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umrW8MS6jWI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의 여섯번째 간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시는 구원의 행위를 영어로는 Calling이라고 하고, 일반적으로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일반적으로 부르심을 받는 자들 가운데 보이는 보편적인 특징이 있는데 하나님께로 이끌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일어나는 강렬한 느낌이든 또는 겉으로 들어 나거나 또는 마음을 강하게
휘몰아치는 격한 감정 없이 지적인 동의, 혹은 잔잔한 마음의 설득됨으로 나타나는데 둘 다 하나님께로
이끌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끌림의 현상이 각기 다를지라도 이끌림의 내용은 동일한 것인데 그들
안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며, 하나님과 그분이 행하신 일을 믿어야 하며,
그분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 반드시 이러한 내용들이
담겨져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원의 방법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받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부르심은 부르심을
받는 자들의 마음을 강렬한 통회로 그리고 잔잔한 마음의 변화와 설득됨으로 하나님을 필요로 하며, 그분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섯번째 간구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청원인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는 것과 악에서 구해
달라는 청원은 나는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으로 도움을 구해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타락의 깊이와 부패의 정도를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러한 기도를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인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싸울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죄인됨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우리가 악한 존재라는 것은 죄를 짓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를 절대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은
단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선을 행하려는 생각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우리 영혼의 심각하고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부패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는데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면 우리의
부패한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다는 말은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
가장 부패하고 가장 더럽고 가장 악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13장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만약 구스인이 그의 검은 피부를 그리고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합니다. 그럼 사람들이 스스로 악에 익숙하면서도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흑인이
그의 피부를 희게 할 수 없으며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악에 익숙한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은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여 조금도 선을 행할 수가
없는 상태이기에 이러한 청원이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말에 대하여
집중하여 분석하며 해석해 보겠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라는 말에서 들게 라는 말은 헬라어 에이스라는
단어로 안으로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라는 말은 시험 안으로 들어가지 말게
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강조하면 빠지지 말게 해 주시옵소서 라는 의미가 됩니다. 다음으로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청원을 하는데 여기서 악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악을 사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악을 사람들이 짓는 악한 행동이라고 보는 견해 입니다. 이 두 견해는 어느 쪽이 옳은 것이 아니라 둘
다를 취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즉 사단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여야 달라는 의미와 더불어 또한 우리가
짓게 되는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청원이 함께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하옵소서 라는 말이 구조 구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건져 올려 살게 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통하여 배우게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어떠한 위험 가운데 놓여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기도하기를 원하시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날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말고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기도를 날마다 드려야 하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은 날마다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의
상황과 악한 자인 사단과 죄악을 행하는 일들에 둘러 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의 구출하심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이 날마다 전쟁터이이며 영적 전쟁이 날마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정작 전쟁에 참여한 자신이 깨닫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 답게 살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며, 신자로써 승리할
수 없어 패배자의 삶이 일상이 되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패배가 일상이 되는 것을 주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우리 자신만으로는 너무나 연약하여 우리는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사오며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신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나이다. 첫번째 문구를 보면 우리 자신만으로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연약하여 우리는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머리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부분이 가슴으로 그리고 심령 깊이 인식되고 참으로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정말
주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자 한번이라도 마음을 먹었던 사람들은 모두다 이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해봐도
안돼 더라는 것입니다. 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믿음으로 살려고, 참된 신자가 되려고 할 때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들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울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귀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세상이며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우리의
육신으로 이것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마귀의 공격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을
보면 우리는 성경이 마귀의 존재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마귀의 존재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또는 우리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실재하는 실체라는 사실을 먼저 직시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역사하는 방식은 안으로는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죄를 충동질하고 부채질하여 죄에 사로잡히게 하는 일을 합니다. 동시에 밖으로는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도록 세상의 도구들을 사용하고 자신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넘어뜨리는 사단의 존재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 사단으로부터 구출해 주시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세상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자인데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먼저 육신의 정욕은 성적 쾌락을 의미합니다. 육체적인 쾌락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려 사람들은 성적 쾌락과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둘째는 안목의 정욕으로 보고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일에 빠지고 귀를 즐겁게 하는 일에 빠지게 하며 더욱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것들로 마음을 빼앗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 들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안목의 정욕에 중독되어 살아갑니다.
미디어에 빠지고 스포츠에 빠지고 음악에 빠지고 하는 일들은 우리의 인생과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셋째는 이생의 자랑인데 이것은 명예욕인데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원하며,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자신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며 그것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세상에서
간절히 잘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하는 일보다 잘되어야 하고 내 자식들은 더욱 잘되어야
하고 그래서 인정받고, 존경받고, 칭찬받고, 사랑받으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높이려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으며 세상에 사는 동안에 끊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대적은 나의 육신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을 보면 우리를 넘어뜨리는 실체중의 하나는
사실 나 자신 안에 있는 욕심이 입니다. 이 욕심이 자신을 끌고 미혹되게 하여 시험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게 하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는 가만이 내버려 두면 무럭 무럭 자라 결국에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며 우리가 매일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상황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처한 문제들이 무엇이며,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우리를 대적하며, 맞서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기도함으로 이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며,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시는 피할 방법과 대처 방안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섯번째 청원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그러하므로 주의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친히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이 영적 전쟁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우리의 원수에 대해 항상
굳세게 대항하게 하시옵소서 그러하므로 어떻게 합니까? 주의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친히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여 달라고 구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영적 전쟁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우리의 원수에 대해 항상 굳세게 대항하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마지막 청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