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영상https://youtu.be/kucRsbmjqK0
오늘 본문은 혀의 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혀의 힘을 말하는데 개역개정에서는 혀의 힘으로 개역 한글에서는 혀의 권세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힘이나 권세로 번역된 이 단어는 손 안에 라는 뜻입니다. 전체를
직역하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손안에 있다 라고 됩니다. 혀의 손안에 즉 혀가 쥐락펴락하며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라는 말은 혀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 즉 사랑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혀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말은 말하기를 좋아하며 혀를
금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며 잠시도 가만히 혀를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문의 의미는
불필요한 말이나 쓸데 없는 말이나 하지 말아야 할 무절제한 말을 남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조언과 경고가 단순히 개인의 인생 사를 위한 좋은 인격과 성품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의 유익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데 있어서 유익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과 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혀가 저지르는 문제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심판의 날에 심문을 받는 다는 말은 자신이 말한 것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제
있을 것인가 하면 심판의 날에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무슨 무익한 말을 공동번역에서는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 없는 말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지껄이다 라는 말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 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터무니 없다는 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엉뚱하게 라는 뜻으로 무익한 말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정당한 이유 없이 지어 만들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37절 말씀은 왜냐하면 이라는 종속절입니다. 왜냐하면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기 때문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면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말로 의롭다 함을 얻거나 또는 정죄를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먼저 정죄를 받은 자들을 보면 열왕기하 7장 19-20절을 보면 여호람의 한 장관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신앙적 고백으로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철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관의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불신앙적 말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리라 라는 말에 그렇게 될 수 없다고 거역하며 부정하며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의 상태가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마땅히
당할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1장 28절을
보면 또 다른 말로 정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정탐꾼들은 낙심의 말로 백성들을 낙심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 때문에 백성들은 우리가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가 라고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원망과 불평의 말이 만들어낸 결과를 보면 신명기 1장 34절과 35절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 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변치 않을 맹세를 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광야 40동안 광야를 돌다 그곳에서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불신의 말, 불신앙의 말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함께 죽이는 말입니다. 그 말은
정죄를 받게 되며 죽이게 합니다. 반대로 살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8절을 보면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온 백부장의
이야기 입니다. 그는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만 말씀으로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은 나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오시도록 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붕
아래라는 말은 다스림이나 통치를 의미합니다. 이 믿음은 즉시로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낳게 합니다. 믿음의 말은 생명을 얻게 하며 사람을 살립니다. 마가복음 7장 26-29절을
보면 자신의 딸이 귀신에 들린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이 나옵니다. 마지막 2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즉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듣기를 원하셨으며 이 말을
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갈망하며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는 말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포기하고 환경에 포기하고 절망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이며 상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도와 달라고 간구하며 살려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방 여인이 자신의 딸이 치료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결정적 도구가 됩니다. 잠언 18장 21절처럼
성경은 혀의 손안에 생명과 죽음이 있다고 합니다.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 그래서 절제할 줄 모르고 무익한
말을 내뱉는 자는 심판의 날에 낱낱이 해명해야 할 것이며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혀는 우리로
믿음을 통한 생명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심판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가
형제를 세우고 믿음을 세우고 신앙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