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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6.19 17:58

그리스도의 중심성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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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로마서 11절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라고 합니다. 첫 구절의 중요성에 대하여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일반 서신의 경우 즉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경우 맨 앞의 내용은 대부분이 가벼운 인사나 친근감을 표하는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편지를 읽을 때에 중요한 내용을 위해서는 가볍게 받아들이거나 또는 쉽게 건너 띄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단 다른 성경 만이 아니라 특히 서신서에서 그리고 그 중에 바울이 쓴 편지들은 첫 부분은 전체 편지에 대한 의도와 목적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의 경우에서도 1절의 말씀은 가볍게 하는 인사나 또는 더 중요한 내용을 위한 장식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고 여기는 것은 로마서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바른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1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말씀 속에는 어떤 의미들이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의 전체적인 내용은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것인데, 이유는 그는 로마에 아직 가본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로마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을 만난적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물론 로마서 16장에서 로마에 있는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그가 알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에서 만나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1절에 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는 더 중요하고, 더 의미 있고, 더 깊은 진리의 내용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첫 부분인 자신에 대한 소개는 건너 띄어도 된다고 여길 수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는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자신을 여겨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첫 인사를 통하여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이 그들의 중심에 있는지를 보이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첫 문장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는 표현입니다.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 바울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가치에 대하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소개할 때에 가장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것을 먼저 말하며, 앞에 둡니다. 왜냐하면 자랑스러운 것이 항상 앞에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 대하여 처음 대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라는 것을 맨 앞에 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이것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영광스럽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했으면 하며, 자신이 누군지를 이해해 주었으면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기억되며, 인식되며, 생각되어지를 원한 것입니다. 바울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 기적의 사람, 탁월한 설교가, 복음전도자 라는 수식어가 그에게 있지만 그는 그것보다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이 자신을 인식하는 표식이 되었으면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삶의 중심과 사고와 판단과 이해의 모든 것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5절을 보면 [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는 그리스도 라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하여서도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일 뿐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828절을 보면 [ 18: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그는 공중 앞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가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에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것이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어지게 되는 교훈과 우리에게 주어지는 교훈은 로마에 있는 교회나 우리나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라 여겨야 합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표현은 노예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여긴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여겼으며, 그것에 대하여 만족하며,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누군가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슬프거나, 고통스럽거나, 부끄러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도 아니며,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죽으신 하나님이시며, 세상을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 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분의 종이 된다는 사실은 심판에서 이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며, 그분과 함께 왕노릇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바울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노예라는 신분 아래 있다고 가르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을 보면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은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구속은 사단,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노예 아래 있던 곳에서 해방됨을 의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노예로 섬기던 죄에서, 우리를 종노릇하게 만든 사단에게서 우리는 벗어난 것입니다. 왜 간절히 우리는 죄와 사단에서 벗어나야 합니까? 왜냐하면 이생이나 내세나 소망이 없으며, 그것들을 섬기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킬 뿐만 아니라 벗어나게 할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가운데는 죄와 사단과 함께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 정해진 것인데 그러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 가운데서 건져 내셔서 자신의 노예를 삼아 주셔서 죽지 않게 하실 뿐만 아니라 심판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바울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며, 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높여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1절의 두번째 구절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보면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은 노예이지만 특별한 직분을 가지고 있는 즉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노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2절을 보면 [ 10:1-2]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태는 처음에는 그들을 제자로 부르고 그 다음에는 사도 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제자가 다 사도가 아니라는 것이며, 제자라고 해서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된 것은 오직 몇몇의 제자들 뿐입니다. 누가복음 6:12-13절을 보면 [ 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열둘을 사도로 택하시며 칭하셨다고 합니다. 사도란 어떤 매우 특별하고 고유한 직무를 지시하는 징호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란 어떠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라는 단어는 아포스톨로스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보냄을 받은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사도로 임명하신 것은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보냄을 받은 자로 택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사도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데 한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선택을 받아 파송된 자로서 자기를 보내는 자를 대표할 충분한 권위를 입은 자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표지와 증표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1-22절을 보면 [ 1:21-22]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이 구절들은 가룟유다 대신에 사도의 직분을 맡을 자를 선출하기 위해서 선택할 사람에 대한 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한자는 부활을 증언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뵌 자여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특별히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살펴본 12사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도가 되려면 주님 자신에 의해서 분명하고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어떠한 일들을 수행하기 위한 권위와 임무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12절을 보면 [고후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사도의 표로써 보여진 것이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라고 소개하며 이러한 사도로써의 직분을 자신이 받은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통하여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당시에 바울의 사도 됨에 대하여 반대하며, 의심하던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의 경우 바울의 사도권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불인정의 문제는 그가 받은 모든 말씀이 부인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울 개인의 문제가 그가 주님께 받은 말씀을 거부하며,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것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가 받은 사도의 거룩한 직분 속에서 그에게 부여된 거룩한 임무로써 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사도권을 변호하며, 방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임을 바울 만이 증명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 또한 바울의 특별한 사도직을 증거하고 있는데 베드로후서 3:15-16절을 보면 [벧후 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 구절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 서신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받은 지혜로 쓴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바울이 쓴 서신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한다고 합니다. 이 중에 다른 성경과 같이 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하는데 다른 성경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쓴 서신서들이 성경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바울이 쓴 글들이 성경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증언들을 통하여 우리는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믿을 수 있으며 그의 말들이 그 자신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교인들 또한 바울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언 속에서 주시는 모든 말씀이 그를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더불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한량없는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그의 지혜와 지식으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사도가 될 수 없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복음에 대하여 적대적 행위를 하였으며, 복음을 무너뜨리고, 멸망시키려 행동하였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오히려 그를 들어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고 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표현한 것은 그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자비인가를 고백하는 의미인 것은 고린도전서 158-9절을 보면 [고전 15:8-9]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자신을 가리켜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이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삭되지 못한 이라는 표현은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맨 나중 또한 자신이 어떻게 사도로 부르심을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은혜에 대한 완곡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오히려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가 바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라는 의미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을 보면 고전15: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바로 내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이러한 무한하신 은혜로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교회의 직분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은 깊은 곳에서부터 고백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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