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장 18절

by YC posted Jul 19,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tnAS51eiw5Y



성령의 충만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에베소서 5 18절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대조가 있습니다. 바로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이 대조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함은 마취와 각성간의 대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감각을 잃어 버리며, 마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모든 감각이 둔화됩니다. 그래서 혀가 꼬부라 지고 말이 많아지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술 취함을 통하여 몸이 반응하는 방식입니다. 감각이 둔화되고 생각과 사고가 마비되며, 신경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함은 무엇인가 할 때에 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성이라 함은 깨어나며,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모든 신경이 제 자리를 찾고, 몸의 모든 기능이 온전한 상태이며,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으며, 반응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마음의 생각과 사고는 냉철하게 모든 것을 분별하고 분석하며 이해할 수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한 상태인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것에 각성하게 하며, 우리의 영혼이 제 기능을 하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삶을 선택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대조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두번째로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충만하다 는 동사는 명령형으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도움이 될 만한 팁이나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바울 개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주는 명령이 아니라 바울을 통하여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 말씀을 주님을 대신하여 교회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측면이 아닌 많은 선택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순종해야 할 명령입니다.

        둘째는 충만이라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몇몇 특정한 사람들 목사나 선교사나 교회의 직분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단지 몇몇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만 가질 수 있는 경험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도 아니며, 모든 신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충만이라는 동사는 현재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제시제는 계속적인 동작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는데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 13절을 보면 이 말씀은 에베소 교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는데 그들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 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진리의 말씀인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었으며,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인쳤다는 표현은 부정시제로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잠정적이거나 순간적인 동작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문법입니다. 이들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을 때에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신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계속해서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형이라는 것이 암시는 있는 또 다른 의미는 그 누구도 이 충만함을 단회적으로 다 받았다고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다는 것은 평생의 도전이며, 날마다의 도전이기도 한 것입니다. 계속적인 기도와 계속적인 영적 훈련과 끊임없이 깨어 있음을 통하여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계속적으로 받고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령 충만은 마치 숨을 쉬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마치 심장이 지속적으로 뛰어 인간이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것처럼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적으로 살아 숨쉬게 하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심장에는 암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세포 분열이 일어나지 않아 암세포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상식인데 심장에도 암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심장에 종양이 생겨 암이 될 수는 있으나 이는 대단히 희박하며, 10만명당 1명 한 명 정도로 발생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에는 암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심장에 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폐나 간등의 내부 장기에 발생한 암이 전이가 된 경우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심장이 그러한 것처럼 지속적인 성령의 충만은 영적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번째로 충만이라는 단어는 수동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께서 우리를 채우신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성령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으로 계속해서 충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온전히 성령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기꺼이 성령의 음성을 들어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정결하게 하는 일에 힘을 쓰며, 모든 불의와 악을 마음에서 제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려고 애를 쓰며,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러한 삶에 대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 일로 묘사는 성경 말씀들이 있는데 먼저 로마서 8 4절을 보면 바울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성령의 충만함을 성령을 따라 행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5 25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은 첫째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고 둘째는 성령의 힘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산다는 것은 성령을 기다리며, 그에게 우리를 위해 해주실 것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성령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성령은 말씀을 떠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성경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어떻게 성령에 따라 살 수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말씀드리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산다는 것은 육신적 소리들을 잠재우고 육신적 미움의 힘들을 누르며 모든 충동적 감정들을 억제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으로 성령의 힘으로 산다는 것은 필요한 영적 능력을 얻기 위하여 그에게 기댄다는 뜻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모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에 적합한 힘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일이며,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기도를 통하여 그 성령을 간구하는 일이며, 날마다 겪는 모든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믿음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과 계속적인 접촉을 통해서 임을 기억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