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Foi8nf2lXTs
오늘은 질문 한가지로 말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구원 받은
신자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않은 것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먼저 드리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될 하나님의 말씀과 앞의 질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는 로마서 8장 30절 말씀의 의미는 완전히 모른다고 해서 그리고 모르고 있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둘째로는 그럼 왜
이 구절을 아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꼭 알아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왜 이 말씀을 굳이 들어야 하며, 살펴보고 알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비록 이
말씀을 아는 것이 구원과는 상관이 없을 지라도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야 하며, 둘째는 이 말씀이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의 확신과는 더욱더 상관이 있으며, 반드시 알아야 할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왜 나에게 필요한가?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여러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과의 문제에 대하여 먼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18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구원의 확신은 믿음의 진수로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가지게 되는
것인가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거나, 감소하거나 중단되는 이유는 나의 신앙에 문제가 있으며, 온전하지
못한 상태임을 증명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견지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확고히 견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로마서 8장 30절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을
보면 먼저 앞서 나오는 단어들을 주목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정하신 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정하신이라고 할 때에 이 단어는 미리 지정하다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이 사용한 이 헬라어 단어는 합성어로 프로는 미리, 앞서를 뜻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호리조 라는 단어로 영어 단어 horizon의
어원입니다. 영어의 horizon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곳과
볼 수 없는 곳을 구분해주고 분리시키는 것으로 수평선, 또는 지평선을 가리킵니다. horizon 내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가 대서양 한복판에서 주위를 둘러본다면 수평선 이 바로 눈에 보이는 곳의 한계가 됩니다. 말하자면 horizon이 하는 일은 한계를 정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한계
내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의 범주 안에 있고 그 한계 밖의 모든 것은 또 다른 범주 안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단어인 프로오라조 미리 정하다로 번역된 낱말은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미리 아시고 이들을 어떤 지평선 혹은 테두리나
한계 안에 두십니다. 우리가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위해 그들을 구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구분해놓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예정하시고 이 특정 목적과 목표를 위해 그들을 구분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특정한 운명을 정해두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면 베드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존재인지를 상기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이 특별하게 소유하시는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 가운데서도
이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들 둘레에 어떤 테두리를 정하시고 그들을
위해 일정한 특별 운명을 정해두셨습니다. 이 용어가 뜻하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이 백성을 마음속에 간직하신 궁극적 운명을 위해 따로 떼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둘레에 어떤 테두리를 정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에도 어떤 테두리를 설정하셨습니다. 그 운명은 바로 이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을 보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이 결국 그 목표, 그
최종적 위치에 들어가도록 정해놓으셨습니다. 이것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예정이라는 용어가 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목표를 정해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목표에 테두리를 그리시고, 그 목표 둘레에 경계선을 그으셨으며, 그
목표 주위에 수평선 을 설정하셨습니다. 그 권역 안에 있는 이들은 오직 이 특별한 백성뿐입니다. 다시 로마서 8장 30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다음으로 살펴볼 용어는 부르시고 라는 뜻에 대하여 입니다. 바울은 29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고 하며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미리 정하신 과 부르시고 라는 단어가 곧바로 연결되어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30절에서 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미리 아시고 그 궁극적 운명을 예정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제는 이것이 우리에게 즉 구원받은 우리에게 유효하게 성취되었으며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 즉 유효한 소명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이 현실적으로 우리와 연결되며 우리에게 효력을 발휘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순서를 주의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심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부르심의 때는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어렸을 적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청장년의 때에 그리고 어떤 이들은 늙은 후에 이 부르심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부르심이 언제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미리 아셨으며,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신 것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부르심이 유효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의롭다 하시고 라고 할 때에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우리가 중생 한 후에 의롭게 된 것은 실제적인 경험된 사실로서만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우리의 의롭게 됨은 미리 우리를 아실 때부터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로 정하실 때부터 우리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강조점이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합니다. 부르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다면 구원의 원인은 우리의 행위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할 때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믿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존재하게 하시는 그 어떤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들,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그 믿음에로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미리 아심으로부터 이런 결과, 즉 믿음이 당연히 뒤따라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에베소서 2장 8-9절절에서 매우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면 에베소서 2장 8-9절의 내용은 분명히 로마서 8장 30절의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논증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구원이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알리기 원합니다. 그 구원은 우리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를 그 궁극적 영화에까지 이끌어줄 이 구원의 서정에 각각의 단계들을 정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 손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늘 불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육신 가운데서 여전히 죄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늘 상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미리 나를 아신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그분이 창세전에 나를 아셨고, 또한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하여 나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제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믿게 된 것이며,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심과 정하심과 부르심의 결과이지 내가 만들어내며 내가 이루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구원의 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를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셔서 의롭게 하신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또한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분께서 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일 뿐만 아니라 성화의 확신입니다. 이 확신을 근거로 하여 우리는 나를 부르신 그분이
내 안에서 그분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고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그분이 나를 빚어 가시도록 순종하며, 그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