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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6H0v8JGM-9M


마태복음 16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맥락없이 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6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때로부터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 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서 나타내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때로부터 라는 말은 앞에서 베드로의 고백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 이후에 주님은 자신의 교회를 이 고백 위에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고백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이 때로부터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분이 하실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2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항변이라는 단어는 꾸짖는다 라는 의미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은 것입니다. 주여 그러한 일이 절대도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라는 단호하게 막아서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누구나 받을 수 없으며, 누구나 순종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데 마태복음 1624-25절을 보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합니다. 또한 더하여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쉽게 받으며, 순종할 수 없는 이유는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명령하시는데 여기서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즉 자기를 죽이고 주님을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목숨을 잃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자기 목숨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기 부인과 죽음과 자를 목숨을 내어 놓음에 대한 받기 쉽지 않고,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 후에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말씀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6절을 보면 이 말씀의 문맥과 배경을 보면 이제 이 말씀이 이해가 가게 됩니다. 왜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모른다고 하며, 자신을 위한 일에 반응하지 않고, 자기를 죽은 자처럼 여기며, 자기 목숨을 내어 놓게 되는가 하면 자신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의 내용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때에 왜 그렇게 하지, 그렇게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한 순종을 하는 것이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모든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 네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목숨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며, 자신의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앞의 내용들에 대하여 아까워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고, 억지로하지 않고 기쁨으로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하게 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의 사실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비교되는 것은 온 천하와 사람의 목숨으로 여기서 목숨이란 단어는 헬라어 프쉬케로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비교는 온 천하라는 표현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부, 은과 금, 명예와 영광, 화려함과 즐거움과의 자신의 영혼에 대한 비교입니다.

둘째로는 비교 되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익과 가치와 그리고 값어치 입니다. 셋째로는 이 구절에는 두 개의 의문문 즉 질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 둘에는 매우 강한 결정과 그 결과가 비교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와 어찌 바꾸겠습니까? 입니다. 이러한 비교에 대하여 진지하고 깊은 숙고를 하게 되면 누구나 온 천하가 목숨과 비교하여 더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목숨의 얻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기 목숨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 온 세상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교는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며, 실제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한 것이며, 취한 것입니다. 모든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모두다 한편을 취할 수 밖에 없었고, 취해야 했습니다. 이 양편에서 중립 지역은 없는 것입니다. 한 쪽 편을 취하면서 다른 편을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주님의 말씀의 의미와 내용을 알고 자신의 영혼을 제대로 보는 자들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얻는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참으로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 염려하며, 자신의 목숨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는 자라면 반드시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유는 그래야만 자신의 목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되는가 하면 첫째로 세상의 좋은 것들은 모두 다 그 끝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은 언젠가 끝이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언제 있었는가 할 정도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10절을 보면 주님의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시에 어떠한 일이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에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라고 합니다. 첫째로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간다고 합니다. 떠나 간다는 말은 사라진다라는 뜻으로 불로 인하여 하늘이 덮여 보이지 않게 되건 또는 실제적으로 사라지 건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는 의미는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불에 의해서 해체되어진다는 의미로 세상이 더 이상 이러한 존재의 양식으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타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물로 심판하셨지만 이제 세상 종말에는 불로 심판하셔서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경고에 대하여 주의 하며 믿고 살기에 온 세상을 얻는 것에 마음을 두거나 선택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세계의 모든 것은 각 개인이 죽게 될 때에 끝이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와 동시에 그의 세계는 그와 더불어 끝이 납니다. 그와 관련된 모든 세상의 즐거움과 덕 그리고 명예도 끝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땅에서 그가 소유하며 기뻐하던 것들과 그가 모은 모든 금과 은의 보물창고가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가 그것들을 꼭 품고 갈 수 없다면 세상을 떠날 때 그는 그것들을 영원히 두고 가야 합니다. 살았을 때 매우 화려한 가운데 살았던 것이 그에게 무슨 위로가 될 것이며, 높은 자리에 올라 명령하면서 누렸던 모든 것들이 호화롭고 빛나는 장식 가운데 정렬되고, 그의 장례식이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한들 다만 그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를 알고 지내던 이들에게 그가 세상에 살 때 누렸던 부와 명예를 나타내주는 것 외에 어떤 위로가 되겠습니까? 죽어가고 있을 때 사람들이 와서 절하고 그에게 무릎을 꿇고 굽실대는 것을 보는 것이 무슨 기쁨이 되겠습니까? 감각적 쾌락과 매우 풍요로운 삶과 기쁨 가운데 살아갔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죽어가고 있는데 지구의 많은 부분들을 지배하고 온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누가복음 12-19-20절을 보면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자신이 얻은 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줄 마음이 없던 그 엄청난 부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고를 허물고 더 크게 짓고 그 안에 많은 것들을 쌓아둔 그는 영혼에게 말합니다. 수 년 동안 먹을 것을 쌓아 두었으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부르면 네가 쌓아둔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사는 자이기에 온 세상을 보다 자기의 목숨을 더욱 귀하게 여길 수 밖에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세상의 좋은 것들은 매우 불확실하며 죽기 전에 사라지는 것도 있음을 알고 사는 자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병에 걸릴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은 사고나 불행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즉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확고하게 붙잡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언제든 우리의 손에서 빼앗겨 지며, 잃어버리며,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이 빼앗겨지면 그는 살기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임시적인 것을 즐기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날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세상에서 일어납니다. 그러할진데 온 세상을 얻은다 한들 그것이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며,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에도 자신의 목숨 보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숨 즉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세상 끝 날에 모두 파괴되며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들은 개개인에게는 그가 죽을 때에 끝이 납니다. 어느 때는 죽기 전에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파멸될 때, 지상의 모든 것들이 불살라질 때, 바다도 다시 있지 않게 되며,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그 빛을 잃을 때도 영혼은 계속 살아있을 것입니다. 몸이 죽어 흙으로 돌아갈 때도 영혼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사고와 병 그리고 노환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끝날 때도 영혼은 계속 될 것입니다. 세상의 유익과 즐거움은 몸보다 더 이상 오래 존속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계속 존속할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잠시 가치가 있는 것일지라도 항상 존속하여 영원히 존속하는 것은 잠시 존속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백 만년을 존속하는 것은 일 분만 존속하는 것보다 훨씬 귀중한 것입니다. 천 년이 이 분보다 긴 것보다 영원은 사람의 생애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길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왜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곧 자의 육신을 위한 삶을 죽이며, 자신을 잃고 사는 것이 더 나은가 하는 것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네 목숨보다 네 영혼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냐? 영생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냐? 너는 무엇을 너의 최고의 가치로 이익으로 유익으로 삼으려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립은 없을 뿐만 아니라 둘 다는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얻으려 하며 그것을 위해 살면 반드시 죽기 때문이며, 자신의 영혼을 파멸에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믿는다면, 이것에 대하여 확신한다면 주님의 말씀이 옳으며, 내게 유익한 것이며, 나를 살리는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주님의 물음에 어떠한 답으로 살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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