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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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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https://youtu.be/RGyVkAXtG2o


           오늘은 2018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모두다 바쁘고 분주하게 한 해를 열심으로 사신 줄 압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가장 특별하게 기억되는 해는 어떤 해입니까? 인생을 사노라면 어떤 해는 성취와 성공으로 인해 기쁨이 가득하였던 해로 기억되는 해가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해는 슬픔이나 아픔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던 해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올 해를 돌아 볼 때에 누구에게는 올 해가 행복한 한 해로 누구에게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해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올해에 대한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의 평가보다도 하나님의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살아왔고 살아 가고 있는 인생에 대하여 단지 좋았다, 나빴다 라는 평가만이 아니라 그 삶에 대한 대가를 갚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여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평가가 참인가 하는 것은 그 개인적 사견이기 때문에 정당하거나 옳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항상 참이며 옳은 것은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주인이시며 그의 눈에 모든 인생은 거짓없이 그리고 숨김 없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판결은 언제나 순결하시며, 옳으시며, 정의로우시며 참되십니다. 또한 그 판결에 대한 대가도 옳으며 참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그 전쟁 가운데 한 사람이 사로잡히고 그가 끝내 죽음을 당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전쟁의 당사자는 이스라엘 족속인 유다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연합하여 가나안에 살고 있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자들을 몰아내는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사기 1 4-5절을 보면 1:4-5절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라고 합니다. 본문은 유다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싸움을 하였는데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하였다고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유다 지파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넘겨 주시다 라는 말은 유다가 승리할 수 있도록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의 힘과 능력을 상실하게 하셨다는 의미로 그들을 패배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 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싸워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사람의 이름을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데 바로 아도니 베섹입니다. 아도니 베섹은 실제로는 사람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그의 직책에 대한 호칭인 것입니다. 아도니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주 또는 주인 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는 베섹의 주이며 주인인 것입니다. 그는 비록 베섹이라는 곳을 다스리며 주인으로 행사하며 사람들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하며 지배하였지만 그가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인으로써 행하던 모든 힘과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지위는 한낱 흙먼지에 불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 때에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인생으로 주인으로 살거나 또는 남들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더하여 한 지역의 주인으로 살 수도 있고 이보다 더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 한 나라를 다스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발 앞에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는 한낱 이름 없는 미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베섹의 주인으로 지배할 때에 사람들은 그 앞에 감히 설 수 없었으며 그를 두려워하였고 그의 힘과 능력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높고 힘있는 자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그는 잠깐 보이다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이슬과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패배하였고 그의 힘과 능력과 그의 지위는 그에게 아무런 보호도 도피처도 제공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것은 그가 어떠한 일을 당하였으며 왜 그러한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입니다. 사사기 1 6절을 보면 1:6절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라고 합니다. 베섹의 주인은 도망하다 사로 잡혔고 잡힌 그는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이 잘리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살펴보아야 할 내용들이 있는데 왜 유다 지파는 아도니 베섹의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잘랐는가 하는 것입니다. 엄지 손가락을 자는 것은 검을 손에 쥐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엄지 손가락은 물건을 쥘 때에 손안에 쥔 물건을 고정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손가락입니다. 또한 엄지 발가락은 뛸 때에 몸의 균형을 잡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뛰도록 힘을 바쳐 주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을 잘라버린다는 것은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며 모든 기능을 마비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1 7절을 보면 1:7절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라고 하는데 아도니 베섹이 자신의 엄지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린 후에 스스로 자신의 처한 처지를 비관하며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는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의 사로잡아 그들의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잘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 만이 아니라 그는 엄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린 칠십 명의 왕들을 자신의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게 하였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왕들을 명예롭게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그들의 엄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른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의 자신의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게 하였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며 비정하며 포악한 인간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승리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구걸하게 하여 조롱과 비웃음 거리로 만들며 그것을 보고 즐기는 자였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즐기며 기뻐하는 것을 정상정인 인격을 가진 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양심에는 인간의 비참함에 대하여 슬퍼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이었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린 체 비굴하게 구걸하여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그들은 얼마나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할 때에 아도니 베섹은 잔인하고 포악하고 인격 파탄자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아도니 베섹을 패하게 하시고 망하게 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첫 번째 기록으로 남겨지게 된 것도 가나안 정복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악하며 비인격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즐기며 악을 행하고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 친히 보복하시며 친히 그들의 죄를 물으신 것입니다.

           7절에서 아도니 베섹의 고백 속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지만 그가 이제 자신이 칠십명의 왕들에게 행하였던 대로 당하자 이제야 자신 위에 누군가 계셨으며 그가 자신의 행한 일에 대하여 그대로 자신에게 갚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갚다 라는 단어는 촬람이라는 단어로 완전히 끝내다, 보상하다 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행한 대로 보상하셨으며 그가 행한 행위의 값을 그 스스로에게 지불하게 하심으로 완전히 끝내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7 10절을 보면 17:10절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살피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또한 폐부를 시험한다고 하십니다. 폐부라는 말은 콩팥을 가리키는데 심장과 신장을 가리키지만 인간의 내부에 있는 장기 기관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상징적으로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 마음을 즉 속에 있는 생각과 마음에 품은 뜻과 의도와 동기들을 살피시고 시험하여 즉 조사하신다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마음의 생각과 동기와 의도를 조사하여 보시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보응이란 그대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과응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누군가 죄를 범하고 악하게 살면 반드시 그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누구에게나 옳은 것이며 당연한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게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인이 끊임 없이 악을 행하는데 승승장구하고 잘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선인이 끊임없이 불행을 당하고 억압을 당하고 고통 한다면 보는 내내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드라마와 영화는 악인의 심판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과응보라는 것이 이미 인간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과응보가 인간의 내면에 마음의 본질적인 성향으로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바로 인과응보를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른 인간에 의해서는 심판을 받지 않을 수도 있고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의함과 악에 대하여 그냥 두지 않으시고 벌을 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 7절을 보면 6: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콩심은데 콩이나고 팥을 심은데 팥이 나는 것은 자연 법칙이지만 이 법칙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콩을 심과 콩을 거두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어떤 것에는 전혀 다른 것이 만들어지게 하십니다. 변태라는 말을 아십니까? 사람에게 변태 같다라는 말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을 변태라고 합니다. 애벌레가 가진 모든 기관이 완전히 바뀌어 다른 종이 되는 것입니다. 땅이나 나무에 구멍을 뚫고 더럽게 살던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 다닙니다. 이것은 콩 심은 데 콩이 난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즉 콩 심은데 콩이 났다고 해서 이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것은 이렇게 정하시고 저것은 저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와 만물은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방법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에 대하여 행위대로 보응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하면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가를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저울에 옳은 것으로 보였는가 아니면 악한 것으로 보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생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악을 행한 자에게 심판으로만 갚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사야서 61 8절을 보면 [ 61: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음에 말씀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성실히 갚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앞에 바르게 행하는 자들에게 성실하게 변함없이 모든 하늘의 신령과 복과 은혜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 성실한 갚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에게 빚진 자처럼 빚이 없음에도 성실히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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