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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6jzP0feB8cM




로마서 416절을 보면 바울은 이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모든 사람이라고 지칭한 것이 바울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인만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바울은 모든 이방인들 또한 포함하고 우리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해 주는 것이 로마서 411절인데 로마서 411절을 보면 여기서 그는 아브라함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무할례자란 이방인을 가리키며, 유대인이 아닌 자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직계 후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7절은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는 인간적으로 생면부지의 사람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브라함과 우리와 관련이 있으며, 그는 너희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럼 무엇으로 우리가 아브라함과 관련이 있으며 아브라함은 왜 나의 조상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이 우리와 아브라함을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되며, 내가 비록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나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아브라함을 나의 조상이 되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같은 믿음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아브라함이 시초라는 것이며, 시작이기 때문에 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의롭게 되는 즉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그러한 차원에서 아브라함은 나의 믿음의 시조가 되며, 조상이 되는 것이고 나는 그와 같은 믿음을 따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의롭게 되며, 그와 같은 방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아브라함이 모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할 때에 그럼 아브라함 이전의 사람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벨과 에녹 노아와 같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는 방법을 뚜렷하고 노골적으로 증명하시고 보이시는 최초의 경우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였다는 것을 말하는 고자 함입니다.

우리의 경우 이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의 믿음의 조상도 그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혈통으로 자신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그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방식으로 죄인들이 구원을 얻는 길을 이미 앞서 보이셨고 또한 우리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삼아 주셔서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그 뿐만이 아니라 12절을 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은 다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는 무엇이며,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성경이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고 믿음의 시조이며, 시작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최고의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은 처음부터 그가 믿음의 조상다움이 있었거나 혹은 믿음이 처음부터 남달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절을 종종 오해하게 되는데 히브리서 118절을 보면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믿음으로 라는 말이 처음에 들어오고 그리고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라고 할 때에 이 믿음은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는 믿음이며, 장래에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즉 정확히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며 어디에 정착할지도 알지 못한 채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우리와 다른 차원의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장래에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갈 때에 어디로 갈는지 알지 못하고 갈 수 있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믿음은 처음부터 이러한 정도와 형태의 믿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현재의 믿음을 비교하면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가 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첫째로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설명할 때에 그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았고, 그분을 믿었으며, 그분을 붙들고 살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즉 믿음의 정도나 깊이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그분을 의지하였으며 신뢰하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기 때문에 여기서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의 믿음의 정도와 깊이 보다는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함입니다.

둘째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이 사람들에 대한 기술은 그들의 삶 전부가 아닌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전체적인 기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믿음은 처음부터 완전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자라는 것이며, 성장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빼먹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베드로전서 22절을 보면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신앙이 자라감도 포함이 되고 믿음이 자라남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242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글 성경에서는 데라만 다른 신들을 섬긴 것으로 번역이 되지만 원문의 의미는 조상들이 다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길 때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72-3절을 보면 스데반의 말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보다미아 즉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으며 그때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였는데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이 말씀이 하셨는가 하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순종하여 앞장서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1131절을 보면 이 말씀에서 이 모든 일을 앞에서 이끄는 자가 누구입니까? 데라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 손자 롯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입니다. 그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영광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는데 이 모든 것을 누가 하는가 하면 데라가 결정하고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때에 가고자 하였는데 못 가고 하란에 살게 된 것입니다.

언제까지 살게 되는가 하면 데라가 죽을 때까지 입니다. 창세기 1132절을 보면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절인 창세기 1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언제 주신 것입니까? 갈대아 우르에서 다른 신들을 섬길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이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아예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믿음은 나약하며, 확신이 없는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못하고 오히려 아버지 데라에 이끌리는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죽자 이제야 그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의 믿음은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그가 의지하던 아버지 데라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창세기 125절을 보면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 사는 동안 소유를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되며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기가 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때에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옳다는 것 즉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생기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자신을 계시 하시는 방식을 통하여 즉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며, 그분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생기게 하십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는 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부처님도 믿고 알라도 믿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계시는 구나 그분이 나의 인생을 주관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에 바로 믿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믿음은 대부분 극적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바울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조금씩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기 시작하며,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이 점점 확신으로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분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상태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자라게 하시며, 성장하게 하셔서 결국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그의 영혼이 구원을 얻게 되는데 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하시며,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 예수를 닮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까지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였고 우리 또한 같은 방식으로 그와 같은 믿음에까지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표상이며, 예표이며,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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