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잘못 이해하는 것 중에 마지막은 순교자로서의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훌륭한 교사가 자기의 가르침을 철회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기꺼이 순교자로서
죽어 갔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순교자의 죽음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었다면
주님은 이전에 죽어 간 이 세상의 많은 순교자들보다 못한 분이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순교자들은 승리와
기쁨 가운데 화형장 또는 처형대로 걸어 들어감으로서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기 합당한 자로 여겨진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순교자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주님은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영혼에 번민을 느끼셨습니다. 주님의 자기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7절
말씀을 보면 [요 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라고 하며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때를 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떠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순교자들은
절대 그와 같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주님의 죽음은 순교자의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독특한 것이었으며 모든 의미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어떤 순교자의 죽음보다 위대한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유일무이한 죽음인 이유는 그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짊어 지고 죽는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마신 잔은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진노의 잔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극한 고통의 잔이었으며, 지옥을 맛보는 잔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자신이 죽음을 통과하게 될 때 겪으실 고통에 마음이 뒷걸음 지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우연도 아니었고, 비극도
아니었으며, 순교자의 죽음도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은 일어나도
그만,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죄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은 반드시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사람이
값을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자원해서 되는 문제가 아닌 이유는 모든 아담의 후손은
이미 죄 아래 있기 때문에 다른 이를 위한 죽음을 죽음으로 용서받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죽음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 없는 한 인간이 필요한 동시에 그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그분이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는 택하신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즉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기 위해서는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며,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