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여자들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가 디모데전서 2장 15절

by YC posted May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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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sGQSsI5DXWc


디모데전서 215절을 보면 우선 이 말씀의 원어를 보면 첫 문장이 여자들은 그의 자녀를 출산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어진다 라는 문장입니다. 이 말씀이 오해가 되는 것은 여자들은 자녀를 출산함으로 구원을 얻는가 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 이러한 해석이 문제가 됩니까? 남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여자들은 출산함으로 구원을 얻는가 하는 구원의 문제가 서로 다른가 하는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옳지 않음은 첫째로 그럼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와 둘째로는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셋째로는 성경이 이러한 구원에 대하여 동의하며, 그러한 가르침을 다른 말씀에서도 발견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분명합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남자들의 구원 방식과 여자들의 구원 방식이 다르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 사람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또는 결혼한 여자이건 결혼하지 않은 여자이건 아이를 낳은 여자이건 그렇지 않은 여자이건 모두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방식은 이 말씀의 하반절에서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건으로서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 만일 정숙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단어적인 이해를 보면 원문의 의미는 그녀들이 믿음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그리고 거룩함 안에서 정숙함과 함께 거하면 이라는 뜻입니다. 즉 믿음 안에 있어야 하고 사랑 안에있어야 하고 거룩함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과 함께 거해야 하는가 하면 정숙함 입니다. 정숙함이란 절제 또는 사리를 분별하는 마음, 이성적으로 마음이란 뜻입니다. 즉 여자들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면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이성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것들과 함께 믿음 안에 있어야 하고 사랑 안에 있어야 하고 거룩함 안에 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거하면 이라는 단어는 그러한 체계 안에 살다 라는 뜻으로 삶의 방식이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이라는 체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숙이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이성적으로 사리를 분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분별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라고 해서 이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라고 해서 사리 분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여자 또한 사리를 분별하고 이성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고 요구되는 사항들입니다. 남자들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리를 분별하는 마음을 남자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들 또한 동일하게 이성적이고 사리 분별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이 삶의 체계가 되어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따로 요구되어지는 것은 여자들이 안고 살아가는 특수한 역할과 일들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왜 여자들이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말과 정숙함으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라 라는 말이 주어지게 된 배경이 무엇이고 이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215절 말씀은 단독으로 앞뒤의 문맥 없이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배경과 주어지게 된 목적은 11절부터 시작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11절을 보면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자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배경은 공중 예배 때를 가리키며 공적인 모임에서 여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여자들 또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즉 여자들에게 공적 모임이나 공적 예배에서 나서지 말며, 주장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음 절들을 보면 이해가 되는데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공적인 예배에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조용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왜냐하면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 질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타락할 때에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자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왜 사단이 아담이 아닌 하와를 먼저 유혹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자가 부족하게 창조되었거나, 여자가 남자 보다 못나게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본성은 남자 보다 유혹에 빠지기 쉬운 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자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37절 말씀을 보면 남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고 합니다. 지식을 따르다는 말은 이해 하다라는 뜻으로 아내에 대하여 더 많이 이해하라는 것인데 어떠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하면 아내는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며, 나보다 더 연약하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와 다릅니다. 육체적으로 다르고 정신적으로도 다릅니다. 여자는 남자들 보다 섬세하고 더 예민하며, 더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습니다. 이렇나 사실을 알고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을 옳지 않습니다. 아내는 나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가정이 되도록 동반자이자 동역자로 여기며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아내를 그렇게 알고 섬겨야 하지만 여자들의 경우 스스로를 높이며, 주장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먼저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 아니며, 또한 먼저 죄에 빠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말씀을 주신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죄에 빠져 타락한 후에 여자들은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죄된 욕망에 이끌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고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는 남편을 원한다는 것이 남편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어 한다는 말입니다. 즉 남편을 자신의 지배아래 두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리며 살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왜 바울이 여자들에게 조용하여 배우며, 잠잠하며,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 가 하면 여자들은 지배하고자 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어하는 욕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15절에서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말과 어떻게 연관이 있으며 무슨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11절부터 14절까지 바울은 여자들에게 순종하며, 심지어 너희는 남자들 뒤에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며 먼저 죄에 빠진 존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한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이 쓸모 없는 존재이거나 미움을 받은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들의 위축됨과 마음의 눌림에 대하여 바울은 염려하고 위로의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며, 여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15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디모데전서 215절을 보면 그러나 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라는 접속사는 앞의 말과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자녀를 낳음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비록 공적 예배나 모임에서 여자들이 조용하며 배우며, 가르치는 일이 허용되지 않으며, 먼저 죄에 빠진 연약한 존재이지만 여자들은 자녀를 낳고 자녀를 양육하며, 가정을 돌보는 이 모든 일, 매일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며, 집안 일을 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이러한 소명을 기쁘게 여기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며, 원하시는 자라는 것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남성 중심의 유리창을 깨고 회사의 사장이 되거나 세상에서 성공한 여성상을 부러움으로 그리고 본받을 모범으로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인정해 주며, 좋은 여자, 똑똑한 여자, 자신의 삶을 리드하는 여자로 보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여자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임과 책임이 맡겨주신 한 가정의 엄마로서 남편으로 매일 같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이것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임을 알고 묵묵히 수고하며 애를 쓰는 여인을 인정하시며,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여자들은 남자들과 같은 일을 행한 것에 대하여 판결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해산의 수고를 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남편과 가족을 위해 애쓴 모든 것들에 대하여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주신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과 매일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며, 온갖 수발을 다 들고 수고 하는 것을 헛된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여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며, 그들에게 주시는 소명인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 아닙니다. 내가 자녀 덕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뒷 바라지를 하는 것이 덕을 보고자 함도, 남편을 성공시키고자 함도, 내가 잘나 보이고자 함도 아니라 그것이 나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자들이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위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디 여자들이여 하나님의 소명을 귀함을 알고 그 소명을 위해 수고하는 일을 멈추지 말고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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