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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Ot_qEN4vzu0


오늘 본문은 혀의 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18 21절을 봅시다. 본문을 보면 혀의 힘을 말하는데 개역개정에서는 혀의 힘으로 개역 한글에서는 혀의 권세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혀의 힘이나 권세 이 두 단어 모두는 의역입니다. 힘이나 권세로 번역된 이 단어는 손 안에 라는 뜻입니다. 전체를 직역하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손안에 있다 라고 됩니다. 혀의 손안에 즉 혀가 쥐락펴락하며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하여 쥐락펴락하며 조정하며 결정하게 되는가 하면 살고 죽는 문제에 대하여 입니다. 한국 속담에 세치 혀가 사람 잡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혀가 일으켜 발생시키는 것이 단순히 작은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좌우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라는 말은 혀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 즉 사랑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혀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말은 말하기를 좋아하며 혀를 금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며 잠시도 가만히 혀를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말이 많다는 것이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의 의미는 불필요한 말이나 쓸데 없는 말이나 하지 말아야 할 무절제한 말을 남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말이 만들어 내는 결과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조언과 경고가 단순히 개인의 인생 사를 위한 좋은 인격과 성품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신자에게 유익한 것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유익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데 있어서 유익한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3 16 17절을 봅시다 성경을 통하여 신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지 단순히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자로써 혀의 힘이 가지는 능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혀가 불신앙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거나 죄를 범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 36절과 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혀가 저지르는 문제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심판의 날에 심문을 받는 다는 말은 자신이 말한 것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제 있을 것인가 하면 심판의 날에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말한 모든 말에 대하여 반드시 낱낱이 해명해야 할 것인데 이 날이 심판의 날이기 때문에 그날에 자신의 말한 대로 형벌을 받게 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에 대하여 낱낱이 해명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라고 합니다. 여기서 무슨 무익한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 없는 말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지껄이다 라는 말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 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터무니 없다는 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엉뚱하게 라는 뜻으로 무익한 말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정당한 이유 없이 지어 만들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말을 한 자들은 심판 날에 자신이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37절 말씀은 왜냐하면 이라는 종속절입니다. 왜냐하면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기 때문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면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말로 의롭다 함을 얻거나 또는 정죄를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먼저 정죄를 받은 자들을 보면 열왕기하 7 19-20절을 봅시다. 이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왕으로 있을 때에 아람왕 벤하닷이 군대를 이끌로 올라와 온 사마리아를 에워싸게 됩니다. 이때 사마리아 성안에 식량이 떨어져 백성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잡아 먹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사가 예언을 하는데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중에 음식이 풍부해져서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예언을 듣던 여호람의 한 장관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신앙적 고백으로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철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다고 해서 이렇게 될 수 있는 줄 아는가 라는 불신앙적인 말을 한 것입니다. 이에 엘리사가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 하던 날 저녁에 아람 군대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엘리사의 예언대로 사마리아 성중에 음식이 풍성해 진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의 예언대로 그 장관은 성문에서 백성들에 의해 밟혀 죽었습니다. 장관의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불신앙적 말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리라 라는 말에 그렇게 될 수 없다고 거역하며 부정하며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의 상태가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마땅히 당할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살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8 8절을 보겠습니다.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온 백부장의 이야기 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주여 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만 말씀으로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은 나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오시도록 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붕 아래라는 말은 다스림이나 통치를 의미합니다. 자신은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주님의 지방 아래에 나아가야 할 자라는 사실을 또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의 말에 대하여 주님은 마태복음 8 10절에서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또한 이 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할 정도의 믿음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이 믿음은 즉시로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낳게 합니다. 믿음의 말은 생명을 얻게 하며 사람을 살립니다.

        마가복음 7 26-29절을 보겠습니다. 본문은 유대인이 아닌 수로보니게 족속의 한 여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귀신이 들려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예수님께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 것이다 라고 하시며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여기서 개들이라고 해서 예수님께서 여자를 개같은 이라는 경멸적 표현은 아닙니다. 여기서 개들은 강아지들로 주인이 기르는 개를 가리키며 우선순위적으로 먼저 아닌 그리고 자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태로써의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여인의 반응은 28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상 아래 즉 주인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아닌 상래에 있는 처지 이지만 주인의 강아지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 다고 합니다. 즉 자신은 유대인도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의 우선 순위에도 들지 못하는 상 아래에 위한 자이지만 강아지처럼 부스러기라도 바라 상태임을 말하며 긍휼을 베풀어주시길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에 29절의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즉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듣기를 원하셨으며 이 말을 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갈망하며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는 말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포기하고 환경에 포기하고 절망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이며 상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도와 달라고 간구하며 살려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방 여인이 자신의 딸이 치료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결정적 도구가 됩니다.

        잠언 18 21절처럼 성경은 혀의 손안에 생명과 죽음이 있다고 합니다.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 그래서 절제할 줄 모르고 무익한 말을 내뱉는 자는 심판의 날에 낱낱이 해명해야 할 것이며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혀는 우리로 믿음을 통한 생명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심판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가 형제를 세우고 믿음을 세우고 신앙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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