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NNj-6LiX9yM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에베소서 6장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 보려고 합니다.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이 구절에서 중심을 두고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마귀의 간계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간계란 말은 속임수 또는 교활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과
그의 무리 즉 타락한 천사들은 속임의 전략을 가지고 인간들을 속이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공략하여 무너뜨리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첫째로 왜 그 대상이 인간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처음 등장하여 어떠한 활동을 하며, 일하는가를
보면 가장 먼저 인간에게 접근하여, 인간을 타락시키는 일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단이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행한 속임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사단의 간사한 계략을 보게 되는데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창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Now the serpent was more
crafty than any of the wild animals the Lord God had made. He said to the woman,
"Did God really say, 'You must not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 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고 합니다. 그러한 뱀의 특성이
사단이 이용하기 좋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사단은 어느 정도 짐승 또한 자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짐승 자체가 사단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사단의 주된 목적은 인간이었으며, 첫 사람 아담과 하와 였습니다. 이제 뱀을 통하여 사단이 어떻게 아담과 하와를 속이는가 하면 물음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과 자유의 박탈로 제한되며, 속박된 상태라는 것을 은연중에 마음에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도록 금하셨는가? 하는 질문에서 하나님은 어찌 이렇게 불의 하신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의 자유를 침해하시며, 제한하시며,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기적인 분이시다 라는 것을 마음에 심어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사단의 의도는 너희 자신의 권리를 찾으며, 너희의 이익을 포기하지 말고, 너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살라는
자극과 충동이 있는 것입니다. 즉 너희는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으며,
더 많이 자유로울 수 있으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너희 자신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너의 이익을 손해보지 말고
그 이익을 추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단의 전략 속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단의 활동의 가장 우선적 목적의 대상은 인간이며,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이들이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가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0절을
보면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For if, while we were God's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him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how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shall we be saved through his life!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라고 합니다. 여기서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들로 있었을 때라는 말로 로마 교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과거형으로 너희가 한 때 하나님의 원수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 교인들이 불신자의 상태에 있을 때를 의미합니다. 즉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나며, 원수로 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육신적 후손으로 태어나 죄 즉 원죄라고 불리는 죄의 지배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원죄의 상태라는 것은 사단이 왕노릇하며, 사단의 지배력 아래에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끔찍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사단은 영적으로 인간들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의 육신적 감각 능력으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에베소서 6장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마귀는 간계를 사용하여 전략적으로 자신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속임은 인간 사회에 어떻게 만연되어 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사용합니다. 그것을 경제적 용어로 소비라고 합니다. 소비에는 생존 소비와 생활 소비, 그리고 과소비와 중독 소비가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소비를 가리켜 감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소비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여 살 때에 인간이 소비를 하는 주된 욕구는 바로 감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소비의 주체가 되는 감정은 자신의 주체적 감정이 아니라 주입된
감정에 의해서 소비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마케팅이라는 기술 때문입니다. 마케팅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소비 또한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닙니다. 소비가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착한 소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착한 소비라는 말은 fair trade 공정 무역등의 상품을 구매하거나
또는 재활용 상품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케팅의 기술은 사람들의 감정을 속임으로 소비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결정과 선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면서 자신들이 팔고자
하는 상품을 구매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속임의 기술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전혀 속임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 조차
만들어낸 것이며, 생각이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세상에서 왕노릇하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세상에서
왕노릇을 한다는 것은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귀신들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왜 사람들에게 이처럼 집착하고 지배의 대상으로 삼는가 하면 사단의 가장 중요한 공격의 대상이자 대적하고자
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공격하고자 하는 사단이 하나님을 직접 공격하지 왜 사람을 그 대상으로 하여 범죄하게 하며, 자신의 지배력
아래 두려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을 타락하게 하며, 범죄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이미지 이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타락하게 함으로 사단은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무너뜨리며, 망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차질이 생기며,
사단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타락한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서 죽으실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사단의 지배 아래 있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인간은 하나님을 아들이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사단과 함께 멸망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일하시며, 그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사단은 여전히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다시 에베소서 6장 11절을 보면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마귀의 간계들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마귀의
간계들은 마귀의 다양한 속임수들로 마귀는 한가지 방식으로 인간들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임수는 여러가지이며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 신자나 불신자들에게 속이는 방식을 보면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본문에서 그 때에 즉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어 있을 때에 우리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해하였다는 것이 가리키는 것은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 세상 풍조라는 말은 세상의 사상과 견해와 방법을 따라 살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때부터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즉 그들의 문화적 전통과 습관과 관습을 이어 받으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세상 풍조라는 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 의해서 결정되고 조정된 것으로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함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복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만을 신뢰하고 쫓고, 믿고 사는 세속성이 그 예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는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거나, 모든 종교는 인간이
고안해 낸 위안물이라거나 같다는 사상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다 믿는
것은 같은 것이며,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것은 불신자들이 좋아하며, 선호할 만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과 이러한 사상이 사단에
의해서 고안되어져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며,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려는
사단적 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불신자에게 행사되는 사단의 간계는 누가복음 8장
12절을 보면 [눅
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Those along the path are the ones who hear, and then the
devil comes and takes away the word from their hearts, so that they may not
believe and be saved. 씨가 농부에 의해서 뿌려질 때에 어떤 씨들은
길가에 뿌려지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라고 합니다. 듣기는 들었는데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즉 그 말씀이 그에게 아무런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셋째로는 누가복음 21장 34절을 보면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Be careful, or your hearts will be weighed down with
carousing, drunkenness and the anxieties of life, and that day will close on
you suddenly like a trap.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것들이 마음을 짓누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아래로 누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마음을 눌러 다른 것들을 생각 할 수도 없고 이 상태로
이끌려 살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염려에 지배를 당하여 이끌려 사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분의 말씀 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하며,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든 속임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두려움과 염려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을
보면 [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Keep your lives free from the love of money and be content with what you have,
because God has said, "Never will I leave you; never will I forsake
you."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은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단을 돈을 신으로 만들어버렸고 사람들은 이것을 신으로 섬기며 삽니다. 성경은
돈에 대하여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는 추구하며, 쫓으며, 그것으로
만족을 얻으려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합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는 말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네게 주신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다음에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잊지 않으시기 때문에 족한 줄을 알고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게 된 자들은 어떠한 반응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음절을 보면 [히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So we say with confidence,
"The Lord is my helper; I will not be afraid. What can mere mortals do to
me?"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생활의
염려는 무서움입니다.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무서워하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마태복음 6장 34절을 보면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어떻게 염려합니까? 내일이 내 염려를 어떻게 책임집니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합니다
내일이라는 것이 내 염려를 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염려를 맡아 주는 내일은 내 염려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이 입니다. 내일은 추상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일하는 내일은 바로 내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일은 인간 중 아무도
자신의 날이 아닙니다.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내일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은 내일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의 주인이신 그분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