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영상 https://youtu.be/umMjKchdnkk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도구이자 은혜와 호의를 힘입는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세우며, 의심과 불신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확신과
소망을 주며, 마음의 평안과 용기와 담대함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게
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1장 17-18절을 보면 이 내용은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보면 무엇을 알게 되는가 하면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기도를 통하여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충만함을 기대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는 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혀지며,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불러 주신 그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 내가
왜 예수를 믿는 것이 복된 것인지, 이 후에 내가 어떠한 영광스러움 가운데 서게 될 것인지, 내가 이후에 고대하며 바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니다. 또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내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왜 기도할 때에 세상적인 것을 위하여 기도하면 안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 되시며, 나로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이심을
기도를 통하여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다음의 내용을 보면 에베소서 1장 19-20절을 보면 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를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얼마나 큰지를 세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위력이라는 표현은 영어 성경에서 incomparably
great power 라고 번역하였는데 비교가 불가능한 엄청난 힘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힘으로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심을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알 뿐만 아니라 그 힘이 역사하고 하게 요청하며, 도우심을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어떻게 보여지게 되는가 하면 그의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것을 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서 자신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신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 영원히 죽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게 하시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보이신 것이며, 그 능력이 지금도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이러한 하나님을 능력을 힘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기도의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기도할 때에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을 먼저 내 놓거나 세상적인 것을 위하여 기도해서는 특히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것에 대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순서가 있으며, 또한 응답을 받는 약속이 있는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해도 안된다는 기도에 대한 불신과 패배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도자의 자세와 태도가 올바른 기도자의 모습인가 하는
부분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가 만약 기도자의 시급한 문제와 현안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결책과
대책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성경 또한 이러한 기도에 접근 방법에 대하여 지지를 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기도를 기도자의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허용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에 대한 표준이며 원리적
기준이 되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볼 때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신자의 기도의 모범이 기도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순서와 내용을 보면
주님은 허겁지겁 자신의 말만 하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만을 던져 놓고 기도의 자리를 뜨는 것과 너무나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9-10절을 보면 주님은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와 그분이 기도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로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청원과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고 당신의
뜻이 하늘에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는 청원을 모든 것에 앞서 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기도는 기도자의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문제만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가를 묻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구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것들이 기도의 가장 큰 중심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우선 순위에 대하여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기도는 나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어 응답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들 안에 각인이 되는 좋은 또 다른 이유는 항상 이기적이고 자기애 라는 강한 죄성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자 안의 죄는 기도라는 영적인 일 조차도 부패하게 만들어버려 쓸모 없게 만들며 기도를
망치게 하고 의미 없게 하며 결국에는 기도의 능력을 부정하며, 기도를 하지 않게 만들어 버리게 만들고자
함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신자들의 대부분이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으며 기도를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
종교의 형식적 요식행위로 이해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입니까? 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고 들으시지 않는 기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는 모든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이방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그들의 기도는 조금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떠한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들으시게 하는가에 대하여
답변을 보면 답: 첫째, 그의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만 그가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니다. 둘째, 우리 자신의 부족과 비참함을 똑바로 철저히
깨달아 그의 엄위 앞에 겸손히 구합니다. 셋째, 비록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 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세개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첫째는 자신의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만 구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부족과 비참함을 깨닫고 겸손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가 가르치고 있는 이 세 개의 내용은 이미 종교 개혁자인
칼빈이 가르친 참된 기도자의 자세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올바른 기도의 자세에
대하여 첫째는 경외심을 가지고 하는 기도 둘째는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강하게 느끼면서 하는 기도 셋째는 자기 신뢰를 버리는 겸손의 기도 넷째는
확신을 가지고 하는 기도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번째가 경외하는 태도인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17문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는 그의 말씀에서 즉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만 구하게 하시며 구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 마음에 다하여
기도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가르치는 올바른 기도는 우리의 기도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가 모르는 분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합니다. 가족이 응급실에 들어가 의식을 잃고 있을 때에 밖에서 가족들은
손을 모으고 기도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신에게, 알 수
없는 어떤이에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기도라고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들으시는 기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그분이 자신을 계시하신 성경을 통하여 배우고 익혀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에 대한 경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헛되게
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자신도 모르는 어떤 신에게 비는 기도에
응답하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더럽히는 것이며 자신의 영광을 거짓된 것에게 넘겨주는 것이며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비는 기도를 기뻐하실 수 없으며 그것을 모욕으로 여기시며 멸시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부족과 비참함으로 인한 겸손함 입니다. 우리는 앞서서
기도는 믿음을 요구하며 믿음은 기도를 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것으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이며,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절망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자신의 부족과 비참함을 가진다는 것은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슬프게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의 대상을 바르게
인식함으로 그 앞에서 스스로 발견하게 될 때에 경험하게 되는 감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나는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의 이러한 상태는 참으로 비참하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심히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엄위 앞에 겸손히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부족한 존재이고 비참한 존재인지를 깊이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께 당당하게 요구하거나
하나님을 위협하거나 협박하는 태도를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을 함부로 구할 수 없게 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구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도 창조주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자발적인 사랑과
긍휼입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청원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가슴을 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비록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를 우리는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래 기도했으니까 응답하시겠지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정성을 기울였으니까? 응답하시겠지가 아닙니다. 내가 포기 하지 않았으니까? 응답하시겠지 라는 것은 여전히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응답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기에
안 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며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그분의 약속과 그리스도 예수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이 필요한 것이며 이것들 만이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셨으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해도 좋다고 허락하신 것들이 있다는 것인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에 그것들이 다 담겨 있습니다.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필요성을
보게 되는데 우리의 영혼과 몸에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영혼에 필요한 것만 것 가지고 계셔서 그것만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몸 즉 우리의 육체가 필요한 모든 것 또한 가지고 계시며 그분으로 부터 모든 생명이 나오며 그
생명으로 모든 살아 있는 것들 것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서신에서 요한의 기도 가운데 이러한 것을 보게 되는데 요한삼서
1장 2절을 보면 네 영혼의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합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처럼 건강과 범사의 모든 일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기도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다는 것은 이것들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얻으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하여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도는 우리의 육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이
세상에 살아갈 때 필요한 것뿐 것 아니라 더욱 중요한 우리의 영혼을 위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공식적 은혜의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하며, 기도를
통하여 위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은사를 받도록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