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b3_HmOFuknI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야곱이 20년 동안 섬기던 삼촌의 집을
떠나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발생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전체는 긴박한 위기의 상황이 야곱의
인생 가운데 다가 오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야곱은 20년
만에 그리운 고향집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금의환향이라는 플랜카드가 아니라 4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야곱을 맞으러 오는 형 에서에 관한 소식입니다. 분명한 것은 형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오는 것은 결코 환영하거나 축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그 소식을 듣고 심히 두려워 하고 답답해하며 죽게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7-8절을
보면 [창 32:7-8]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In great fear and distress Jacob
divided the people who were with him into two groups, and the flocks and herds
and camels as well. He thought, "If Esau comes and attacks one group, the
group that is left may escape."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한 이유는 20년 동안 고생한 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그리던 고향도 보지 못하고 자신과 사랑하는 아내들과
자녀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그는 여러 가지 벌어질 상황들을 생각해
내며 자신을 소유물을 두 떼로 나누고 형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소유한 짐승 중에서 세 떼를 만들어 그것도 한번에 하나씩 앞서 보내 형에게 보내
화가 난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합니다. 32장 9절을 보면 [창 32: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Then Jacob prayed, "O God of my father
Abraham, God of my father Isaac, Lord, you who said to me, 'Go back to your
country and your relatives, and I will make you prosper,'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만 의지 한다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한 후의 야곱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거나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기도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모든 것이
되어지리라 믿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한 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하며 기대한 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경우에는 그가 기도한 대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탈출구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기도한 후에 그는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자신의 계략을 짜는 것에 온 마음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2장 19절을 보면 [창 32: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He also instructed the second,
the third and all the others who followed the herds: "You are to say the
same thing to Esau when you meet him. 야곱은 둘째와 셋째 떼를 이끌고 가는 종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종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동사들은 다 강조형입니다. 즉 야곱은 신중하고 주의 깊게 그리고 단호하게 명령하며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에 실수나 지시에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하는 야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모든 종들의 입에 자신의 말을 넣어 주고 그것을 주지 시키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 짐승들의 떼는 야곱이
그 주인 에서에게 드리는 예물이라는 것입니다. 20절에서 이렇게 하는 이유가 나타납니다.
20절을 보면 [창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And be sure to
say, 'Your servant Jacob is coming behind us.'" For he thought, "I
will pacify him with these gifts I am sending on ahead; later, when I see him,
perhaps he will receive me." 이 구절이 보여주는 것은 야곱의 생각입니다. 야곱이 말하기를 이라는 의미가 야곱이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각은 야곱의 계획입니다. 그의 생각 속에서 예물을 자신 보다 앞서 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물로 형의 감정을 풀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 푼다는 말은 달래다는
뜻입니다. 즉 형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뇌물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서의 마음이 풀려서 자신을 받아 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 스스로 살 궁리를 하며 계획 짜고 묘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에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거나 의지하는 것은 이 구절들에서 찾아 볼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하는 묘수만 찾기에 분주한 야곱만이 나타날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할 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아닙니다. 그는 이제껏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행동과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24절부터 시작되는 얍복강에서 벌어지는 씨름은 그의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됩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창세기 32장 24절 말씀을 보면 [창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So Jacob was left alone, and a man wrestled with him
till daybreak. 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야곱의 씨름이라고 불려지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두 개로 나눈다면 하나는 얍복강에서의 씨름 이전의 야곱과 이후의 야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통하여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전과 다른 변화된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의 야곱은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어려움에 처하거나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신앙을 자신을 유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 것일 뿐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그의
내적인 것 즉 내면적인 것이 아닌 외적인 것으로 자기에게 편리할 때나 필요할 때에만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거래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며 성취하려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거나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야곱의 얍복강 사건을 통하여 알게 되는 것은 중생을 경험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찾으며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가
참으로 중생을 체험한 신자일 수는 없습니다. 간디는 예수님에 대하여 호의적인 마음을 가졌으며 본 받고자
했지만 그러나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조찬 기도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에 매달 첫주 월요일에 조찬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사령부 안에 있는
모든 군 장성들과 참모들이 참석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지만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신이라는 존재에게 기도할 뿐이며 안녕과 평안을 빌 뿐입니다. 중생하지
