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FxedN_luQrI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신자의 삶에 대하여 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5장 15절을 보면 우리가 이 구절에서 먼저
보게 되는 단어는 그런즉 이라는 단어로 앞선 내용에 대한 결론을 말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런즉이라는
단어는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니까 결론은 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 앞에
말하던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에베소서 5장 8-9절을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합니다. 어둠이라는 것을 볼 수 없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의 상황과 환경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볼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으나 이제 주 안에서 빛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합니다. 여기에 빛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들이 나오는데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합니다. 모든 착함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행위입니다. 또한 의로움은 하나님에 의해서 의롭게 됨으로 받아 들이는 삶이며, 진실함은
진리라는 말로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을 따라는 사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며 더욱 중요한 삶의 방식이자 목표는 다음절인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험한다는 말은 분별하라는 의미로 빛의 자녀들은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가 또한 그렇지 않은
자의 삶 즉 빛의 자녀들이 아닌자의 삶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11-13절을 보면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게 되며, 빛의 자녀들이 아닌 자들 즉 어둠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은 다른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절이 14절은 어떻게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 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데 14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잠자는
자여 깨어라 라는 말씀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라는 명령을 듣게 됩니다. 이러한 표현은 육체적인
잠과 육체적인 죽음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으며 죽어 있어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이들이 깨어나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그분의
빛을 비추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빛은 깨우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살리는 능력 또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빛이 비추었기 때문에 깨고 일어나라 라는 명령이 시행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14절은 무엇인가
깨어나고 죽음에서 일어나게 하는 그리스도의 빛이 사람들에게 비추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 15절을 보면 그런즉이라는 말은 그러한 깨움과 죽음에서 일어나게 한 능력이 너희에게 있었기 때문에 라는 말로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중심 주제는 깨어나고 살아난 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심 주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니다. 이
구절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단어는 주의하다 라는 것입니다. 주의 하다 라는 말은 온전하게 정신을 집중시켜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바울은 온 마음과 생각을 모아 집중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이 대충으로, 건성으로, 성의 없이 하는 흉내만 내면 안 되는 중요한 일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하며, 집중해야 하며, 마음을 모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해야 합니까? 행할지라는 단어를 통하여 이것이 행함이라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사용된 행함이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한다 라는 의미보다는 규정한다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규정하다 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피고 조사해서 밝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무엇을 규정하는가 하면 삶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네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네 삶을 보내야 하는지를 주의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는 개인적인 사사로운 품행이나 행실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 등이 포함됩니다. 신자의 삶은 한 가지의 삶의 모습으로 규정되었고 규명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행하여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행할지 라고 표현할 때에 네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며
규명해야 하는지 집중하라는 것이며 주의 하며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빛을 비추시어
너의 영혼을 깨우고 너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너는 네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규명해야 하는지 주의하라 네 삶을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에 그분을 닮으며 그분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모습과 방법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이며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내용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지혜에 대하여 성경은 행동을
하게 하는 기능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잠언 12장 18절을
보면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다고 합니다. 지혜는 혀를 제한 하며, 언어로 남을 해하는 말을 삼가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혜는 삶의 행동에 변화를 주며, 악을
억제하며, 불의를 막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편 1-2절을 보면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하나님이 없다고 선언하는 이유는 그들은 부패하였고 그 행실이 가증하며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 때문입니다. 2절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무엇이 결핍되어있고 무엇이 부족한 가를 말해주는데
하나님께서 인생을 굽어 살피실 대 지각이 있는 자가 있다 보려고 하셨지만 3절에서 다 치우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각이 있다라는 단어는 1절의 어리석은 자와 대조가 되는
것으로 지각이 있는 자는 하나님을 찾는데 그들은 어리석어서 지각이 없고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각이라는 단어는 지적 능력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지혜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모든 상황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내용을 심사 숙고하여 얻어낸 결과로 현명하게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이러한 지각 즉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단어 속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가지는 제일 되는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모든 일을 종합하여 생각하며
정리하며 결론을 내릴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의 결여는 어쩔 수없이 삶의 전체를 감정의
지배아래 둘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정이 지배한다는 것은 그의 삶의 모든 판단과 평가와 선택이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성은 배제가 된 상태이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인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감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사람이 감정이 없다면 얼마나 세상이 삭막하고 어둡겠습니까?
이런 말이 있는데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정이 없는 답답한
사람과는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인간의 타락 이후에 인간 안에 있는
감정은 즉흥과 충동적이며 감각적이라는 것입니다. 감정은 항상 지성과 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감정이 지성과 이성을 지배하게 되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며 파악하는 능력의 결여로 욕망의
지배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욕망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갖겠다는 의지로 그것을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힘입니다. 또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옳다 하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욕망에 눈 멀게 되면 이치적으로 따지거나 곰곰이 생각해 보거나 하지 않습니다.
즉 어리석은 자의 삶의 태도와 자세는 감정과 욕망에 따른 삶으로 충동과 본능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지혜는 절대로 충동적이거나 본능적인 삶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삶의 전 부분을 고찰하고 생각하고 분석하며 살펴서 얻어낸 결론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과
살아야 하는 삶을 규정하며 규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것들을 응용하는 능력
또는 힘이며, 지혜는 지식을 응용하고 재능을 개발하고 능력을 활용하는 힘이자 능력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재 조명할 뿐만 아니라 삶을 점검하며, 판단하며
분석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것인가를 주의 깊게 생각하며 실행합니다. 자신의 삶을 분별하며 매일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이며 지혜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그렇게 살아갑니다. 지혜는 이러한 삶을 방식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부정합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지혜자의 삶의 규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자는 자신의 삶의 전체를 조망하며 먼 미래에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낼 지를 생각하고 분석하여 살아가는 자입니다. 신자는 사는 대로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생각한 대로 사는 자입니다. 지혜자는 오늘 내가 한 일이 먼 후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며 이루어 낼까를
생각하며 사는 자이며 지혜란 바로 이러한 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 지금 이 순간의 말과 행위가 먼 미래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까?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의 하여 살피고 주목하지 않아서 삶의 어리석음으로 규명되고 규정되면 망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삶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모든 이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모두다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것을 사용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지혜를 삶에 적용하여 사는 자가 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며 규명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달아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며,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광야 사십년 동안을
보내게 하신 이유는 너를 낮추시며 시험하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 지를 알려 하심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살피시며,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지를
시험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름 앞에 부합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우리의 삶을 보시며, 내 인생의 모든 일들을 통하여 어떠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는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내는지
살펴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둘째로 그 모든 것을 심사 숙고하여 분별하고 판단하여 얻고 그 결과를 통하여 현명하게 살아가는 하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삶을 예전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을 보면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더 이상 신자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신중하게 받아들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심사 숙고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현명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을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인생으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끝으로 이러한 사실을 확신하는 자는 어떻게 살게 되는가에 대하여 요한
일서 3장 2-3절을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매일의 삶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우리로 이렇게 살아가도록 이끌며 매 순간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디 이 소망을 가지고 지혜 없는 자처럼 살지 마시고 지혜 있는 자처럼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