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성령의 열매에 대한 몇가지 사실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

by YC posted Jun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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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A-Isp7OoKOo


오늘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 가운데 그 증거로서 나타나게 되는 열매에 대하여 그 특성과 의미들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을 보면 첫째로는 성령의 열매라고 할 때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이라고 하면서 아홉 가지를 열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볼 때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이라고 할 때에 열매라는 단어는 단수입니다. 즉 열매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이점이 가지는 것은 분명한 대조를 이루기 위함이며,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바울은 육체의 일들과 성령의 일들에 대하여 대조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언급하기에 앞서서 바울은 육체의 일들 즉 육체 가운데, 육체를 위하여 사는 자들이 맺게 되는 열매들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갈라디아서 5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라고 할 때에 육체가 행하는 일들이라고 복수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분명하다고 할 때에 분명하다는 것은 명백하며, 확연히 드러나며, 보여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입니다.

        육체가 맺는 열매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하나로서 서로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육신적 탐욕의 삶은 단일성과 동일성이 결여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단일성과 동일성이란 의미는 다양하며 일관성이 없으며, 서로 관련을 맺지 않고 여러가지 각기 다른 동기와 욕구와 욕망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가 하나로 단수인 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는 단일성과 동일성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그분이 거하시는 자 안에서 그의 삶을 조화와 통일된 목적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열매가 하나인 것은 영적인 성숙도가 높아간다는 것은 단편적으로 이번에는 이 열매를 맺고 다음에는 저 열매를 맺는 그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에게 이번 주에는 사랑을 실천하고 다음 주에는 희락을 실천하고, 그 다음 주에는 화평을 실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형태의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입니다. 즉 성령의 열매로서 맺어지는 아홉 가지의 내용들은 모두가 함께 그리고 고루 그리고 연합 가운데서 맺고 자라고 성숙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관한 특별한 사실은 성령의 열매를 과실이라고 부른다는 것에 대하여 입니다. 그것은 열매가 자라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감에 따라 큼직한 크기와 맛이 완전히 든 과일이 되려면 한 계절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의 성숙한 형태의 성령의 열매를 어린 아이에게서나 혹은 새로 믿게 된 자에게 기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숙하게 익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을 단회적이며, 극적인 특정한 시간상의 사건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영적인 성장의 지속적인 과정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 성장은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자신들을 수동적인 자세로 머물게 하는 그러한 성장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 성장은 일평생 동안 지속되는 기도와 신앙의 훈련과 영적인 전쟁 속에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대한 세번째의 사실은 성령의 열매는 복합적인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하나의 열매가 많은 양상들을 지닌 것은 이 열매가 복합적인 열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양상들이 수적으로는 아홉개의 그리스도인의 덕목들이며, 편의상 우리들은 이 덕목들을 세 개의 그룹 즉 기본적인 덕목등에 속한 열매들 둘째는 타인에 관계된 열매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 관계된 열매들로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갈라디아서 522-23절을 보면 처음 새 개의 덕목들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기본적인 성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이 첫번째의 사랑은 다른 곳에서는 율법의 완성이라고(13:10) 불리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특정한 대상이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뜻으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헬라어 단어 아가페는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사랑은 내게 유익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는 사랑입니다. 단순히 타인을 위해 이해타산없이 사랑 자체를 주고자 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바울이 신령한 은사들을 논하는 중에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모든 것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강조한 바를 통하여서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희락은 무엇보다도 먼저 베드로서에서(벧전1:8) 베드로가 말하듯이 형용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 있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러한 기쁨이 우리에게서 넘쳐 흘러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의 최고의 표적은 침울한 얼굴과 음울한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듯한 기쁨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 결핍증을 보여주는 슬픈 현상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번째의 덕목은 화평입니다. 여기서 화평이라 함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합니다. 이 화평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고 그러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영생을 물려 받을 유업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갖게 되는 평강입니다. 하나님과의 이렇나 화평은 우리 삶의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불평 대신에 만족이 있고, 걱정 대신에 신뢰가 있고, 계속적인 염려 대신에 평온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의 세 덕목들은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것들입니다. 먼저 오래 참음은 분내기를 더디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인내하며 우리에게 잘못을 행한 자들을 기꺼이 용서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는 자들에 대해 기꺼이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오래 참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 하셨듯이 타인의 결점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들의 모습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비는 타인의 마음가지메대해 예를 표시하며 친절함과 관심을 쏟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덕목은 예수님께서 언제나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들을 기꺼이 도우심으로 나타내 보이셨던 덕목입니다. 이것은 무자비함의 반대적 개념으로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세심한 배려와 친절함 그리고 그들을 향한 사랑스럽게 대함등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양선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이 덕목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선행 즉 항상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자세라 함이 더 좋습니다.

        마지막 세 덕목은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 관한 덕목들입니다. 첫째로 충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들을 감당함에 있어서 성실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신뢰성도 포함이 되며, 충성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며 약속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둘째 덕목은 온유로 교만이나 반항, 폭력 등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 열매는 겸손으로부터 흘러 나오는데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인에게 기꺼이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협력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합니다.

        마지막 덕목인 절제는 문자적으로 속에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즉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미덕을 말합니다. 우리의 욕구나 충동 혹은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다른 덕목들과 마찬가지로 이 덕목 역시 우리 자신의 힘으로서는 달성되거나 유지될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의 아홉가지 양상들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더욱 철저히 성령께 복종시켜야 하며, 우리는 그들 중 얼마가 아닌 이 모든 덕목 중에서 성장하게 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잊기 말아야 하는 것은 성령께 대한 복종은 자기 중심적인 삶의 가장 좋은 치유책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데 갈라디아서 516절을 보면 성령을 따라 행하면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부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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