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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X513_OfPad4


오늘 우리가 살펴볼 계명은 제 7계명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계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지키고 계십니까? 간음이라는 말은 한자로 간음할 간(), 음란할 음()이며, 사전에는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다른 상대와 성 관계를 갖는 행위, 정조를 지키지 못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즉 간음은 결혼한 배우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계명을 범하는 일에 대하여 이러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레위기 2010절을 보면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배우지 이외 다른 상대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 자는 반드시 둘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간음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엄한 형벌에 처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이 계명을 이해하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계명은 사랑과 애정의 공동체 즉 가정을 어떠한 불순함도 부정함도 더럽히지 못하도록 보호하기 위함 이며, 가정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 계명의 목적은 가정을 어떠한 불순함과 부정함에 더럽히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다 라는 것입니다.

        저도 이 계명을 지키는 목적이 가정을 지켜 불순함이나 부정함으로 더럽혀지지 않고 보호하기 위함이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계명의 전체 목적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려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의 목적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선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계명이 담고 있는 내면적의미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이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간음에 대하여 신약 성경 히브리서134절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보겠습니다. 모든 혼인한 사람들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그럼 왜 결혼을 귀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까? 결혼의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이해하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결혼은 인간으로 하여금 방종하여 짐승과 같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성적 불결함의 죄에 대한 구제책으로 신적으로 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한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그들에게 허용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도리어 각자 자기 아내를 신중하게 접하고 또 각 아내는 그 남편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이 인간의 방종을 막아 짐승과 같이 되지 않도록 성적 불결함의 죄에 대한 구제책으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라고 결혼을 이해하는데 이러한 이해는 결혼의 목적을 너무나 수준 낮게 생각한 것이며, 이해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인간의 타락 이전에 주어진 것이기에 죄에 대한 구제책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결혼 제도를 두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의 목적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창세기 218절을 보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 혼자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좋지 못하다는 뜻을 외롭거나 쓸쓸하다는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상상이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18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좋지 못하니 라는 단어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데 아담의 입장에서의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좋지 못하였다고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계속해서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의 마음과 뜻에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한 것이 좋음 입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했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뭔가 부족하며 결핍되어 있는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즉 아담 편에서의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완전하지 못한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결혼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 편에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좋으신 것이며 하나님이 의도하신 어떤 뜻을 성취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7계명의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이 가정을 지키 위한 도덕적 차원과 윤리적 규범으로써의 의미만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좀더 이 부분을 증명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담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18절 하반절에 보면 돕는 배필을 지으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혼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성취할 수 없기에 돕는 배필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그를 위하여 돕는 조력자라는 뜻입니다. 돕는 조력자라는 것은 서로가 무엇인가 해야 할 일들이 있으며, 성취해야 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배필이 필요한 것이며,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함 입니다.

        왜 이러한 이해가 바른 것인가 하면 그 다음 구절부터 이어지는 내용 때문에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는 돕는 배필이 꼭 남자니까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 속에 이미 남자의 짝은 여자라는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한번도 여자라는 존재를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그의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각종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아담에게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름 지으시는가 보십니다. 18절과 19절을 잘 이해 하셔야 합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을 지으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9절에서 갑자기 들짐승과 새들을 지으시고 그들을 아담에게로 이끌고 오십니다. 우리는 이것이 단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물의 이름을 짓게 하는 내용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시는데 동물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왜입니까? 18절에 돕는 배필을 지으시라는 말씀에서 지으리시라는 단어는 만들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지만 다른 의미로는 임명하다는 뜻으로 번역됩니다. 임명하다라는 뜻으로 번역을 하게 되면 그 다음 구절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짐승과 새들을 아담에게 데리고 오는 것이 그 가운데서 아담의 돕는 배필을 임명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20절의 내용 때문입니다. 2: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마지막 단어를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입니다.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에는 여자라고 이름을 칭할 아담의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20절에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라는 말은 18절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짐승과 공중의 새들 중에서 아담의 배필을 찾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없으므로 라는 단어가 마짜라는 단어인데 발견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아담은 짐승과 새들 가운데서 자신의 짝인 여자라는 이름을 붙여줄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말은 돕는 배필이 꼭 사람인 여자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NASB 영어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but for Adam there was not found a helper suitable for him. 거기에서 아담에게 적합한 돕는 자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무엇 가운데서 입니까? 짐승들 가운데서 입니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루어 나가는 일에 협력하며 도울 수 있는 조력자를 찾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서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임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대리자로써 이 땅을 다스리며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에 아담과 하와는 협력하며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며, 세우는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간음하지 말라는 것이 어떻게 결혼과 연결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간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 제도를 위협하며, 파괴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혼을 통하여 한 몸이 되어 서로 협력하며, 한 몸 안에서 삼위 하나님의 연합을 경험하며, 맛보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망치게 하는 죄된 행위인 것입니다.

