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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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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https://youtu.be/UIou12JpSww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인 사도신경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성부 하나님과 우리의 창조. 둘째, 성자 하나님과 우리의 구속. 셋째, 성신 하나님과 우리의 성화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사도 신경의 첫번째 신앙 고백으로 나는 믿는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첫번째 고백하며, 믿는가 하는 것에 나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의 핵심은 우리가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나는 믿는 다고 할 때에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믿는 것인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즉 사도신경이 단순한 주술적 암기가 아니며, 의미 없는 고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는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라고 고백한다면 그는 반드시 이 고백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이해의 지식 위에 믿음의 고백이 함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첫번째 신앙 고백이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으며, 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여기서 성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가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의 끝 부분에서 이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는 믿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도 신경에서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믿을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성부 하나님은 원래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이셨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이신 성부를 이제 우리 또한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오게 된 것이며 이 아버지의 도우심을 받고 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 15절을 보면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로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양자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성자 예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심으로 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아무것도 없는 중에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우주가 원래 존재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지구를 만드시고 다른 피조물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에 동의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들었으며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만들다 라는 단어는 세 개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라 라는 단어입니다. 둘째는 아사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야찰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은 같은 뜻인 창조하다 라고 번역이 되지만 각기 다른 목적과 의미로 구별되어 사용하는데 아사는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해서 더욱 더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킬 때에 사용됩니다. 야찰은 아사와 비슷하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존 사물을 새로 완벽하게 조성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그 예로 인간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완전한 상태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될 때에 완전한 인간으로써 존재 하게 되는데 이 때에 사용된 것이 바로 야찰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럼 첫번째의 단어인 바라는 이 단어는 아무것도 없는 중에 무엇을 만들어 내는 즉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중에 세상의 것들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대상이 분명 아무것도 없는 중에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세상에 다른 신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분은 전혀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에 대적하거나 맞설 대상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아버지지 라고 부르는 그분이 이러한 위엄과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믿을 때에 우리의 마음에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은 위로와 평강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시라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일이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없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첫 고백에서 우리는 큰 위로와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성부 하나님이 누구신가?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가를 살펴보면 그분은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작정과 섭리라는 말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작정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에베소서 1:11절이 작정의 의미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11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 말씀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대로, 즉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라는 의미로 그 뜻을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의 작정에 대하여 생각할 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정하시고 일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는 우연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나,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그 마음 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구절에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셔서 역사하시는 범위와 대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바로 모든 일에 대하여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만사와 만물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심에 있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정으로 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것도 제외 되거나, 예외로서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며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작정은 영원에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관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또 다른 단어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이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하나님의 ‘섭리’는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이 계획이 목적하는 바를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활동’, 즉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섭리’란 말은 성경에 직접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며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느혜미야 9 6절을 보면 9:6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의 땅 위에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다 주께 경배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주가 되시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의 땅 위에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모든 피조물을 들을 관리하시며 보존하시며 유지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섭리하시는 분이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6 26절을 보면 6: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구체적으로 공중의 새를 지칭하여 가장 미천한 존재조차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성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의 아버지이시며 그 만드신 생명들의 운명 전반에 관하여 섭리하십니다. 들꽃 하나도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사도 신경의 첫 구절의 첫번째 신앙 고백인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는 말씀에 담긴 것이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가진 고백이라는 사실을 아시고 이제부터는 이 고백을 할 때에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의 고백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은 그분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과 인생 또한 그러한 분의 손에 있기에 나는 안전하며, 평안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가 되심에 대하여 감사하십시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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