않아도 기도하며 예배합니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고 힘들 때 위로를 구합니다. 그렇다면 중생하지 않은 자와 중생한 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바로
야곱의 체험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체험이라는 것은 신비적인 경험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였는가? 하나님을 만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였으면서 나는 중생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신자가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만났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하는 부분을 야곱의 예를 통하여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함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중생의 체험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중생에 대한 바른 체험의 특징은 강렬한 개인적 체험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결코 모르는 가운데 발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거듭남 중생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요한복음 3장 8절을 보면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 You hear its sound, but you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라고 하십니다.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 소리를 들어도 문제는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중생 했는지 안 했는지를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내가 중생했는지에 대한 방법과 방식을 모른다는
말이지 내가 중생하였다는 것은 확실히 압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바람 소리가 납니다. 여기서 바람 소리란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내 안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중생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어떠한 변화들을 감지 할 수 있으며 뭔가 새로운 것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경우에
있어서 어떻게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되었는가를 오늘 본문에 나타난 과정을 통하여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시 창세기 32장 24절 말씀을 보면 [창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So Jacob was left alone, and a man wrestled with him
till daybreak. 24절에서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중생의 체험은 홀로 남겨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홀로라는
말은 분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그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으며 모든
것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간섭하고 계획하고 염려하고 시행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이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주변을 덮고 있고 감싸고 있던 모든 것에서 분리가 되어 이제 혼자 남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중생 체험의 특징은 혼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입니다. 예전에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라는 대답에 만족하였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사니까? 그냥 사는 줄 알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순리에 순종하는 것이며 인생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돌아보거나 생각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인생이 무엇을 위해 그리고 왜 사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물음의 뒷면에는 이 생의 끝에 대한 물음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중생에 있어서 이러한 질문은 자신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현재의 모든 삶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며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생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 고민은 현세 이후의 삶은 어떠할 것인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서 우리는 하나님만이 그
해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경험이 있었습니까? 홀로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분리되어 자신을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게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까? 중생은 홀로 남겨져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는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두번째의 중생의 특별한 특징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다는
것입니다. 24절에서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꿈 속에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자신을 보이신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30절
말씀을 봅시다.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So
Jacob called the place Peniel, saying, "It is because I saw God face to
face, and yet my life was spared." 야곱은 어떤 사람과 씨름한 장소를 브니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브니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즉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얼굴을 본 사람 즉 하나님을 대면한 자입니다. 중생의 특징은 이처럼 하나님을 본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며 하나님이 실제 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생
전의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인격적인 존재로 자신과 교통하는 즉 인간과 교제하는 분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어떠한
힘이나 능력으로 필요에 따라 초자연적인 일들을 발생시키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중생의 경험은 하나님은
단지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자신의 인생가운데 역사하시며 자신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시며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자신보다 더 자신을
아시는 분이시며 지속적인 교제를 맺어가시는 분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생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닌 자신과 함께 계신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지
아니 계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며 자신과 늘 함께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의심이나 불신은 중생을 경험한 자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 확신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그분이 살아계심을 경험하셨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까? 모든
것에서 분리되어 홀로 서 본적이 있습니까? 그 가운데 자신의 인생의 비참함을 경험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필요성에 대하여 절박한 마음을 가져 본적이 있습니까? 그냥 예수를 믿어야 된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야곱이 경험했던 이런 경험들이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중생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 인간이 홀로 서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분리되어 홀로 서서 하나님의 심판과 마주한 자신의 인생의 초라함과 절망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경험하며 용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에 대한 확신과 살아계심에
대하여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