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참되고 유일한 복음 골로새서 1장 3절부터 7절까지

by YC posted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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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j64OIsF9Zq8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골로새서는 바울이 골로새라는 도시에 살면서 그곳에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신자들을 향하여 쓴 편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골로새 교회라는 집단이 세워지게 하였으며, 골로새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5-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서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란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이들이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렀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고 모여 함께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어떻게 이들에게 전해진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7절을 보면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다고 합니다. 즉 에바브로에 의해서 골로새 교인들은 복음을 듣게 되었고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하면 기독교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하는 것에 중요한 방식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며 이제 우리의 관심은 에바브라가 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골로새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변함 없는 삶에서 변화를 일으켜 자신이 인생 전체를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복종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시키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이들에게 전해진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것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실제하는 것이며, 경험과 체험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복음은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직접 보고 들은 자들로 증명이 된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6절을 보면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 즉 한 마디로 이것들은 복음 안에 담겨진 내용들로 이것들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은, 즉 전한 것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럼 어디에서 이러한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으며,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직접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이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음이 사실임을 본 자이며, 그가 다시 살아 나셨음을 친히 보고 경험한 자이며,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역사적 사실성에 가지게 되며, 거짓이 없는 진실한 소식이며, 믿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절을 보면 베드로후서 117-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이 복음은 베드로 혼자 만이 역사적 사실이며, 참된 것이라고 증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그와 즉 주님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무엇을 들었는가 하면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라는 점입니다.

        고린도전서 154-6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게바 즉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이것이 사실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은 사람이 교묘하게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의 지혜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실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에바브라가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되어 회심하게 되고 그리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가르쳤는지는 모르지만 그 또한 실제적이며 경험적으로 주님을 만났으며, 그러한 사실을 확신하고 믿었기에 복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복음을 들음으로 그것을 믿게 됨으로 개인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 또는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골로새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좋은 소식을 듣고 그것을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난 것은 그들은 복음 즉 자신에게 가장 좋은 소식을 들었고 그것이 복된 소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들이며 그것을 받아 들인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복된 소식이 전해 질 때에 그것이 공중 앞에 선포될 때에 그 선포되는 복된 소식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듣지만 모두다 그 복음이 자신에게 복된 소식이 되거나 가장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이 자신에게 복된 소식으로 기쁨의 소식으로 들려지게 되고 그것을 받아 들이며, 믿게 되는 자들에게만 복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단어적 의미는 복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복된 소식인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하여 살펴보기 전에 복음에 대한 부족한 이해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복음 즉 복된 소식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 복음이 복된 소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도 죄를 사함을 받는 방식이 존재하였으며,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복된 소식인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신비한 일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며, 이전에 있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방식과 일들과 결과들이 주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복음의 신비와 능력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며,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들어도 시큰둥하며, 큰 기쁨이나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흔하게 이해되는 복음이라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이나, 윤리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람들을 착한 사람 만드는 곳으로 변질되게 되게 된 것입니다. 이것 또한 복음이 말하는 복된 소식이 아닙니다. 이미 이러한 도덕과 윤리적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착하고 선하게 만들려는 시도와 가르침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새롭고 놀라운 복된 소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는 놀랍고 우리를 위하여 복된 일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12-4절을 보면 이 구절들은 모두다 하나의 내용들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이 복음은 이라고 시작을 합니다. 복음은 먼저 그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관한 무엇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하실 일들에 대하여는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은 이전에는 이러한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약속을 받았지만 이것이 그들 시대에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복음은 삼위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첫째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시작한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신 것도 성부 하나님이시고 그 선지자들에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미리 약속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이 복음은 성부 하나님 만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어떤 것이라는 점입니다. 복음은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다고 합니다. 복음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되셔서 이 땅에 오셨고, 약속에 따라 다윗의 혈통으로 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구절에서 바울은 복음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성결의 영으로 라는 표현이 그것인데 이 표현을 직역하자면 성령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성령께서 죽은 자를 살게 하시는 일이며,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관련이 되어 있으며, 삼위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복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아는 것과 복음은 삼위 하나님에 관한 것이며, 삼위 하나님 자신들과 그분들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에 대한 바르지 못한 이해가 도달하는 것은 잘못된 목적지가 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생각할 때에 성부 하나님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은 없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반면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무관심하며, 언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복음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성부 하나님뿐만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73절을 보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남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그가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 또한 아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오시며, 그가 왜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셨는지, 왜 십자가를 지셨으며, 십자가에서 그분이 성취하신 것이 무엇이며, 그가 왜 부활하셨는지가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에서 성령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또는 거론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보혜사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며, 구원을 보장하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깨닫게 하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며, 한 몸을 이루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지막 날에 우리의 몸을 살리시는 이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복음에는 삼위 하나님과 삼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 복음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복음이 단순히 죄를 용서 받는 다는 내용만을 아는 이들에게 복음의 목적은 죄 용서뿐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삼위 하나님과 그분들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른 복음의 목적에 이르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단지 그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없애 심판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즉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복음은 용서가 목적이 아니라 왜 용서 하셨는가 하는 것으로 이끄는데 우리로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입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멸하시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죄는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소요리 문답에서 첫째로 가리키는 것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 우리는 죄를 짓지 않게 되며, 죄가 우리 안에 죽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이러한 것들이 담겨 있기에 참된 복음을 경험한 자들은 복음의 목적에 따라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죄 용서와 구원에만 매달려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자랑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이 참으로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은 참된 복음을 들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발견되는데 골로새서 16절을 보면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라고 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에게 열매가 맺히고 자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받으실 만한 순종의 열매를 맺고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입니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때부터 변화되기 시작하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우리는 들어야 하며, 이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새로운 피조물되게 하시며, 새 생명을 주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고 섬기며,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내가 그 은혜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부디 이러한 하나님의 복음을 통하여 그 은혜를 깨달아 열매를 맺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