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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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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면서 여러가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더 고통스럽고 슬프게 하는 것을 꼽으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입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고, 함께 할 것 같은 이의 갑작스런 죽음은 당혹스럽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죽음이 주는 이러한 고통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인간에게 운명으로서 덧입혀진 존재의 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부터 인간 안에 죽음의 요소가 함께 지어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죽음은 창조된 이후에 인간의 존재 안에 들어오게 된 외부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 안에서 죽음이 없는 상태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며,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범죄함으로 그 범죄의 결과 죽음이 인간 안에 들오게 되었고, 인간에게 운명이자 숙명으로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히9:27절 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미워하셨으며, 분개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한 사람이 죽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사로라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133절을 보면 나사로의 죽음을 바라보시며 예수님께서 어떻게 느끼시며,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자신의 오빠의 죽음 앞에서 슬퍼 우는 것과 또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비통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두 가지의 각기 다른 정서적 감정입니다. 왜냐하면 이 두 단어 비통히와 불쌍히 라는 것은 각기 다른 대상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불쌍히 라는 표현은 죽음 앞에 무능력하며, 두려움과 고통과 슬픔에 순응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상태에 대하여 가지는 정서로 불쌍히 여기는 감정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매여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죽음을 기뻐하시거나 죽음에 처한 인간들을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미워하시며, 증오하시며, 대적하시며, 멸하려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비통히 여기다 라는 단어는 분개하다는 뜻입니다. 으르렁 거리며, 화를 내고 대적하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바로 죽음을 향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을 두렵게 하며, 슬프게 하며, 고통스럽게 하는 죽음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화를 내시며, 분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은지 4일이나 지나 냄새가 나는 무덤의 돌의 옮기라 하십니다. 그리고 죽음의 지배 아래 있던 나사로를 향하여 외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이 명령에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 죽음을 이기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214-15절을 보면 [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한평생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짊어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은 이제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나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면 왜 나는 여전히 죽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여전히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게 되며, 그 죽음 앞에 슬퍼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불신자가 죽는 것처럼 신자도 죽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죽음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지만 우리 또한 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다름이 있습니다. 불신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으로 죽으며, 죽은 후에 그 죄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하여 죽습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주님이 계신 그 천국에 가기 위하여 죽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이 썩어질 육체가 아닌 썩지 않으며, 죽지 않으며, 질병이나, 아픔이 없는 새로운 몸을 입기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음이며,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신자가 죽을 병에 들었을 때에 가져야 하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는 하나님께서 치료하여 주셔서 이 땅에 좀더 있다 오라 하시면 감사함으로 주를 위하여 더 살면 되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 이 땅의 모든 수고와 고통을 그치고 내게로 와 쉬어라 이제 내가 네게 주는 안식에 참여하라고 부르시면 기쁨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이 땅에서 그토록 바라며 소망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며, 이 땅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에서 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이들에게는 여전히 떠나 보낸 이를 생각할 때마다 슬픈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데살로니가 전서 414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슬픔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입니다. 더 함께 하지 못하며, 곁에서 더 사랑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위로하지 못하고 이제 떠나 보내야 하는 것으로 인한 슬픔입니다. 함께 한 몸을 이루다가 그 한 지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몸의 한 부분이 빈 자리를 만드는데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시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온전히 하나가 될 것을 믿기에 소망 가운데 슬픔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슬픔이 소망이 있는 슬픔인 것은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기 때문에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는 우리는 소망 가운데 슬퍼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 때에 우리 앞서 간 지체들도 함께 오게 될 것이며 그때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한 몸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서로 위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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