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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QT
2012.02.08 06:02

죽음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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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많은 세대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영장이 두개나 되고 아파트를 한바퀴 도는 것도 운동이 될 정도 입니다.

이 아파트내에는 아이들을 유혹하는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자판기 입니다.

아파트 내에 두대의 자판기가 있는데 하나는 음료수용이고 하나는 스낵류입니다.

가끔 아이들과 산책을 할 때면 꼭 자판기 앞에서 아빠 돈 가지고 왔어요 라고

물어 봅니다. 대부분 사주지 않습니다. 별로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끔 큰 맘 먹고 사줄 때가 있습니다. 그때면 아이들은 너무나 신이 나서 좋아합니다.

너무나 행복해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1불이 주는 행복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아무 것도 아닌 1불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행복을 만들어주는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압니다. 이런 작은 행복이 성장해 가면서 점점 반감되어 더 많은 것을 가져도 행복해 하지 않을 정도로 무뎌지며 욕심과 탐욕에 항상 부족감을 느끼며 사는 어른이라는 불행한 사람들이

되어 가게 됨을. 항상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탐욕스런 어른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 기뻐하며 감사할 줄 아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아이들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본문 줄거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후에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로부터 보냄을 받은 군인들에게 체포되시어 대제사장의 집으로 가시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이 체포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입니다. 내용들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들을 이끌고 예수님께 오고 먼저 신호를 짜서 자신이 키스하는 사람을 잡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안하며 죽음의 키스를 예수님께 합니다. 이에 군병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고 옆에 있는 베드로는 엉겁결에 뭔가해야된다는 강박관념에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잘라 버리고 예수님은 다시 붙이시고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잡으러 온 것이 온전치 못함을 역설하시며 그러나 성경을 이루려하심이라고 자신의 잡혀감을 수용하십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이불을 두루고 예수님을 따르다 잡혀 이불을 버리고 누드로 도망을 치는 사건이 나옵니다. 오늘 큐티는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의 인격에 대하여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내용 이해

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인격 이들은 추악한 이중적인 인격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오직 유일한 욕구는 군중들로 부터오는 존경과 그들위에 군림하려는 지배욕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높은 위치에 존재하고 싶어하며 그 자리에 대한 도전에 가차없이 죽음을 선언해 버립니다. 예수님도 이들의 자리를 흔들리게하며 백성들에게서 이들을 향한 존경과 위엄을 빼앗았기에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적이요 원수입니다. 그래서 죽이기로 궤계를 꾸미고 거짓 증인을 세워 죽일 빌미를 찾습니다. 이들의 인격은 독선적이며 충동적이며 속임과 불의에 능숙한 자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깊은 신앙을 소유한 듯 하지만 내면은 시기심과 악독이 가득한 인격을 소유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들은 백성들이 없는 곳이며, 아무도 예수님을 보호할 수 없는 그런 장소에서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이들은 마치 어둠의 지배자들 처럼 행동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고매한 인품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며 거룩하며 인자하지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2.     가롯 유다의 인격 삼년 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며 다른 제자들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였지만 이것이 그의 인격을 바꾸지는 못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가까이에서 그분이 행하신 것을 직접 보고 듣고한 모든 것이 그의 인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 곁에 있었으면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의 스승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의 배신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강한 욕망을 보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며 돈을 맡은 자로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계산이 빠른자 이었습니다. 세밀하고 조직적인 자였습니다. 그 안에는 다른 어떤 제자들 보다도 더 많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발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기만 한다면 자신에게 얻어질 것에 대한 기대는 결국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면서 물거품으로 끝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예수님에 대한 기대치가 사라지자 남은 것은 분노였습니다. 변화되지 못한 인격에서 나오는 분노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에는 스승에 대한 복수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는 결국 배신을 하여 예수님을 파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비열함은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파는 장면에서 확연히 나타납니다. 그는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태연히 예수님께 다가와 존경의 입맞춤을 합니다. 이것은 이미 짜여진 각본으로 군병들이 잡아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스승을 파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그 앞에서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스승을 팔아 넘기는 그의 모습은 잔인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유다를 통하여 알수 있는 것은 인격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인격 완전한 인격을 소유하신 예수님은 그 완전한 인격 자체를 보여주십니다. 때론 불같이 화를 내시기도 때론 동정심에 우시기도 하시는 그때 그때마다 가장 완벽한 절제와 표현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생각해 보면서 가져야 할 것은 그분이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당연히 견딜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 오는 모든 어려움은 그분이 당연히 견디거나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분은 우리가 같은 성, 정을 가지신 완벽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완벽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그분은 배고픔도 화남도 분노도 슬픔도 아픔도 똑 같이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 같은 성, 정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와 다른 인격을 보여 주십니다. 제자들의 배신에서도 그분은 배신감에 대한 분노를 절제하십니다. 또한 유다의 거짓 입마춤에도 그분은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심판받는 자리에서 세번 부인하며 저주해도 그분은 같이 저주하시거나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셔서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아픔과 비참함과 노도와 같은 분노와 치를 떨게하는 배신감이 그의 안에 있었지만 그것을 통제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인격입니다. 온전한 인격은 감정이 무뎌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감정이 매말라 지는 것이 온전한 인격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느끼지만 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성숙한 인격입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 슬픔을 그리고 기쁨을 표현합니다. 또한 불의에는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통제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이런 스스로를 조절할 줄 아는 그런 성숙한 인격이셨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그리고 자라나야 할 부분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우리의 인격이 자라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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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말씀잡기

1.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격적 결핍이 나에게 있지는 않은가?

2.    잠재된 욕망에 따라 살고 있지는 않은가?

3.    내 인격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나는 날마다 인격적으로 성숙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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