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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7.03 08:20

신자가 싸우는 두 개의 전쟁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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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ibn-tdtUzBo


오늘 함께 살펴볼 내용은 신자의 신앙 생활이 담아내고 있는 본질적 요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의 교제를 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은혜를 갚기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서 교회를 다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에베소서 412절을 잘못 가르침으로 그릇 이해하여 따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에베소서 412절을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한다고 합니다. 여기는 이는 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는 목적에 대하여 입니다. 이들로 하여금 성도를 온전하게 합니다. 한글 성경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고 번역함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데 여기에 사용된 전치사의 의미를 위하여로 볼 것인가, 아니면 통하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교회에 대한 봉사 즉 몸으로 하는 어떠한 행위로 세워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일들이 봉사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문맥 속에서 이 봉사는 그러한 말하고 있지 않으며 봉사를 위해가 아닌 봉사를 통하여로 번역되어야 맞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3절과 14절을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까지 또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의 일에 대한 봉사와 섬김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아는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하며, 온전한 사람을 이루지 못합니다. 또한 13절에서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은 교회의 일을 하는 것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으로 가르침으로 되어지는 일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가르치며, 그를 알게 하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온전한 즉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 않게 되며, 요동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자, 목사의 임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를 믿는 다는 사실로 모든 것이 끝이 났으며, 이제 부족한 것이 없으며, 필요한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가르치지는 일과 신자로서의 삶에 대한 더 분명하고 명확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 자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문제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도록 가르쳐주며, 바른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하여 달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과 신앙이 거짓된 것에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를 흔드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며, 여러분들은 그러한 존재들로 인해 신앙과 믿음이 위협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6 10절을 보면 [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 라고 합니다. 우리가 첫번째로 살펴볼 단어는 끝으로 라는 단어로 마지막으로 뜻으로 글을 쓰는 이가 글을 쓰다가 마지막 메세지를 남길 때에 덧붙이고 자 하는 내용 앞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그냥 몇 글자 덧붙이며 마지막 가벼운 인사를 나누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으로 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되는 에베소서의 마지막 내용들은 그냥 단순한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또는 가벼운 첨언이 아닙니다. 문맥 속에서 끝으로 이후에 나오는 말씀 바울이 앞서 말한 내용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필히 이해야 하며 에베소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부분이 무엇인가를 보면 10절에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라는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중심 단어는 강건하여지고 라는 단어입니다. 강건하다 라는 말은 강해진다는 것으로 힘이 세지는 것을 의미하며 부족하거나 적었던 것이 점점 불어나 많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라고 표현함으로 강건함이란 힘의 능력이 점점 증가하며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건하게 되는 힘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 하면 바로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라는 표현을 통하여 강건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힘의 근원이며 강건함의 근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자신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십니다. 강건하여지고 라는 말이 현재 수동형으로 사용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힘의 능력으로 강하게 만들며 부족함이 없는 힘을 부어주셔서 강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 끝으로 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할 때에 이것이 바울에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며 말하기 위함이라는 것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10절에서 성도를 강건하게 하시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 16절을 보면 이 구절은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기도인데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미 여기에서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달라고 하는데 왜 굳이 에베소서 6 10절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주 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라고 합니까?

