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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lbYnrzQWD8


잠언 25 11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경우에 합당한 이란 말은 상황에 알맞게 표현된 이라는 뜻입니다. 누군가 어떠한 말을 했는데 그것이 시의적절 하고 상황에 딱 알맞게 표현된 말은 마치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유로 표현된 아로새긴 은쟁반이란 표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은쟁반에 금 사과가 새겨져 있는 것을 의미하는지 또는 은쟁반에 금 사과가 담겨 있다는 말인지 모호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말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하여 입니다. 상황에 알맞게 표현된 말은 가장 귀한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라고 해서 다 가치가 있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잠언 25 11절의 경우에서처럼 오직 말이 아름다운 것은 경우에 합당할 때입니다. 오히려 말에 대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보고 살펴보다 보면 많은 구절들 속에서 말의 중요성과 조심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은 많은 경우 가치 있고 아름답기 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관계를 파괴하며 심지어는 자신만이 아니라 남의 인생도 파괴할 수 있는 무시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 2절을 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도 실수가 많지만 말에 있어서는 더욱 실수가 많아서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말에 실수가 많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수라는 단어가 누구나 할 수 있는 또는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실수라는 단어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밥을 할 때 물을 더 넣어 약간 질거나 덜 넣어 되거나 하는 사소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즉 죄를 지어 비틀거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이 우리를 비틀거리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죄에 우리를 던져 넣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에 대하여 성경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경건을 해치는 악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 19절 말씀을 봅시다. 이 구절에서 첫 단어는 너희가 알지니 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알지니 라는 말은 너희가 알아야 한다는 명령형입니다. 번역하면 이것을 알아라 라는 말입니다. 야고보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세 개의 주요 내용이 말해지는데 첫째는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이며 둘째는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세 번째는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19절의 내용을 살피면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한 묶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듣는 것은 속히 즉 빠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는 것은 더뎌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 기능적으로 듣는 귀와 말하는 혀는 엄청난 기능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능의 차이란 실제적으로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약 3세배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즉 인간은 누군가 말할 때에 말하는 속도보다 듣는 속도가 세배나 빠른 것입니다. 그런데 야보고는 일반적인 인간의 신체 기능에 대하여 당연하게 되어지는 일을 마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듣는 귀와 말하는 혀의 기능적 차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 속에서 말하고자 하기 때문에 명령적으로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라는 말은 단순히 기능적으로 빨리 들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듣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생각하며 들어야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로 서로 다투며 갈등하며 싸우는 이유는 서로에게 소통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듣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듣는 것에 기술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잘 듣는 것입니다. 바르게 듣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의도를 이해하여 듣는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듣는 기술이 없어서 종종 오해하거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야고보는 듣기는 속히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합니다. 더디라는 말은 천천히 입니다. 이것도 혀의 기능적 능력에 대하여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생각하고 따져보고 이것이 경우에 합당한 말인가, 이 말을 해도 되는가? 이 말이 지금 필요한 말인가를 판단해보고 말하는 의미입니다. 말의 신중함입니다. 말함에 있어서 절제의 필요함에 대하여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말에 있어서 더디게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신중하며 절제하며 정제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다음에 나오는 세 번째의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말은 다른 상황에서 발생되는 것보다는 문맥적으로 대화 속에서 발생되는 분노로 이해함이 옳습니다. 즉 듣기를 속히 하되 말을 신중이 절제력과 정제되고 순화된 언어로 부드럽게 하는 것은 분노를 일으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깊은 생각이 배재되고 절제하지 못하여 급하고 정제되고 순화되지 못한 말은 반드시 분노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스스로 분노에 휩쓸리게 됩니다. 이러한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20절이 말하는 것처럼 되기 때문인데 야고보서 120절을 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며 기대하시는 기준은 분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은 이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말에 있어서 무절제하며 자신의 혀를 금하지 않는 자는 21절에서처럼 더 큰 문제 안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라는 말은 앞의 내용의 결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또한 앞에 언급한 내용들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고자 하는 것으로 말을 더디해야 할 이유와 성내기를 더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라고 합니다. 무엇이 모든 더러운 것이며 무엇이 넘치는 악입니까? 무절제한 말이며, 남을 비방하는 말이며,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며, 남을 쓰러뜨리고 넘어지게 하려는 의도를 품은 말입니다. 이러한 모든 말은 더러운 것입니다.

        에베소서 4 31절을 보면 공동번역은 이것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4:31 모든 독설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 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버리십시오 이 모든 단어들이 가리키는 것은 말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더러운 것이 가리키는 것은 감정이 절제되지 못한 말이며 정제되지 못한 말입니다. 이것이 더러운 것입니다. 더럽다는 말은 불결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 순결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 앞에 더러운 것이며 불결한 것으로 순결하지 못합니다. 왜 이것이 불결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로 이러한 것들은 항상 대상이 있습니다. 그 대상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입니까?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39절을 보면 여기서 이것은 혀입니다. 즉 마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저주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표출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이란 의미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하여 욕설을 하며 격정과 분노와 고함과 욕설을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지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입니다.

        둘째는 자신을 더럽히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며 자신의 마음을 더러움과 불결함에 내어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과 함께 앉지 말며 이러한 자들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 또한 함께 더럽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자신을 죄에 이끌려 스스로를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불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중하지 못하고 절제되지 못한 말은 비방과 독설과 분노와 고함 소리와 욕설은 하나님 앞에 불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결하다는 것은 경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는 21절에서 이렇게 경고하는데 다시 야고보서 121절을 보면 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버리고 라는 말은 옷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옛 성품 죄인된 옛 모습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새 옷을 옷 입은 자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의 특성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부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러운 것입니다. 우리의 옛 성품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함께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옛 성품으로 돌아가 더러운 것을 우리의 마음에 두고 우리의 입술에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지 않은 사람은 그들의 더럽혀진 마음에 따라 말함으로 더러운 것이 그의 마음에서 나와 자신을 더럽히게 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 마음이 변화된 사람이며 옛 성품을 죽인 자입니다. 그렇기에 그 자신을 더럽히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이러한 기도를 합니다. 시편 141 3절입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그래서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라는 간절한 기도는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 파수꾼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잘 압니다. 우리는 말에 실수가 많은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 자신이 더럽게 되지 않기 위하여 파수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문이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하거나 헐뜯거나 욕하는데 열리지 않도록 남을 무너뜨리며 쓰러뜨리는 일에 열리지 않도록 죄를 짓게 하게나 범죄하는데 열리지 않도록 주여 우리의 입술을 지켜 주소서 라는 기도를 드림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입술이 무절제하게 열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경건해짐과 동시에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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