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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이해

        

         바울 일행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제 긴 전도여행을 마치고 목적하였던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드리고 자신의 사역에 대한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오는 중에 성령을 통하여 받았던 고난에 대한 예고가 이제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본문 내용 정리

1.    환영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 때 형제들이 이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여기서 상용된 표현이 기꺼이 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따뜻하고 마음을 다해 맞아 주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다 읽다 보면 여기에 바울 일행을 맞아 주는 자들이 예루살렘 교회 전체가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직 많은 교인들은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 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바울 일행이 왔다는 사실로 인하여 야기 될 문제까지도 있습니다. 사실 바울 일행은 어쩌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환영 받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유는 야고보의 말처럼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들을 가르칠 때 그가 유대인의 의식에 대한 부정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할례도 포함이 됩니다. 이런 연유로 이방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는 자로 알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울을 바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보고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이 되었고 야고보 또한 이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 결코 모든 이들에게 진정으로 환영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기 얼마의 성도들인지는 모르지만 바울을 진정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지 않으나 이들은 다수의 무리에 끼지 않은 소수의 무리로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이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지 못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바울 일행은 이들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을 환영해 주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때론 우리 인생에 큰 위로보다는 이런 작은 위로들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거창한 위로 보다는 작지만 한 마디의 격려가 혹은 한번의 등 두드려 줌이 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우리의 위로와 축복이 필요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2.    보고 다음날이 되어 바울과 그의 일행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를 만납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조직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략 야고보와 베드로가 공동으로 수장직을 맡고 있지 않았을까 추정됩니다. 여기서 나오는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바울 일행은 야고보와 또한 그와 함께 있는 장로들에게 문안을 하고 자기의 사역을 보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역을 보고 할 때 사용한 내용을 보면 그가 그의 사역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세밀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자신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통료로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봉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그분의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라는 바울의 고백은 그의 사역이 자신의 힘으로 혹은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며 또한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사역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도구가 좋고 멋지다고 할 찌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거나 버리진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도구는 그 도구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전문가에 맡겨질 때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3.    문제 앞서 언급했듯이 야고보는 진지하게 바울의 보고를 듣고 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다시 현실 속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에 있는 유대인들이 가지는 바울에 대한 적대감과 또한 예루살렘 거하는 믿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에게 가지는 반감입니다. 야고보는 이들이 수만 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많은 숫자의 라고도 해석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야고보의 핵심적인 말은 그들 모두가 율법에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시실입니다. 이 말은 이들은 전통적인 유대인이자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에는 모든 상황이 과도기에 있었다는 사실이며 교리적인 면이나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아직 율법적 의식을 중요시하며 그것도 지키고 복음도 믿고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이들에게 있어서 이단아로 보임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도기적 상황에서 야고보는 바울에게 제안을 합니다. 그것은 결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결례란 서원한 사람이 자신의 영육을 정결케 하기 위해 드리는 의식으로 이것을 행함으로 유대인들에게 바울 자신이 모세의 의식을 무시하거나 배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때 야고보는 네명의 다른 서원한 사람과 함께 바울이 가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 이들 네명과 함께 다음날 성전에 가서 결례를 행하고 제사장에게 그 서원한 날짜를 가리켜 줍니다. 또 하나의 제안이 야고보를 통하여 있었는데 그것은 네명이 결례를 마치는 날에 드려야 할 제물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결례의 마지막 날에 결례를 행한 자들이 제물을 드려야 했는데 번제로 일년된 수양 한마리 그리고 속죄제로 일년 된 암양 한 마리 그리고 화목제로 일년된 수양 한 마리와 무교병이었습니다. 이 비용은 만만치 않은 비용인데 이것을 바울에게 내라고 하는 이유는 당시에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대신 비용을 물어주는 것이 대단한 미덕으로 여기졌기에 야고보는 이 일을 통하여 바울이 율법을 준수하는 자로 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러한 의식들이 아제 복음의 시대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수용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으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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