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왜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는가 마태복음 26장 2절

by YC posted Mar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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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x4E6YKToYM0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셨는가? 당시에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이것 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죽으시면 안됩니다. 돌에 맞아 죽으시거나 창이나 칼에 의해 죽음을 당하시면 안됩니다. 꼭 십자가와 같은 미련하고 바보스럽고 어리석어 보이는 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와 관련된 다른 성경을 찾아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전서 224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그분 스스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그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 그 결과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친히 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친히 라는 말은 스스로 라는 말로 자기 자신이 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 자신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였습니다. 라는 자기 스스로 라는 말이 그 자신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의미로서 주님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라는 표현이 되지만 이 문장에서 또 다른 의미는 그분이 친히 나무에 달리는 죽으심을 선택했다 라는 것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내려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두번째로 주님께서는 죽음의 방식도 친히 결정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말입니다. 마태복음 262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유월절 이틀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유월절에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을 예언하십니다.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이를 위하여 자신이 오셨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방식 또한 택하셨으며, 그렇게 하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 다른 곳을 찾아 봅시다. 다른 곳에서 다시 십자가를 나무라고 표현한 곳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을 보면 바울은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 저주는 어디서 오는가 하면 율법을 통하여 옵니다. 즉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모든 자는 율법의 저주 즉 심판 아래에 있게 되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율법의 저주를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로 인하여 속량 즉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이 이렇게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까?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여기서 나무는 십자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것이 그냥 달리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저주 받은 자가 달리는 나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성경 구절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신명기 2122-23절을 보면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야만 하는가 하는 이유를 잘 말해 주는 유일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였으므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나무에 매답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밤새도록 나무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꼭 당일에 장사를 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왜 더러워지는가 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이 갈라디아서 3:13절에서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바로 이 신명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무에 달리신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성경의 해석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신데 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가 됩니까?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사실 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왜 우리가 저주를 받은 것입니까? 율법을 어긴 자마다 율법으로부터 정죄를 받아 사형에 해당하는 벌을 받습니다. 즉 율법을 어긴 모든 이들은 바로 율법이 정한 정죄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 나무 즉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어야 할 자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모두 나무에 달려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다른 죽음이 아니라 친히 그분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저주를 거두시고 그 저주를 그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는 장식용이 아니며 십자가는 폼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 저주를 예수님이 담당하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는 여전히 미련한 것이며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입니다. 죄인이 죽은 그 형벌의 장소가 어떻게 거룩한 것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보는 그 십자가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왔습니다. 똑똑하다 자부하는 사람은 이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22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며 요구합니다. 표적을 주시면 내가 믿겠다고 합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요구합니다. 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고상한 지혜로운 방법을 주시면 믿겠다고 합니다. 모두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원합니다. 이렇게 해주면 이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주시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이해로는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오해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이해는 내 방법 내 방식으로 이해 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이 감히 견줄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23절에 오히려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었고 걸리는 것이 되었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거리끼는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인데 어떻게 예수를 믿겠는가 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이론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서 복음을 이해하려 합니다. 자신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법이 아닌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이것은 참으로 미련한 것입니다. 죄인을 그것도 극악 무도한 죄인으로 치부되어 십자가에 죽은 자를 하나님으로 섬기다니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있어라는 자신의 생각 판단 평가가 결국 복음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신이 관점이 생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자들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자신의 생각에 매여 있고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이해에 근거한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에게 이 십자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고 방식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에게 십자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궁휼이요 자비이며 사랑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4절을 보면 원문에는 그러나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는 십자가가 거리끼는 것이며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러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즉 하나님에 의해서 믿음이 주입됨으로 믿어지는 자들 이것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별 없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과 지혜가 되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사하는 능력이 되며, 또한 우리로 그것이 믿어지게 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며, 이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지혜 있는 방식으로 되어졌음으로 하나님의 지혜임을 또한 하나님의 지혜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왜 십자가입니까? 우리의 죄로 인한 율법의 저주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중하신 저주 때문에 십자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의 달리심이 여러분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장소가 저와 여러분이 달려야 마땅한 장소임을 잊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목이 매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의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