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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영상 https://youtu.be/W1bWFRZkhoU



죄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급한 문제이며, 중요한 문제임에도 뒤로 던져져 무관심과 강한 반감으로 교회 안에서 버려져 버렸습니다. 죄에 대한 교회의 대응과 인식은 용서 받음으로서의 죄에 대한 것입니다. 지은 죄에 대하여 사죄함을 받는 것만을 강조하며, 가르침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에 죄는 나와 어떤 관계 속에 있으며, 죄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일에 있어서 알지 못하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며, 뒤로 던져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문제가 분명히 성경에 두 부분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 받아야 하는 죄와 싸워야 하는 죄는 모두다 하나님의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며,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다시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죄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매일 매일 신자의 삶에 직결된 문제이며, 경건과 거룩함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가장 핵심 요소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6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에 함께 죽은 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옛 사람이고 표현하면 이 옛 사람의 특징은 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즉 죄가 지배하며 다스리는 몸이며 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껏 내가 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 결정과 판단과 선택으로 산다고 여겨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영적인 눈으로만 또한 깨달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며, 믿음의 영역입니다. 이전에 우리 모두는 내가 원하고 바라고 선택하고 결정하며 행하는 모든 것이 내가 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결정과 행위는 바로 내 안에 있던 옛 사람 즉 죄의 종 노릇하는 하는 옛 자아가 죄에 이끌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반대가 되며, 거역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바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에서 자유하게 하신 것이며 새로운 생명을 우리에게 주사 살게 하신 것입니다.

왜 복음이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가? 하는 일에 있어서 바로 죄로 인하여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으며 죄의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죄의 힘에서 달아나거나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 14절을 보면 바울은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단어가 바로 주장하지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지배력을 갖다 라는 뜻으로 강력한 지배권을 가짐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죄에 대하여 무기력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지배에서 스스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무능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상태 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한 무지함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상태가 이처럼 비참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첫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지은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이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음에도 그리고 죄를 멸하려 오셨음에도 여전히 죄는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로마서 6 14절 말씀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은 이들의 상태에 대하여 그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즉 비록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되거나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6 13절을 보면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고 명령되고 있는 것은 드리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불의의 병기 즉 죄를 짓는 도구로 죄에게 신자 스스로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린다는 단어는 마음대로 하도록 내어 주다 라는 뜻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 이 명령과 경고 속에서 두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첫째는 우리를 죽였던 죄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비록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내 자신이 스스로 죄에게 내 육체를 내어 주어 죄의 지배아래 놓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 사함 받은 은혜가 크고 놀랍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원이 완성되고 끝이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여전히 죄의 오염 가운데 있으며 죄는 호시 탐탐 우리를 속여 우리 자신이 죄에게 복종하도록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이러한 구절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첫째로 요한일서 3 9절과 같은 내용에 대하여 입니다. 요한 일서 3 9절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도 범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원어적 의미는 죄를 짓다 라는 표현은 구원 받기 이전과 같은 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죄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넘어지며, 유혹을 당할 수 있으며, 죄에 빠질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죄의 낙을 누리며, 죄를 즐거워하며, 죄의 완전한 지배 가운데서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날 때에 그 안에 하나님의 씨 즉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있어서 그의 영혼이 그렇게 사는 것을 부끄러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은 눌리고, 고통스러우며, 불행해 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살 수 없으며, 무엇을 해도 만족함도 없으며 행복할 수 없으며,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두신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책망하시기 때문에 그는 회개하며, 돌이킬 수 밖에 없기에 죄를 짓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마귀의 일 즉 죄를 멸하셨다고 하는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3 8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이 마귀는 어떤 자인가 하면 처음부터 범죄한 자이지만 동시에 죄를 짓는 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짓지만 동시에 죄를 짓게 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를 멸하셨다면 죄도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나타나셔서 주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죄를 짓지 않으려 하며, 죄에게 나 자신을 내어 주지 않으려하며, 죄와 싸워려 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마귀의 일을 주님께서 멸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조금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여전히 하나님과 원수로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상태로 죄의 지배 아래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여전히 죄의 문제가 내 안에 있으며, 죄의 오염으로 인한 문제가 여전히 내 안에서 역사하며 나를 유혹하며, 충동함으로 죄에게 불의의 병기로 내 육체가 마음이 사용되도록 또한 이용하도록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고 경고하심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의 구원은 이 일을 위해서 라는 사실을 로마서 6 4절을 통하여 확인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고 그와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이 장사 된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은 무슨 연유입니까? 도대체 나에게 무슨 귀한 것이나 선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하심과 자비와 은혜로 우리를 택하셔서 죄의 지배아래서 건져 내어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를 받은 나는 예전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옳겠습니까? 여전히 모든 것을 무시하며, 알지 못한채 내 육신 안에서 역사하는 죄가 이끄는대로 사는 것이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겠습니까? 자문해 보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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