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의미

by YC posted Feb 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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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실존적 질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가장 근원적인 탐구 주제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의 창조 기사, 특히 인간 창조의 순간을 묘사하는 창세기 2 7절에서 찾습니다. 창세기 27절을 보면 [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Then the Lord God formed a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비로소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인간의 생물학적 탄생을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독특성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즉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근원을 밝히는 등불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생기와 생령의 개념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것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또한 나아가 이 원초적 상태가 죄로 인해 어떻게 파괴되었으며, 그 결과로 초래된 '영적 죽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창조 시 부여된 신적 호흡의 의미와 타락으로 인한 그 호흡의 질식 상태를 살펴볼 것이며, 인간에게 왜 구원이 필요하며 그 구원 왜 필연적인 재창조의 행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 원 재료가 무엇인지를 성경은 밝히고 있는데 인간은 땅의 흙으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땅의 흙, 히브리어로 아파르라는 단어인데 이는 아주 미세한 먼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흙인 아주 미세한 먼지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겸손하게 직면 하자면, 우리는 본래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형성하는 기본 물질은 아아 보잘 것 없는 먼지 덩어리인 것입니다. 이 먼지 덩어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셨는데 여기서 만들다는 단어가 야차르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정교하게 모양을 만드는 행위를 뜻합니다. 문법적으로 미완료 형태가 사용되어, 하나님의 세심하고 목적 있는 손길이 강조됩니다.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설계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땅의 흙으로만 지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으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기로 계획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지으시기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땅의 미세한 먼지 덩어리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형상이 필요한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먼지 덩어리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에서 다른 어떤 피조물의 창조와도 구별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에는 흙을 빚어 형상을 만드시고, 자신의 숨을 직접 불어넣으시는 친밀하고 인격적인 행위를 통해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독특한 창조 방식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며, 둘째로 인간이 창조주 앞에서 어떤 목적을 지닌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 내용을 좀더 살펴보면 먼저 '생기'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단순한 산소 호흡이나 공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생명들의 호흡'을 뜻하며, 그 기원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명확히 합니다. 욥기서 334절을 보면 [ 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The Spirit of God has made me; the breath of the Almighty gives me life. 여기에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신다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전능자의 그 숨이 나에게 생명을 준다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숨 즉 하나님의 기운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유출된 생명의 원리입니다. 인간은 자가 발전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공급받아야만 유지되는 '의존적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생명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비롯된 '신적 호흡' 또는 '생명의 원리'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숨을 인간의 코에 불어넣으신 이 행위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의 시작을 상징하며, 무엇보다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구성하는 본질적 기초가 됩니다. 이 신적 호흡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영광을 반영하도록 부름 받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잠언 2027절을 보면 [ 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The human spirit is the lamp of the Lord that sheds light on one's inmost being. 여기에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혼'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창세기 2 7절에서 하나님이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와 같은 단어인 '네샤마'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단순히 숨만 쉬는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등불' 하나를 켜 두셨다는 뜻입니다. 살피느니라는 뜻은 '세밀하게 조사하다', '수색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마치 어두운 방안을 손전등으로 구석구석 비추어 무엇이 있는지 찾아내는 모습과 같습니다. 여기서 숨, 생기를 영혼으로 번역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숨결은 인간에게 도덕적 자각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지각을 부여했다는 뜻입니다. 동물에게는 없는 '영성'이 바로 이 네샤마에서 나옵니다.

다시 창세기 27절을 보면 [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Then the Lord God formed a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진 결과,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생령', 즉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가 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살아있는 존재' 또는 '생명체'로 번역되며,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동물들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됩니다. 창세기 124절을 보면 [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land produce living creatures according to their kinds: the livestock,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and the wild animals, each according to its kind." And it was so. 여기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고 할 때에 생물이라는 단어가 네페쉬 하야 라는 단어입니다. 살아 있는 존재, 또는 생명체라는 것이 인간과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페쉬 하야가 인간에게 적용될 때, 이 용어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습니다. 동물들 역시 네페쉬 하야 이지만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반면 인간의 네페쉬 하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호흡에 의해 생동하게 된 존재로서, 육체와 영혼의 단순한 이분법적 구성을 넘어 지정의(知情意)를 갖추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도덕적 이성으로 그분께 순종하고, 영원한 교제를 나누도록 창조된 통전적(holistic)인 영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인간에게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인간은 '땅의 흙'이라는 물질적 요소를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생기'라는 영적 요소를 부여 받은 신비로운 결합체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그 생명이 신성불가침한 가치를 지니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존귀하게 창조된 인간의 원초적 상태는 죄의 개입으로 인해 비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인간의 타락은 단순히 선악과를 따먹은 윤리적 실패나 불순종 행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치명적으로 훼손시킨 존재론적 격변입니다. 창조 시 부여 받았던 생명력 넘치는 상태와 비교할 때, 타락 이후의 상태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신학적 용어는 '영적 죽음'입니다. 이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죄의 심각성과 구원의 절대적 필요성을 깨닫는 데 필수적입니다. '영적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이나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본질적으로 '분리'를 의미하며, 영적 죽음은 곧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상태를 가리킵니다. 창조 시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를 통해 시작되었던 생명력 있는 교제와 연합이 죄로 인해 끊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영적 에너지가 차단됨으로써, 인간은 영적으로 고립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은 영혼의 한 부분에 국한된 상처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감염시키는 전인적 부패(total depravity)를 초래했습니다. 지성은 하나님을 아는 빛을 잃고 어두워졌으며, 감정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향해 뒤틀렸고, 의지는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한 채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던 모든 기능이 왜곡되고 부패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의 증언을 보면 에베소서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As for you, you were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사도 바울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상태를 '죽었던' 상태라고 분명히 정의합니다. 이 죽음은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여 알지 못하는 영적 죽음의 상태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도, 그분의 뜻에 반응할 수도,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는 전적인 영적 무능력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무능할 뿐 아니라,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놓인 상태임을 뜻합니다.

창조 시의 영광스러운 '생령'과 타락 후의 비참한 '영적 죽음'의 상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 거대한 간극은 인간에게 왜 구원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인지를 역설합니다. 영적으로 죽어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는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생명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기서 성경은 구원을 하나님의 '재창조(re-creation)' 행위로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545절을 보면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으로 죽어 있어 네페쉬 하야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바로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다시 누군가 오지 않습니다. 이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의 새 인류의 시조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고 합니다. 살리다 라는 뜻의 동사 현재분사형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번 살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능동적으로 생명을 부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의 죽은 영을 살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생명의 원천'이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죄로 인해 소멸되었다면, 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으로서 우리 코가 아닌 우리 '심령'에 직접 하나님의 생명을 주입하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끊어지지 않는 영적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요한복음 2022절을 보면 [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And with that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창조주께서 태초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던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 이것은 죄로 질식했던 영혼에 새로운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는 새 창조의 선언입니다.

창세기 2 7절이 인간의 생물학적 시작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시작입니다.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시 하나님의 숨(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숨 쉬는 존재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주님의 생기를 느끼며,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새 창조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