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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ePkHDGAKY5I


여러분들은 성경 말씀과 자신의 삶이 괴리감을 느낄 때에 어떻게 하십니까? 괴리감이란 이질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여겨지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다른 말로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성경 말씀에 대하여 내가 순종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이질감이나 거리감을 말씀 드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 대로 내가 순종하지 않고자 하는 것은 불순종의 문제요 내 신앙 자체의 문제이며 믿음이 없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믿음 대로 살고자 하며, 말씀에 약속하신 것이 내 안에 성취되고자 함에 있어서 가지는 괴리감에 대하여 입니다. 즉 내가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되고 싶고, 그 약속이 내게 실현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에도 내가 말씀이 말하고 있는 그 자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가지는 말씀과 나 자신과의 거리감과 이질감입니다.

        특히 로마서 8 35절부터 37절의 내용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로마서 8 35-36절을 보면 이 구절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자가 세상 속에서 받는 고통과 고난에 대한 설명입니다. 당시에 로마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이유 만으로 재산을 빼앗기기도 하고 생계 수단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옥에 갇히거나 쫓겨나기까지 하였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등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이들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음을 당하고 있으며 도살 당한 양같이 여김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의 이유는 주를 위하여 라는 말이 대변해 줍니다. 이들은 주를 위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37절을 보면 종일 도살할 양처럼 여김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합니다. 넉넉히 라는 말은 이기긴 하는데 간신히 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이긴다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인 예수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문제는 전혀 우리의 현실 특히 나의 현실을 볼 때 전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단어는 더욱이 현재 현으로 지속적으로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에 괴리감이 생기고 이질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이 약속과 소망이 전혀 확신되지 않아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반드시 성경과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에 괴리감을 느껴야 하며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가 문제이지 라는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반드시 이러한 고민을 하고 성경과 자신의 삶 사이에 있는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참이며 그 말씀 자신의 삶에 이루어지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자란 하나님의 뜻이 자신 안에 이루어지며 성취되는 것을 보고 싶은 간절함이 그들 안에 가득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성경의 약속과 우리의 삶 사이에는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한 답변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하여 확인하려고 합니다. 스가랴서 12 10절을 보면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이십니다. 그 약속 가운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라 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다고 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대상이 누구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대상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이 부어주심은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가랴서는 구약의 마지막 시기로 당시에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 가운데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하나님의 부어주심이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통하여 이 말씀의 성취가 신약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어 주실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신다고 하는데 심령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의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성령으로 번역됨이 마땅합니다. 이 단어는 사람의 영을 지칭하기도 하고 성령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문맥에 따라 정해지는데 본문에서는 성령으로 번역됨이 마땅합니다. 이유는 부어진다는 표현이 요엘서 2 28절을 보면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부어 준다는 단어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 이 약속을 성취하셔서 오순절 날에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보게 되는데 사도행전 2 23절에서 베드로는 요엘서를 언급하며 자신들이 받은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받아 부어 주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은 약속하신 것으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말씀하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가랴서 12 10절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란 하나님께서 주실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부어 주신다는 뜻은 행위적으로는 쏟는 행위를 표현하고 있지만 부어 주신다는 단어 속에는 흘러 넘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솟아나다, 쏟아 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쏟아 부어주셔서 찰 뿐만 아니라 넘치며 흘러 나오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셋째로 하나님의 약속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쏟아 부어져서 흘러 넘치는 것이 왜 다른 무엇들보다 앞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는 것입니까? 성경의 전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심과 동시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것을 아끼거나 주시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11절을 보면 악한 자도 자신의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줄 압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주실 것이며,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병행 본문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 1113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두 본문을 연결해 보면 좋은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를 죽기까지 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한 구원과 거룩한 성화를 위하여 반드시 가장 좋고 가장 필요한 것을 허락하셨음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왜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과 동시에 가장 필요한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는 스가랴 12 10절을 보면 성령은 은총의 성령이라고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은총이라는 단어는 은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총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주어지는 상태적 표현이고 은혜는 은총을 받는 자의 입자에서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흘러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성령을 충만이 흘러 넘치도록 부어주신다고 하신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은혜로 번역된 단어는 자비를 베풀며, 동정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동정심을 가지고 측은히 여겨서 그에게 선을 베푸시며 자비를 베푸신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은혜의 성령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안에 전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디도서 3 6-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도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셨다고 합니다.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에서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려고 하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게 된 것은 우리 힘이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의롭다 하심을 얻어 라는 표현이 수동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게 하셨으며 누가 그 은혜가 우리 자신의 것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까? 바로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은혜의 성령께서 값없이 주시는 주의 은혜를 우리에게 적용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이 아니고는 참으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마음에 진실함으로 예수님이 나의 전부이며, 내 주인이십니다. 나는 몸은 주의 것이고 나의 영혼 또한 주인이십니다. 라는 고백은 오직 은혜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입니다.

        둘째로는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신 은혜의 성령은 영생의 소망을 따르게 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자들이 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생의 소망이 헛되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소망이 끝내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 상속자가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 왜 우리는 넉넉히 이기지 못하며 왜 영생의 소망을 가진 상속자의 모습이 우리 안에 없는가에 대한 처절한 고민의 답은 바로 은혜의 성령이 우리 안에 없기 때문이며 그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이 부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왜 성령을 주셨으며 왜 부어 주십니까? 왜 다른 것이 아닌 성령을 흘러 넘치게 부어주셔야만 합니까?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 행하여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성령이 그들 안에 계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라고 불리는 자가 만약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의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 하며 기뻐하고 있다면 그에게는 성령이 소멸된 것입니다. 신자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기도에 힘쓰지 않고 있다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도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지 않음도, 그의 영혼이 깨어 있지 않음도 다 성령이 그들 안에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신자됨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신자의 능력과 힘은 오직 성령을 통하여서 입니다. 성령을 충만이 받지 않는 자는 삶의 문제를 이겨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인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으며 주님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찾으며 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성령의 충만이며 성령이 자신 안에 부어지기를 위하여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자신 안에 부어지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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