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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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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바울은 갈라디아서 19절을 통하여 이렇게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는데 바울은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라는 단어는 파문당하다 라는 뜻으로 쫓겨나게 되어 더 이상 참여하거나 머물 곳이 없어지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저주를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심판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는 이 문제로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성도들이 믿음에서 떠나게 되며, 신앙이 변질되어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에도 말하였지만 다시 말하고 있으며, 이 서신 전체의 내용 속에서 이 문제는 갈라디아 교회 내에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 만큼 심각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은 복음이 참된 복음인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 전 사도가 전하고 가르친 복음인지 아닌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이 가르치고,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고 전해지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일은 요한 계시록 22절을 보면 갈라디아 교회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시에 이러한 일들이 교회 안에 만연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칭찬의 말씀인데 에베소 교회는 믿음의 행위를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으며,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교회였고, 복음을 위하여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잘한 점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사도이기에 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하며, 내 말은 참되다고 하는 이들이 교회들을 돌아 다니며, 다른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닌 것은 다른 복음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며,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16절과 7절을 보면 다른 복음의 위험성은 첫째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인 하나님을 속히 떠나는 배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정말 이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상히 여긴다는 단어는 깜짝 놀랄 정도라는 것입니다.다른 복음의 위험성에 대한 둘째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다른 복음은 없나니 라는 말은 원문의 의미는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셋째는 사람들을 교란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란하게 한다는 것은 휘젓다는 뜻으로 흔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한다고 하는데 변하게 한다는 말은 뒤집어 엎는 것으로 이것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 교회를 흔든 거짓 복음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216절을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사람이 의롭게 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로움은 죄책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지 않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칭의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 심판에 이르지 않기 위한 방법은 인간 스스로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의롭게 되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즉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문제는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교인들은 귀가 따갑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전혀 없는가? 오늘날의 신자들은 다른 복음에 따라 살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저는 많은 이들이 다른 복음을 따라 산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신앙 행위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신들의 신앙 행위가 자신들의 구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하여 좀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로마서 82절을 보면 이 말씀은 우리의 신앙의 동기와 목적에 대하여 그 근거가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생활이 가능하게 되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신자는 중생 이후에 생명의 성령 즉 생명이신 성령의 힘이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이제 모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들은 바로 생명이신 성령의 지배 아래서 살게 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삶의 원리와 방법과 방식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큰 변화와 율법의 행위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생명이신 성령의 힘으로 살게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행위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됨을 위하여 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신앙 행위를 행할 때에 이 행위는 어떤 동기와 의도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성품이 성령을 통하여 자신 안에 역사하는 힘을 통하여 되어지는 것입니다.

        두 개의 성경 구절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요한일서 53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에 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관계는 우리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동기에 의도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고린도후서 514-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합니다. 강권이라는 표현은 영어 성경에서는 control compel로 번역합니다. 우리를 조종하고 우리를 강제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사랑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마음을 휘어 잡아 우리로 살게 하는데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고 다시 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는 힘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안에 역사해야 하며, 정상적인 작동 방법이고 참된 복음이 역사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또는 교회 밖에서 행동하는 목적과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신앙의 원천과 근원으로 삼는 다는 것이며, 둘째로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중생 이전 뿐만 아니라 중생 이후에도 신자가 하나님께 드릴 만하며, 받으실만 한 모든 것들은 신자 자신에서 나오는 선한 의지나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결과와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소욕으로부터 이끌림 받아 나오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붙들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에게는 선함이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자신이 선하게 되며, 의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고백할 수 밖에 없으며,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그들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에 의해서 나오는 것만이 선하며, 옳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 오직 성령의 충만을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붙들며 그 안에 있지 않는 자와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 하지 않는 이들은 그들의 모든 신앙적 행위가 옳으며 의롭다는 착각에 빠질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의롭다 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무능력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생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중생한 사람 안에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스스로 의롭게 살 수 있는 것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을 공급받아 활동하게 되며,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에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들로도 결코 의롭게 될 수 있지 않다는 것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과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사실 또한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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