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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자극함과 만족시킴

by 박경호목사 posted Feb 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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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직장인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특이하게

월요일만 되면 발생하는 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월요 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말을 지내고 다시 직장에 가서 업무를 보아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월요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과 지난 주말의 피로가 함께 겹쳐서 다른 날 보다

더 힘들게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제게도 이런 월요 병이 있는가 봅니다.

유독 월요일만 되면 아침에 큐티를 하고서 홈피에 올리는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일 부담되는 날이 바로 월요일입니다. 그리고 가장 신이나는 날이 금요일

입니다. 언제나 자연스럽게 부담없이 할 수 있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올려야 되는 것을

미루다 오늘에야 손을 댑니다.

 

본문 속으로

          

          예전에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이 성경 공부 중에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빌라도가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빌라도에 대해서 물으시는데요 라고 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이 빌라도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자신이 생각할 때 엄청 나쁜 사람같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매번 사도신경이라는 것을 할때마다 욕을 먹는데 도대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그 빌라도가 예수님을 판결합니다. 빌라도가 어떤 잘 못을 했길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번 욕을 먹어야 하는가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내용 이해

1.     새벽에 즉시 – 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당시의 법 집행에 관한 내용들을 보면 모든 법 집행은 며칠의 시간이 흘러야 되고 그리고 정확한 논의 거쳐 형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법 집행에 있어서 이들은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에수님을 밤에 체포하고 그리고 바로 사형이라는 형을 언도하고 새벽이 되기를 기다려 바로 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끌고가서 자신들이 정한 형을 집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속전 속결로 혹시 있을 백성들의 동요와 반대를 무마시기 위한 술책을 펴고 있음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는 새벽에 일을 벌이고 그리고 즉시라는 단어를 통하여 얼마나 이들이 죄 짓는 일에 마음을 합하여 일하고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을 보면 의를 행하거나 선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는 쉽게 바뀌거나 쉽게 행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교육과 훈계를 통하여 조금씩 나아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한 일에 대하여는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너무나 쉽게 범죄하고 악을 행합니다. 또한 쉬지도 않고 그 악을 끝내기 위해 수고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된 본성입니다.

2.     기이히 여김 빌라도에게 끌려간 예수님을 빌라도는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고소하는 자들의 고소 내용은 신성모독입니다. 이것이 빌라도 앞에서는 황제에 대한 반란으로 예수님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였다 하며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형을 집행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 말에 대하여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께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말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 후의 질문과 고소에 대하여 일체 침묵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세하게 자신이 왕이심을 밝히십니다.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어떤 경외감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고소하며 죽음에 처하라고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자신 또한 예수님에게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음에도 예수님은 전혀 요동치 않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에도 입을 여시지 않는 것을 보고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이히 여김은 어떤 신적인 능력을 경험했을 때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이사야에 예언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 같다는 예언이 성취됨을 보게 됩니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3.     무리를 충동질함 당시에 명절이 되면 전례가 있는데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무리들이 죄수 하나를 전례 대로 놓아 주기를 원하자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 주랴고 묻습니다. 이것은 빌라도가 네번이나 예수님을 살리려고 했던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살리려 했던 것은 대제사장들의 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살려 주려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살려는 방법중 첫번째는 그에게는 죄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두번째는 헤롯에게 보내어 판결을 유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바로 전례에 따라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데 예수님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는 심한 조롱과 매질을 하고 놓아 주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모든 허사가 됩니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백성을 충동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리들 속에 자신들의 사람을 심고 또한 매수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합니다. 충동질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충동질 하는 자들이나 모두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입니다. 대제사장들은 백성을 충돌질 시키는 죄를 지었고 무리는 그 충동질에 동참한 것입니다.

4.     무리에게 만족을 줌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이시며 대제사장들의 시기 때문에 고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잘못된 선언을 합니다.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진실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의 권한을 포기하고 백성들을 무서워하여 잘못된 판결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에게는 정직한 판결보다 백성의 만족이 우선이었습니다. 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그는 쉽게 예수님을 무리들에게 넘겨줍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빌라도는 그리 선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때론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변호하거나 불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의 습관이 예수님의 판결에도 그래도 반영된 것입니다.

생활 속으로

1.     우리의 삶에서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거나 쉽게 무너지는 것은 무엇인가?

2.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3.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범죄하게 하거나 그 충동질에 참여하지는 않는가?

4.     누구의 만족을 위해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