 선택하셨습니다. 식탁에서부터 구별을 연습하지 못하는 자는 삶의
거대한 영역에서도 거룩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약에서 음식에 대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마가복음 7장 19절을 보면 [막 7: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For it doesn't go into their heart but into
their stomach, and then out of the body." (In saying this, Jesus declared
all foods clean.)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러한 선언의 의미는 구약의 음식 규례는 참된 정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그림자
즉 모형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더 이상 외적인 음식을 통해 거룩함을 유지하려던 구약의 의식법적 의무는 교리적으로 완전히 폐지되고 성취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안식교등에서는 여전히 음식에 대하여 구별하며,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며,
스스로 음식을 통하여 경건하여 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8절을 보면 [고전 8: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But food does
not bring us near to God; we are no worse if we do not eat, and no better if we
do.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먹는가로 우리가 경건하거나 거룩해 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음식을
구별해서 먹는다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닙니다. 음식은 음식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음식을 대할 때에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4-5절을
보면 [딤전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For everything God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thanksgiving, because 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라고 합니다. 감사함으로 받는다는 말은 단순히 음식을
먹기 전 상투적으로 하는 식사 기도를 넘어선, 깊은 신학적·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받는다 의 원어적 은혜에서 유래한 말로,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를 인정하고 찬양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결혼을 금하고 특정 음식(고기 등)을 먹지
말아야 거룩해진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적 금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질 세계를 악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만물이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것'이기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은혜로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그 물질을
가장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성경적 문맥에서 감사는 "이 모든 것이 내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공급하심"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음식을 내 몸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통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이 물질은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셨고 내게 허락하신 것'이라는
성경적 확신 즉 말씀에 근거하여 먹을 때, 그 행위가 거룩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기도는 구체적으로 감사의 기도를 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앞에 두고 감사 기도를 드릴 때, 그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생물학적 섭취를 넘어 하나님과의
교제이자 예배가 됩니다.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행위가 기도를 통해 영적이고 거룩한 행위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세상 모든 만물을 '거룩하게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감사함'과 '말씀과
기도'가 빠진 섭취는 탐욕과 방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받을 때, 우리는 정죄감 없이 온전한 기쁨과 기독교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감사함으로 받는다는 것은 "모든
선한 선물의 출처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이 주신 자유를 찬양하며 기쁘게 누리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대할 때에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