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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zXLhE10QHFQ


성경에서 추수에 대하여 구약에서는 절기로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추수와 관련하여 많은 비유를 우리에게 하고 계신 것을 볼 때에 추수라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며 알고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먼저 구약의 경우 모든 곡식을 창고에 거두어 들인 후에 이스라엘이 지키는 절기가 있는데 초막절이라고도 하고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초막절이라는 함은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초막을 만들고 그 곳에서 칠일 동안 초막에 거주하는데 신명기 1613절을 보면 곡식을 거두어 들인 후에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합니다. 이유는 레위기 234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하 줄을 이스라엘 백성들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하신 일들이 무엇인가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초막절은 다른 의미에서 같은 절기 이지만 수장절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출애굽기 2316절을 보면 맥추절은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둘 때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수장절은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한 후에 지키는 절기로 추수 감사절기 입니다. 이러한 거둠에 대한 기억과 지킴은 단순히 자연 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러한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훈하시며, 우리의 인생이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신 그분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에서 주님께서는 추수에 대한 비유를 통하여 밭의 곡식들이 추수 때에 거두어 들여 창고에 모아 들이듯이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이 세상은 현재의 상태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추수 때와 같이 모든 것들이 거두어지고 쓸모 없는 것들은 버려 질 것임에 대한 의미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3장의 경우 예수님께서 여러 개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중에 가라지의 비유를 보면 특히 추수의 의미가 우리에게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3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자신의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그 밭에 주인이 뿌리지 않은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그때 주인의 종들이 밭에 곡식과 함께 자라고 있는 가라지를 뽑아 버리기를 원하는지 주인께 묻습니다. 이에 주인은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합니다. 문제는 가라지도 좋은 씨앗도 함께 자라지만 그 둘의 결말이 갈라지는 것이 바로 추수 때인데 추수 때에 주인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리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으라고 합니다. 가라지는 결코 주인의 곳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곡식만 모아져서 주인의 곳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가라지는 불살라지는 것입니다. 불 사르다는 것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 가운데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곳간으로 비유된 곳은 주님이 계신 천국입니다.

        언제 이러한 이들이 일어나게 되는가에 대하여 마태복음 1339절을 보면 추수 때는 세상 끝이라고 합니다. 즉 세상 끝날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추수에 대한 절기가 비록 자연 법칙으로 인하여 계절의 변화와 주기에 따른 결과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계절의 변화와 그 계절을 통하여 생겨나게 되는 일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밭의 곡식이 마냥 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두어 들임이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 또한 세상에 끝을 정하셨으며, 추수 때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추수하는 것처럼 자신의 창고에 모아 들이는 날이 있음을 것임을 교훈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예표들이 보일 때에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마태복음 2433절을 보면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올수록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 마지막에 있을 것이라 말씀하신 것들은 점점 이루어져 가고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볼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면 주님께서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문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때를 말하며,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문 앞에 서 계시며, 곧 종말의 문을 여시며,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여시기 위하여 서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문에 대한 또 다른 내용들이 있는데 계시록 320절에서 주님께서 문 밖에 서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계시록 320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법적으로 주님은 이미 서 계시며 지금도 서 계시고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다음 내용은 주님께서 문 밖에 서 계시는데 문을 두드리며 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드리는 행위는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문 밖에 또 다른 의미에서 문 앞에 서 계신 것은 앞서 마태복음 24장에서의 종말의 문,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으로서의 문과는 다릅니다. 이 문은 교제의 문이며, 주님과의 연합의 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은 주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열려져야 할 문인 것입니다.

        이 문에 대한 또한 중요한 것은 이 문은 불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불신자에게 주님께서 그들과 교제를 하시고 연합하시기 위하여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소원하며, 그 관계가 흔들리며, 주님과 교제가 시들고, 신앙과 믿음이 연약해지며, 세상으로 향하고 있는 신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다시 그들의 신앙과 믿음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하여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신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계시록 315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행위를 아신다고 합니다. 그들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의 신앙 생활로 주님께서 토하여 내실 정도의 신앙과 믿음이 변질되어 가고 있던 교회입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과 열의와 충성이 식어지고 상실되어 가며, 매일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버려가고 있던 교회 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문 밖에서 이미 서 계시며, 계속해서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다시 주님과 연합하여 함께 주님의 상에서 주님과 영적인 교제와 나눔을 가지시기를 그렇게 함으로 다시 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에 대하여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10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합니다. 이 양의 문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하여 요한복음 109절을 보면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은 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얻는데 바로 주님께로 나오며 그분에게로 들어감 즉 그분을 믿으며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주어지는 은혜로 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새 문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종말의 문 앞에 주님은 서 계십니다. 그러나 이 문이 나에게 복된 문이 되고 나에게 영생을 얻는 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양의 문이신 그리스도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분에게로 들어가며, 그분을 믿고 신뢰하며, 그분과 영적인 연합을 얻기 위해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그분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는 닫혀진 문은 열려야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와 관계가 소원해진 자들은 그래서 신앙 생활이 미지근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들은 회개하며, 돌이켜 다시 주님과 깊은 연합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토하여 내심으로 그는 종말의 문에 서 계신 주님께서 문을 여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그 나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때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문들이 우리 앞에 있음을 기억하며, 깨어 종말의 문 앞에 서 계신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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