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AdwoEZ4Nwwg
오늘은 성탄 감사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이 태어나심에 대하여 기념하며, 감사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이 날 일반적으로 성탄에 대한 말씀을 전하지만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중에
우리에게 즉 내가 아닌 우리에게 주신 명령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성경 말씀은 요한복음 15장 12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을
보면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계명 즉 주님이 주시는 명령은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가는 제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이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말씀에 대하여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깊이 고민해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첫째로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인데 왜 우리 주님은 명령까지 할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라고 명령을 받아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가족
간에 사랑할 때에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제자들은 남남이니까 서로 사랑하기가 어려우니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생각으로는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으니 하는 다툼을 하니까 서로 다투지 말고 사랑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명령은 모든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제는 주님이
이 명령을 하실 때에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명령을 주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둘째로 가져야 할 질문은 우리 주님께서 내 계명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라는 말씀을 왜 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라는 것은 사랑의 모범이 우리 주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사랑은 우리 주님이 보이신
것처럼, 그리고 그분이 하신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일 예로
요한복음 13장 1절을 보면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It was just before the Passover Festival. Jesus
knew that the hour had come for him to leave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오는 내용이 가룟 유다의 배신 입니다. 이런 말씀 속에서 우리는 주님이 사랑하듯이 우리도 이렇게 사랑하라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주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변덕스럽지 않게, 항상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압니다. 그래서
참으로 이러한 명령을 받을 때에 진심으로 이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면 이러한 사랑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로는 쉽게 사랑합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자신이 소유한 많은 것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 한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의 의미를 더욱 깊이 살펴 보아야겠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주님은 한 단어를 두 번 사용하시는데 사랑하다 라는 아가페라는 단어 입니다. 사랑이라는 헬라어는 세 개가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아가페와 필레오와
에로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에 대한 구분이 있어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그 의미에 따라 다르게 사용됩니다. 첫째로 에로스 라고
사랑이라고 번역되는 단어는 육체, 육체적 소원과 성적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에는 있지만 신약 성경에는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둘째로
필레오 라는 단어로 성경에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우정이나 애정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가족간에 서로에게 행하는 사랑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아가페 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필레오라는 단어를 두 번만 썼습니다. 그러나
아가페라는 단어는 30회나 썼습니다. 아가페의 의미는 필레오
보다 더 깊고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 합니다. 이에 대하여 좀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헬라어 사랑이라는 단어인 아가페와 필레오가 함께 사용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21장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장면이 나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대화는 예수님을 배신한 후에 베드로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만나 나누는 대화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을
보면 [요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When they had finished eating,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Yes, Lord,"
he said,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Feed my
lambs."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이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신다는 베드로의 대답 사이의 긴장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질문과
대답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 속에서 사랑과 베드로의 대답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가페 라는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가페를 쓰지 않습니다. 그는 필레오 라는 단어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곧 이어서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21장 16절을
보면 [요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Again Jesus said,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He answered,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Take care of my sheep." 여기에서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앞 절에서는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지 않고 단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앞 절에서는 이 사람들 즉 다른 제자들이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네 사랑이 더 크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가
라고 묻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 주님은 아가페를 사용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의 대답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역시 아가페를 사용하지 않고 필레오를 사용합니다. 지금 우리 주님의 물음과 베드로의 대답 사이에는 긴장감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세번째 예수님의 질문이 주어집니다. 요한 복음 21장 17절을 보면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The third time he
said to him,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was hurt
because Jesus asked him the third time, "Do you love me?" He said,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Feed my sheep.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근심하였고
그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놀라운
반전이 있는데 이제껏 아가페로 물으셨던 주님이 세번째에서는 아가페가 아닌 베드로가 사용하는 필레오로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여전히 필레오로 답변합니다. 이에 대하여 헨드릭슨 주석을 보면 베드로는 왜 아가페라로 물으시는 주님께
내가 주님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못하고 필레오로 말하는가에 대하여 그는 주님이 잡히시기 전날에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부인할지라도
나는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한 말을 스스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에 아가페라는 단어 대신에 필레오로 답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필레오 즉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필레오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는가 물을 때에 베드로는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라고 말하며 필레오의 사랑 조차도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베드로가 자신을 돌아보며 사랑 한다 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드러내시며,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이러한 내용 속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말하기를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욱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아가페 라는 헬라어 단어가 고전 헬라어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헬라 철학자들이나 시인들은 이 단어를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신약 성경에서 그리고 초대 교회에서 이 단어는 아주 관습적으로 쓰여지고 있고 바울의 서신서에서도 아가페가 많이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장이라고 말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경우에 사랑에 대하여
즉 아가페에 대하여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정의들을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랑에 대한 정의들이 왜 필요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헬라어는 헬라 사람들이 사용한 단어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고전 헬라어로 모든 문화와 철학과 놀라운 글들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던 아가페라는 단어가 새롭게 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즉 헬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 속에서 전혀 알지 못하던 어떤 새로운 것이 이 안에 담겨져 복음 속에 표현되고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혀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와 의미들을 가르쳐지고 알려져야 했던 것입니다. 아가페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설명하며 사랑을 설명하는 새로운 단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단어에 대하여 많은 정의를 하는 것입니다. 아가페를 신적 사랑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이 말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을 추구하는 의지적 행위이자 선택을 담아 내고 있습니다. 나의
행복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을 추구하며 이것이 단순이 감정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행동으로 나타나며 그 모든 선택들을 하는 행위가
바로 아가페인 것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15장 12절을 보면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My command is this: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you. 이 말씀을 교회 안에 새롭게 사용된 아가페라는 의미를 담아 해석하면 주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즉 상대방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라,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모든 선택이 상대방의 행복이어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바로 너희를 향하여 그렇게 본을 보였다. 나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너희의 행복을
위하여 이 땅에 왔고 너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또한 너희를 부활하게 하기 위하여 부활하였으며,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며, 곧 너희를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올 것이다. 나의 모든 선택에는 너희의 최고의 행복이 있다. 너희도 그와 같이
서로 사랑하라 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것이 명령으로 주어진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주님의 도우심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아가페라는 단어는 새로운 것으로 인간이 본성상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새롭게 정의하고 알게 하신 것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중생한 자들은 그들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이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며 이러한 사랑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