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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 16절부터 5장까지의 내용은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족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이름의 기록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이러한 이름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눈과 지성에 지루하고 무의미 해 보이지만 그 의미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주장이 있지만 족보를 살펴보면 두 계보가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가인의 계보이고 하나는 셋의 계보입니다. 이 두 계보를 가만히 살펴보면 서로 같은 것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창세기에 나타난 족보의 목적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두 족보가 같은 것은 이름들이 나열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결혼을 했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결과 자식을 나았다는 것입니다. 조상과 자손들이 순서대로 기록되는 형식은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태어나고 자식을 낳고 죽는 다는 보편적인 인간의 숙명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어김으로 인해 인간이 받게 되는 형벌이 모든 인간들에 적용되며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어나고 살다가 후손을 낳고 죽는 다는 것은 가인의 가문이나 셋의 가문이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 두 족보를 세밀하게 관찰하다 보면 서로 기록의 방법이나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다름은 동일하게 태어나고 살다 죽는 것이 인간일 뿐이다 라는 것에 다른 의미를 던져주며 태어나고 살다 죽지만 다른 의미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에서 보여주는 동일 운명 가운데 다른 삶을 그리고 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 번째로 각각의 족보 가운데 등장하는 동일 이름을 가진 자들을 통하여 비교 입니다. 창세기 4 17절 말씀을 봅시다. 이 구절은 아담의 첫째 아들인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시기로 말미암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그는 에녹을 낳았고 성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 성이라고 합니다. 가인이 성을 쌓은 것은 그가 받은 저주의 상태 즉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라는 상태를 거부한 것이며 거역한 것입니다. 그는 유리하며 방황하는 자가 아닌 거주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의 이름에 따라 에녹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렇기에 에녹이란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성을 쌓고 이 땅에서 안주하며 거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합니다.

         창세기 522절부터 24절까지를 봅시다. 여기서도 에녹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야렛의 아들로써 에녹은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은 후에 삼백 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사라졌다는 말로 그는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인의 족보의 에녹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오히려 거슬러서 이 땅에 거주하며 안전과 보호를 스스로 세우며 만들어 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인 에녹은 이 땅에서 삶에 안주하며 영구적 안전과 보호를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욕망에 휩쓸려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삶을 위하여 살아감으로 하나님에 의해 이 땅에서 사라져 영원한 세계에 들어간 자가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라멕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들을 추적해 보는 것입니다. 창세기 4 23-24절을 봅시다.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정하신 한 남편과 한 아내의 부부됨에 대한 창조의 질서를 깨고 두 아내를 얻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아다와 씰라라는 두 여인을 아내로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잔인하고 잔악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가 소년을 죽였는데 그 죽인 이유가 무엇이냐면 자신에게 상처를 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상처나 상함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가 아닙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모독 합니다. 그 내용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이 칠배이지만 자신을 죽이는 자는 벌이 칠십칠배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후손들을 보면 야발은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의 조상이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세상 문화를 만들며 오직 세상과 자신들을 위하여 살아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는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대적이며 무너뜨리는 대적자의 삶이었을 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창세기 5 28-29절을 봅시다. 이 구절에서 같은 이름인 라멕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들을 낳았다고 그 이름을 노아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가 그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하였는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실 안식을 기대하였습니다. 또한 그 아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방주를 지었고 세상을 위해서 산 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그의 뜻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이 땅을 위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셋의 후손을 통하여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가인의 족보는 셋의 족보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얼마 동안 세상에 살았는지에 대하여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셋의 족보는 사람들이 태어난 것과 그들이 얼마 동안 세상에 살았는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나이의 기록 유무가 말해주고 있는 중요한 것은 비록 그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상 문화를 선도하며 많은 업적을 세웠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인의 계보는 그들이 언제 자식을 낳는지 언제 죽는지 성경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인 셋의 후손은 그들이 자식을 언제 나았는지 언제 죽는지 성경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5 1절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 3절에 나타난 후손의 이름은 가인이 아닌 셋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계속해서 셋의 후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가인은 아담의 후손에서 빠진 것이며 그의 후손은 이제 셋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가인의 후손은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하나님과 관계 없는 세상에 속한 자의 자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는 모든 인간들은 동일한 운명 속에 살아갑니다. 태어나고 살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운명 속에 있다고 해서 그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과 뜻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 성을 쌓는 일에 몰두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그곳에 자신의 성을 쌓기 위해서 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 땅에 것만을 위하여 목숨을 걸며 그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이 땅에 자신의 성을 쌓기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쌓는 성이 자신들 위해 무너질 것이며 모두다 사라질 것이며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모른 체 그들은 그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 둘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가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며 전혀 다른 결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인생과 하나님께 전혀 의미 없는 인생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으며 어떤 결과를 위하여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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