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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타누가 한인 열린 교회 그리스도인으로 만물을 보는 관점

by YC posted Oct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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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만물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시각에 대하여 입니다. 세상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시각이 특별한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만물을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들 이라는 시각으로 바라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시각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만물을 볼 때에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이라는 관점으로 봅니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들 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봅니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것들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에 있는 말을 보면 로마서 8장 19절 이 말씀을 보면 [롬 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For the creation waits in eager expectation for the children of God to be revealed.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생각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피조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라는 단어는 창조물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은 번역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물이 고대한다고 할 때에 이 창조물은 모든 창조물이 포함되는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한다고 할 때 언뜻 생각하면 마치 아무것도 제외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사도 바울의 다른 표현을 주목할 때 분명해지는데 그런 의미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물이 고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한다는 말의 의미는 시적인 표현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앞을 쳐다 보는 것을 암시합니다. 다른 말로 해서 창조물이 고개를 빼고 머리를 쳐들고 최선을 다하여 무엇인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다 라는 말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창조물의 열심 있는 기대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창조물들은 고대하고 있고 게다가 열렬한 기대감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인데 왜 이것을 고대하고 기대하게 되는가 하면 로마서 8장 21절을 보면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that the creation itself will be liberated from its bondage to decay and brought into the freedom and glory of the children of God.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장차 올 영광을 이 열심을 가지고 기대하면 목을 길게 빼고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물들이 이러한 고대를 하며 기대하는 것에서 이러한 표현 속에 선한 천사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창조물들이 허무 한데 복종하는 것처럼 복종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한 천사들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탄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2절을 보면 [롬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as in the pains of childbirth right up to the present time.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선한 천사들은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천사는 피조물이라는 표현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은 타락한 천사들까지 내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천사들은 이 영광스런 날을 고대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심판의 날에 자기들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분명히 이 영광스러운 장차 올 것을 열심히 기다리고 있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누가복음 4장 33-34절을 보면 [눅 4:33-34]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In the synagogue there was a man possessed by a demon, an impure spirit. He cried out at the top of his voice, "Go away! What do you want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크게 소리를 질러 말하는데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라고 합니다. 즉 마귀와 그의 귀신들은 자신들이 세상 마지막 날에 영광이 아니라 멸해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목을 빼고 앞을 쳐다 보며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 관해서는 어떠한가를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 표현한 피조물 가운데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은 포함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 23절을 보면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Not only so,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eagerly for our adoption to sonship,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이 말씀은 그뿐 아니라 와 우리까지도 라는 말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라는 말은 피조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까지도 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이라는 용어에는 배제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피조물에 포함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그 사람들도 거기에 포함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인 즉 경건하지 못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 영광스러운 날을 고대하고 있지 않으며 기다리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들 안에 있는 본능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하거나 기다리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들을 배제시키고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또한 배제 시킵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 이성적인 피조물, 물질적인 피조물, 생물이나 무생물, 유기체나 무기체 같은 것들만 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것들은 동식물들을 의미합니다 채소, 꽃, 잔디, 강물, 산, 언덕 땅 덩어리 자체 그리고 눈에 보이는 하늘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 창조의 부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매우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비 이성적인 피조물들을 의인화 시켜서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러게 비 이성적인 것들을 의인화 하여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35장 1절을 보면 [사 35: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The desert and the parched land will be glad; the wilderness will rejoice and blossom. Like the crocus, 광야와 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라는 표현으로 광야가 어떻게 기뻐하며 사막이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다 의인화 한 것입니다.

이제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피조물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입니다. 로마서 8장 19절을 보면 [롬 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For the creation waits in eager expectation for the children of God to be revealed.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더 설명하자면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시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해서 우리 안에 행하신 일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우리의 영광을 입고 나타나게 될 때에 우리는 전시품이 될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 위대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미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는데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게 될 영광스러움을 피조물 또한 고대하며 우리가 그 영광 가운데 나타나길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셔서 우리를 모든 피조물 가운데 전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피조물이 목을 길게 빼고 열심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지금 이순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 세계에 실제적으로 해당되는 일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째서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을 이렇게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더 주목해야하는 교리를 대하게 됩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운명이 사람의 운명과 불가분해적인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운명과 전체 우주의 운명이 떼어낼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인간의 죄가 피조물이 현재 놓여져 있는 상태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0절을 보면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For the creation was subjected to frustration, not by its own choice, but by the will of the one who subjected it, in hope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무한 데 라는 것의 의미는 쓸모없는 것 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더욱 더 특별하게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어떤 것 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헛된 것, 쓸데없는 것, 텅빈 것, 바울은 피조물 전체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원래 의도된 대로의 기능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래 그것이 창조될 때 뜻했던 그 수준까지 이르지를 못합니다.

로마서 8장 21절을 보면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that the creation itself will be liberated from its bondage to decay and brought into the freedom and glory of the children of God. 피조물은 썩어진 상태에 있습니다. 썩어 졌다는 것은 물리적 부패, 사망과 멸망, 부패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부패한 고기 조각과 같고 오염된 고기 조각과 같습니다. 썩은 것은 불쾌합니다. 이렇게 피조물이 썩어 가고 있으며, 사망과 멸망에 굴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 노릇한다는 의미는 그 자체로서 피조물이 그 썩어짐에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를 구분하는 요점을 하나 보게 되는데 그것은 비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을 바라보고 인생은 아름답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피상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세상을 보고 모든 사물에서 나는 변화하고 썩어지는 것을 보노라 라고 말합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고 말합니다. 비그리스도인은 그러나 새로 태어난 아기에 대해서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비관론과 낙관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직시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 방금 태어난 아이를 향하여 죽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너무 비관적인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으로 향하여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게 한들 짧은 인생이라는 것이며 모두가 죽게될 운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에 대하여 말한다고 해서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필요로하며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로마서 8장 20절을 보면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For the creation was subjected to frustration, not by its own choice, but by the will of the one who subjected it, in hope 굴복하게 되었다는 단어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 동사는 부정과거로서 과거에 단번에 일어난 사건을 의미합니다 즉 어느 시점에서 피조물이 굴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굴복한 것이 자기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어떤 행동의 결과로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럼 누가 피조물을 허무한데 굴복하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을 보면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To Adam he said, "Because you listened to your wife and ate fruit from the tree about which I commanded you, 'You must not eat from it,' "Cursed is the ground because of you; through painful toil you will eat food from it all the days of your life.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 구절들을 보면 [창 3:18-19]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t will produce thorns and thistles for you, and you will eat the plants of the field. By the sweat of your brow you will eat your food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since from it you were taken; for dust you are and to dust you will return."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라고 합니다. 땅과 피조물이 인간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왜 피조물이 허무해졌으며, 왜 썩어감의 종 노릇하게 되었는가 바로 인간의 타락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을 때 이 세상과 피조물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시에 피조물들은 아름다웠습니다.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어떻게 아는가 하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뒤에도 그것은 우리가 오늘날 보는 바 대로 아름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광 가운데 나타나길 고대하고 있으며, 더 이상 썩어짐의 종 노릇하는 데서 벗어나길 원하며 원래의 목적과 용도에 바르게 사용되길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인간의 타락의 원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땅이 회복되기를 즉 하나님의 나라가 속이 임하시길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장차 올 영광을 고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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