        그 해답이 바로 끝으로 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 끝으로 라는 단어는 단순한 마지막 인사의 첨언이 아니라 앞의 내용과 연결되지만 그러나 또 다른 내용을 말하고자 하는 연결 단어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신분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의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하고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우리가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며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신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끝으로 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되는 것이며 이것이 앞에서 말한 모든 내용과 더불어 중요하며 반드시 이해하여야 내용이라는 점을 바울은 끝으로 라는 단어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10절을 보면 [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his mighty power. 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라는 말은 이미 앞서 3 16절의 내용과 흡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문제이며 전혀 다른 강건함입니다. 에베소서 3 16절에서는 [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I pray that out of his glorious riches he may strengthen you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in your inner being,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하여지는 것으로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와 연합을 얻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내용인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라고 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말은 앞에서 왜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는 일이 필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에베소서 3:16절의 강건은 내적 싸움에 대한 강건이라고 한다면 6:10절은 외적 싸움에 대한 강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강건이며 내용이 다른 강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마지막으로 다시 중요한 내용을 말할 수 밖에 없던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첨언 이상의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이란 싸우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크게 두 가지의 영적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이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싸우는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인과 싸우고 있는 두 대적들이 있는데 그들이 전혀 멈추지 않기 때문이며 이 대적들은 절대로 지치거나 평화 협정을 맺지 않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1-2절을 보면 [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What shall we say, then? Shall we go on sinning so that grace may increase? By no means! We are those who have died to sin; how can we live in it any longer?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죄에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한다는 것은 죄를 지으며 그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죄에 대하여 우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 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우리는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로마서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잘못된 교리로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 중 하나가 바로 구원파입니다. 한번 구원을 받으면 다시 취소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죄를 지어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 받은 사람은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로마서의 이 말씀이 바로 이들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우리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구절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합니까? 같은 로마서 611-12절을 보면 [ 6:11-12]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In the same way, count y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 Therefore do not let sin reign in your mortal body so that you obey its evil desires. 여기서는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여긴다는 것은 간주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계산하여 생각하고 판단하여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즉 죽은 자임을 받아 들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2절에서는 그 결과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죽을 몸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는 낡아지며 결국 썩어집니다. 이 몸은 영원한 몸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이 이 몸, 육체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에 영원히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왜 이 몸이 썩을 몸이며, 죽을 몸인가 하면 비록 죄에 대하여 우리가 죽었지만 이 몸은 죄의 오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가 우리 죽을 몸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 죽을 몸에 대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전쟁에서는 상황에 따라 잠시 휴전하기도 합니다. 양측의 협의에 의해 휴전을 선포하기도 하고 그래서 적절한 타협이 형성되면 종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싸우고 있는 대적들은 절대로 휴전이 없는 자들이며 절대로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는 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들의 본질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적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맞이하여 싸우는 첫번째 대상은 그리스도인 내부에 있는 죄된 본성입니다.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라고 합니다. 죄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은 우리 죽을 몸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죽을 몸이란 육체를 말합니다. 죄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죄는 항상 호시 탐탐 우리 몸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몸의 사욕에 지배를 당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죄가 자신의 몸을 지배하여 정욕에 사로잡혀 살지 않도록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두 번째의 전쟁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 내부의 공격자가 아니라 외부의 공격자에 의한 싸움입니다. 에베소서 6 11-12절을 보면 [ 6:11-12]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라고 합니다. 바울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라고 합니다. 또한 12절에서 바울은 더욱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에 대하여 말하여 주고 있는데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혈과 육이란 말은 육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면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마귀가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내적 외적 대적인 죄와 마귀와의 싸움이 멈추거나 중단되지 않는 이유는 죄는 그 본성이 적의입니다. 적의라는 적대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 적의는 하나님을 향한 적의로 하나님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하여 적대적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들이 죄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와 싸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죄의 지배아래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가 그 몸의 정욕에 따라 살도록 이끄는 대로 살기에 이 일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마음에는 죄가 싫어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죄는 항상 싸움을 거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죄에 지배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끝이 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죄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죄가 지배하려던 싸움이 멈추게 되는데 이유는 죄가 지배하고자 하는 육체가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새 몸을 입게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신자는 죄가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는 거룩한 몸을 입을 것입니다.

        사단 또한 쉬지 않고 멈추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3 8절을 보면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The one who does what is sinful is of the devil, because the devil has been sinning from the beginning. The reason the Son of God appeared was to destroy the devil's work. 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범죄하였다는 말은 마귀의 본질적 상태를 말해주는데 마귀는 처음으로 범죄하였으며 타락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 죄를 짓는 모든 자는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5:8절을 보면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Be alert and of sober mind.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도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찾는다는 단어 속에서 마귀는 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끝이 없이 안과 밖에 대적을 가지고 있으며 대치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하며 영적으로 강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이 강건해져야 하며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강건함의 필요성은 바로 이 두 대적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상대하는 두 대적은 모두 결코 만만한 세력들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여전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두 세력의 지배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두 세력은 모두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싸움에 대하여 염려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방비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존재 하는 죄가 지배하려는 힘에 대하여 알지 못함으로 방어하지도 싸우지도 못하고 몸의 사욕에 지배를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그리스도인이고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입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는 전혀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니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주일에 예배 당에 나간다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물론 그것 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또한 마귀에 대하여 그와 더불어 싸우는 싸움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공격하는지에 대하여 무지하며 방비하지 않음으로 인해 마귀의 유혹에 빠져 시험에 빠지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한 경우 가롯 유다와 같은 길에 들어서는 경우도 있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터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이해하며 살고 있는 때가 어떤 때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Therefore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when the day of evil comes, you may be able to stand your ground, and after you have done everything, to stand. 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지금은 악한 날입니다. 마귀가 아직도 날뛰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며 쓰러뜨리고 있으며 먹이감을 노리듯이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싸움의 의미를 이해하고 또한 대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면 마귀를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영적 전쟁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면에서 공격하는 죄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공격하는 마귀에 대하여 입니다. 이 두 싸움은 우리가 죽기까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강건함이 필요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또한 마귀의 간계에 대적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하며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도록 구하십시오. 이것이 첫 번째로 이 두 대적에게 싸움을 알리는 신호이자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전쟁을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지지 않도록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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