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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2.10.10 11:31

마침내 창 12장 5절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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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2EMxpL26RTo


창세기 12 5절을 보면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자세히 살펴볼 단어가 마침내라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 단어가 하나님이 지시하셨던 그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셨던 그곳에 오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마침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이곳에 오기가 쉽지 않았고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기어이 결국에는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마침내 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기까지 오는 것이 결코 아브라함의 의지이거나 그의 결단으로 온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에 의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브라함 이나 우리나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자발적 순종이나 전적인 신뢰를 가지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선한 마음이 저절로 생기고 매일 착한 일 바른 일만 생각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심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불순종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고집스런 불순종과 불복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거나 내버려 두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세우실 약속의 자리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며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풍성한 자비이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합니다. 로마서 1129절을 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이라고 할 때에 이 둘을 따로 해석하기 보다는 부르심의 은혜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부르실 때에 즉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에 후회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후회하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요한복음 6장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자를 하나도 잃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 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 있을 수 있고, 믿음이 약하여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세상을 의지하려고 하며, 여전히 세상과 세상의 일들을 좋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하여 바꾸어야 하며,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통하는 내면의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신자는 세상 근심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위한 세상을 향한 근심은 사망을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주시는데 왜냐하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기 위하여 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표로 작용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놓지 않으시고 붙잡고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왜 감격스런 것인 줄 아십니까? 영원한 심판의 불 가운데서 구원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구원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광스런 자리에 세우기까지 우리를 결코 그의 손에서 놓으시거나 버려두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고집스런 결단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13:5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향하여 여전히 기다리고 계시며 바른 신앙 생활 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지만 교회만 다니는 신앙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자들을 향하여서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자리 신뢰의 자리에 나오라고 초대하며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을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에 자리만 채우는 자가 아니라 바른 신앙과 믿음의 자리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두번째로 마침내라는 단어는 아브라함이 신뢰하던 것을 놓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 신뢰하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여전히 하나님 보다 더 의지 하였던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그의 아버지 입니다. 행전 7 4절을 보면 그의 아비가 죽으매 라는 말씀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것은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입니다. 죽으매 라는 말씀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 땅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이 문맥의 의미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지만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의 아버지를 더욱 믿고 따랐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주도가 되어 이동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으로 가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란에 머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의미는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보다 그의 아비 데라를 신뢰하며 의지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즉 아버지가 죽기 전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1 31절과 창세기 12 5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두 구절을 히브리어로 비교해 보면 단어의 배열이나 구조가 비슷합니다. 31절은 데라가 주권자로 서있고 5절 말씀은 아브라함이 주권자로 서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브라함이 의지하거나 신뢰할 존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야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만이 우리의 신뢰자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하나님 이외에 신뢰하는 대상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이 여전히 초보라고 생각되신다면 가만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이외에 신뢰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나는 정말 하나님만 신뢰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경제적인 여건을 의지하면서 신앙이 좋아지리라 믿음의 성장하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 생활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의 나의 도움 이시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며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확신만 하고 말로만 고백하고 삶은 다르게 사는 것은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입만 크리스챤인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말은 고상하게 신앙적으로 하지만 정작 삶은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중적 신앙을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믿은 바가 삶으로 나타나야 그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너는 나를 포기하고 나를 믿는다 하면서 아무렇게 나 살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절대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너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제 하나님이 외에 신뢰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바라 보라고 요구하십니다. 이제 떠나야 할 것 버려야 할 것들과 절교를 선언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외에 이 땅에 다른 신은 없으며 모든 것은 헛된 것인 줄 믿으시고 오직 그분만 신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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