둘째는 간음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더럽히며, 파괴하게 하기 때문에 금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6 18-20절을 보면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라고 합니다.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그 다음의 내용들은 음행을 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음행을 피해야 하는가 하면 사람이 범죄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범하는 죄 중에는 범하면 안 되는 나쁜 죄가 있고 범해도 괜찮은 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싫어하시고 우리의 가장 작은 죄에 대해서도 진노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행을 피하라고 하는 것은 음행이 단순히 다른 죄들 보다 더 심각하고 더 크기 때문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음행이 다른 죄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어서 더욱 피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행이 다른 죄와 비교해서 가지는 차이점은 우리의 몸에 직접 범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음행이 아닌 일반 죄는 몸 밖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한다고 하는데 자기 몸에 죄를 범한다는 의미는 자기 몸 안에 죄를 범한다는 뜻입니다.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 몸 안에 라는 의미입니다. 음행은 자기 몸 안에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에 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드는 의문은 다른 죄들도 어떤 경우에는 몸 안에서 죄가 일어나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탐심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몸 안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유독이 음행을 가리켜서 몸 안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할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문맥 속에서 그 답을 찾아 살펴보면 고린도전서 6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6:15절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몸은 분명 우리의 육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았을 때 우리 몸은 죄된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 불의의 병기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에 변화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체 또한 변화되었는데 육체는 영혼과 하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는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영혼에 따라 살게 되어 그리스도의 지체로써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몸이 음행이라는 죄를 범하게 되면 그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더럽혀지게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다른 죄들과 음행의 죄와의 차이점입니다.

        이 부분을 바울은 그 다음 구절인 고린도전서 6 16-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6 16-17절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바울이 창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음행의 죄가 몸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입니다. 음행은 마치 어떤 사람이 창녀와 합하는 것과 같은 것은 그것은 창녀와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단지 음행은 단순한 성적 관계를 넘어 이것은 둘이 한 몸이 되어 한 육체가 되는 행위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라고 말씀하는 것은 마치 창녀와 합하는 자가 그와 한 몸이 되는 것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몸이 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이 되는 것은 그것은 영적인 연합만이 아니라 육체의 연합까지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우리의 몸과 그리스도의 몸이 서로 연합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에 우리 몸 또한 그리스도와 연합 관계 속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 육체를 지배하시며 우리 육체는 그분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요 육체가 된 우리 몸에 음행이라는 죄를 범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육체는 더럽혀 지고 부정하게 되어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죄와 음행의 차이점입니다. 음행은 몸 안에 죄를 지어 그리스도의 지체를 상하게 하며 더럽힘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이것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6 19-20절을 보면 고전6 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값으로 사신 것이 되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며 성령의 전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가지고 멋대로 더럽히거나 부정하게 만들어 그의 몸을 상하게 하며 그분의 몸이 망가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 13절을 보면 [고전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여기서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신다고 하십니다. 몸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오직 주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몸을 유익하고 복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몸과 주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 몸을 부정하게 하여 음행에 이르지 않게 되며 우리 몸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하는 일에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09문을 보면 109문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서 간음, 또는 그와 같은 부끄러운 죄만을 금하십니까?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단순히 간음 또는 그와 같은 부끄러운 죄만을 금하는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이 계명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수동적으로 순종하지 말라는 의미이며 이 안에 진정으로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보면 : 우리의 몸과 영혼이 모두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우리가 몸과 영혼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정한 행동이나 몸짓, 말이나 생각이나 욕망, 또는 그리로 유혹하는 모든 것을 금하십니다.

        이것이 이 계명을 바르게 지키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은 모두 성령의 전입니다. 영혼만이 아니라 마음 만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의 사용 또한 주님의 지체에 합당하게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과 영혼 모두다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이 일에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정한 행동들, 몸짓, , 생각, 욕망, 그리고 그리로 유혹하는 모든 것을 금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 몸의 부정으로부터 자유하며 온전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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