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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2.11.01 09:26

믿음에 따르는 고난 창세기 12장 10절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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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1CirVr7_W6Y


성경은 하나님은 복되신 분이시라고 합니다. 복되신 이라는 의미는 복으로 충만하시며, 복의 근원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복을 누리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복은 그 자신으로부터 흘러 넘쳐 그를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부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모든 사람들은 복 즉 행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며, 행복이 아닌 불행한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팔이 짧아 돕지 못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왜 하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모든 불행에서 건져 내지 않으시고 그냥 두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과 그 목적에 대하여 예표로서 보여주고 있는데 창세기 131절을 보면 아브람이 애굽으로부터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 갔다는 것입니다. 그가 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머물지 않고 애굽 땅에 내려갔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창세기 1210절을 보면 아브람이 애굽에 들어가게 된 것은 가나안 땅이 극심한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심하였다는 것은 그곳에서 견디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떠납니다. 이 부분에서 신자가 겪게 되는 삶의 문제들은 불신자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브람은 지금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나 먼 이곳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이곳이 어떤 땅입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이 땅에서 살지 못하고 애굽까지 내려가야 하는 극심한 기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아브람의 이야기여서 생각 없이 읽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 찾아 온다면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고 있고 믿고 있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고 말씀대로 살고 있는데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를 짓고 불순종함으로 해서 당하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따라 갔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불구하고 찾아 오는 고난에 때론 우리의 마음이 의기소침하게 되고 약해지고 고민하게 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왔으면 그 약속이 바로 실행되던지 뭔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옵니다. 믿음으로 사는데도 재정적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고 건강은 더욱 악화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실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문제는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가,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며, 무엇을 약속하시며, 보장하시는가 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 믿어도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거나 오히려 불행해 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는 자 또한 신자가 누구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에게 주어진 구원과 그 약속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겪게 되는 혼란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영혼의 구원 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고통과 질병으로 부터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난에서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분명히 도와 주실 거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사업이 잘되어야 하고 우리의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되고 우리가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 질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신자라고 해서 믿지 않는 자들이 경험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자도 암에 걸려 죽습니다. 신자도 파산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그 신앙으로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 받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구원을 잘 못 이해하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불신자에게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성령이 내주 하시지만 여전히 우리의 육체는 이 땅에 속하여 있고 죄로 인한 오염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들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신자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차원 즉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부자가 되는 것이나, 남들 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져 뛰어난 의사나, 변호사나, 학자가 되는 것이나, 평생 한번도 병원에 가지 않는 강철 같은 건강을 같거나 하는 차원에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자리는 모든 것이 불신자 보다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고 탁월해서 예수 안 믿으면 그렇게 뒤쳐진다라는 구별된 잘남의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자리는 세상의 것을 위하여, 세상에서의 삶을 위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524절을 보면 주님이 이 말씀을 통하여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세상에서 세상으로부터 세상에 대하여 우리를 건져 내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구원이 세 개의 시제로 증명되고 있는데 우리가 만일 주님의 말을 듣고 믿으며,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믿으면 그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라는 것입니다. 여겨서 영생을 얻은 것은 현재의 상태이며, 심판에 이르지 않을 것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살지 못하는 존재이며,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으며, 믿지 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참된 생명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나의 죄로 인한 죽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7절을 보면 본문은 보배와 질그릇이 등장합니다. 무엇이 보배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질그릇에 가졌다고 합니다. 질그릇은 신자입니다. 왜 보배와 질그릇이란 극과 극의 가치 차이를 비교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잘 드러내지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질그릇이 그냥 질그릇이 이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고 가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배를 담고 있으면 그 질그릇은 쓸모 없는 하찮은 질그릇이 아닙니다. 그것이 담고 있는 보배 만큼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 됩니다. 이 말은 질그릇인 우리가 잘남을 들어내지 않고 오히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더욱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보이고 싶어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보석 그릇이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린 여전히 질그릇이지만 우린 다른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귀중하고 가치 있는 질그릇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는가 하면 그 다음절에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48-9절을 보면 우리는 질그릇이라 우겨쌈을 당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핍박을 받습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싸이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버린바 되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삶에 경험하는 어려움들을 겪을 때 이것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시게 하려는 것이 구나 하는 차원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화) 아이 셋을 가진 가정 예수 믿고 하나마저 죽음 다른 사람들 위로를 못함. 그때 아버지가 말함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께 갔다고 오히려 위로 받음. .

하나님이 신자를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화려하고 휼륭하고 잘남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으로 어려움으로 환난으로 핍박으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세상 사람은 없는 무엇인가가 신자가운데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내를 빼앗기고 맙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내를 빼앗긴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내를 빼앗긴 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위험에 처했다는 의미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멀고 먼 가나안 땅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씨앗을 낳아줄 아내를 빼앗겨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무효가 되며 중단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자가 고난을 당할 때 가지게 되는 생각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흔들림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찌 해볼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줄 수 없으며 하나님 조차 이 상황을 어쪄지 못하실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아브람이 잠 못이루며 고민과 절망과 낙담과 원망의 밤을 보낼 그때에 하나님은 바로와 그의 집에 재앙을 내려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재앙을 내렸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가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이 재앙의 근원이 자신이 아브람의 아내를 취하려 했던 결과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을 불러 아내를 데리고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무의미한 고난이나 고통이나 아픔이나 괴로움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5-8절을 보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는 징계 즉 훈련을 받는 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모든 신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훈련이 없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닐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훈련의 목적은 히브리서 1210-13절을 보면 거룩함에 참여하기 위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며 훈련을 통하여 의의 평강한 열매가 맺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올 때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불신앙으로 살지 말아야 하며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성경은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길을 곧게 만들라고 합니다. 이유는 불편한 다리로 제대로 걷기 위해서 입니다. 신자의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약속을 따라 사는데도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그러면 그럴 수록 더욱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버림 받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훈련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여러분을 훈련하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거룩해지는 유익함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고난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과 신뢰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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