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말씀QT
2012.02.08 05:55

무식한 그 입 다물라

조회 수 40524 추천 수 0 댓글 0

No Attached Image

           오늘은 일이 있어 LA에 갔었습니다. 남들은 매일 출퇴근도 하고

자주 가지만 제게는 항상 낯선 장소입니다. 자주 가지 않아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곳이 주는 복잡함과 번잡함이란 결코 즐겁지 않은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갈 때 마다 항상 마음이 긴장되고 빠져나와 프리웨이에 몸을 실어야 평안해 집니다.

제가 처음 LA에 간 것이 미국에 온지 2년 정도가 지나서였을 것입니다.

그때 느낌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좁은 도로들 하며 그 도로에 가득찬 차들과 또 그 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

빼곡히 지어진 상가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지고 숨통을 막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답답함을 느끼며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까 하는 그곳이 제가 미국에 오기전

살았던 곳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너무나 편리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온 후 2년의 삶이

제 마음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편리함보다는 여유로움이 빡빡함 보다는 넉넉함이

이제는 좋습니다.                                         

 

본문 속으로

          

          바리새인과 헤롯당과의 세금 논쟁 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다시 나타나 예수님과 논쟁을 벌입니다. 이들은 사두개인들 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귀족계급에 속하고, 대제사장 및 예루살렘의 유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리새인과 대립했는데, 바리새인이 종교적인데 반하여, 그들은 아주 정치적 색채가 강했습니다. 수는 비교적 소수였으나, 교양도 있었고, 특히 제사장 계급을 독점하여 세력화하였습니다. 이들의 신앙,사상은 일면 보수적이었으며 극히 합리적이고 현세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이 존중한 유전(遺傳-)을 인정치 않고, 성문화된 모세의 율법만을 인정했습니다. 그 결과로, 부활도, 천사도, 영도, 일체의 존재를 인정치 않았습니다. 또한 미래에 있어서의 보응도 부정하고,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음을 말하고, 의지의 자유를 주장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부활에 관한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내용 이해

1.     부활이 없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온 목적은 앞에 온 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더한다면 아마도 이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망신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우월감과 자신들은 그들과는 다르다는 지적 우월감을 표출하려는 의도도 숨어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부활에 대하여 부정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들이 아는 것처럼 모세 오경에는 부활이란 것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부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는 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사두개인들의 성경 읽기와 이해가 어느 수준인지 알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 문자적인 의미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속에 담긴 영적의미나 상징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부활이 없다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철저히 절제하고 금욕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만약 부활이 없다는 그것이 모두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합니다. 부활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있습니다.

2.     신명기 25:-5-6절의 무기 사두개인들은 신명기에 있는 계대 결혼을 가지고 예수님을 공격하는 논리적 무기로 사용합니다. 계대 결혼이란 사두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식없이 죽은 형의 계보를 이어주기 위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이것을 형사취수라고도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에 나와있는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일곱명의 형제가 있는데 모두 자식이 없이 죽었는데 첫 번째와 결혼한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은 사실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극히 드문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다 이것을 통하여 바리새인들이나 다른 파들과의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제 예수님께 들이대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예수님도 지적하셨듯이 성경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생각하며 자신들의 유한한 이성으로 전체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3.     무식한 자들아 그 입 다물라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성경을 모른다. 라고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해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것은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 두 개의 무식함이 사두개인 처럼 부활이 없다고 하는 무지한 결론을 유출해 냈다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에 대하여 모른다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살아나면 이들은 예전과는 다른 형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상에 살던 때와 같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런 형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변화된 부활체는 천사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사와 같이 된다는 것이 천사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에 관하여 천사와 같이 남자로써 여자로써의 성에 관한 부분이 천사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두개인들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부활체가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 부활에 대하여 판단함으로 결국 부활은 없다는 결론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는 부분에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을 이들은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부족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떨기나무 사건을 예로 드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이삭의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의미는 이들 모두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하나님 앞에 살아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한 것이 하나님은 죽의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럼에도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부활에 대하여 부정하는 것입니다.

생활 속으로

1.     부활에 대한 나의 고백은?

2.     나에게는 지적인 교만함이 없는가?

3.     성경에 대한 무지함으로 오해하는 사두개인의 모습에서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4.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신뢰하는가?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9 말씀QT 아무것도 아니 것들이 박경호목사 2012.02.08 39773
108 말씀QT 멈추지 않는 사랑 박경호목사 2012.02.08 39365
107 말씀QT 모두가 다 아니오 할 때 예라고 외치는 자들 박경호목사 2012.02.08 39192
106 말씀QT 우리 때문에 박경호목사 2012.02.08 40520
105 말씀QT 강요에 의해 생긴 믿음 박경호목사 2012.02.08 43552
104 말씀QT 무리를 자극함과 만족시킴 박경호목사 2012.02.08 40491
103 말씀QT 죽음의 키스 박경호목사 2012.02.08 39839
102 말씀QT 공언 박경호목사 2012.02.08 39158
101 말씀QT 나는 아니겠지요? 박경호목사 2012.02.08 39662
100 말씀QT 됴유 사건 박경호목사 2012.02.08 39525
99 말씀QT 참새 반 마리 박경호목사 2012.02.08 41459
98 말씀QT 가깝지만 먼데 있는 자 박경호목사 2012.02.08 43827
» 말씀QT 무식한 그 입 다물라 박경호목사 2012.02.08 40524
96 말씀QT 적과의 동침 박경호목사 2012.02.08 39614
95 말씀QT 버려진 돌 박경호목사 2012.02.08 41727
94 말씀QT 주가 쓰시겠다 하라 박경호목사 2012.02.08 40416
93 말씀QT 하나님을 멈추게 하는 부르짖음 박경호목사 2012.02.08 51658
92 말씀QT 자리 차지 박경호목사 2012.02.08 40414
91 말씀QT 애들아! 박경호목사 2012.02.08 39516
90 말씀QT 완벽 훈남(?) 박경호목사 2012.02.08 3917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Next
/ 14

차타누가 열린교회 CHATTANOOGA YEOLIN PRESBYTERIAN CHURCH
1622 HICKORY VALLEY RD. CHATTANOOGA, TN 37421
담임 : 박경호 목사 Ph : 423-645-7910 Email : pkrain1@gmail.com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