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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유기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유기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해서 유기 교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유기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 가운데서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베드로전서 2장 7절과 8절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7-8절을
보면 [벧전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Now to you who believe, this stone is precious. But to those who do
not believe,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and, "A stone that causes people to stumble and a rock
that makes them fall." They stumble because they disobey the message-which
is also what they were destined for. 베드로 사도는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는데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는 말씀에서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떠한 운명이 정해져 있는가 하면 그들이 넘어질 것이 정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에 넘어지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있어서 넘어지고 부딪혀 구원을 받는 일에
있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 말씀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들은 정해진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넘어지도록 정해져서 믿지 못하는
것이며,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을
통하여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제외한 자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셨지만 어떠한 자들은 버리기로 작정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유기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기라는 말의 세상적 의미는 버리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버리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떠한 특정한 사람들을 유기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리적으로 유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리심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 예로서 제시하는 인물이 있는데 구약
성경에서 등장하는 바로에 대하여 입니다. 출애굽기 8장 15절을 보면 [출 8: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But when
Pharaoh saw that there was relief, he hardened his heart and would not listen
to Moses and Aaron, just as the Lord had said. 이 말씀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바로가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내기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완강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말씀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 21절을 보면 [출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The Lord said to Moses, "When you return to Egypt, see that
you perform before Pharaoh all the wonders I have given you the power to do.
But I will harden his heart so that he will not let the people go.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미리 앞서 말씀하시기를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 때문에 이
말은 하나님께서 바로를 버리심으로 인하여 그는 이미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즉 유기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완악하게 되었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7장 13절을
보면 [출 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Yet Pharaoh's heart became hard and he would not listen to them,
just as the Lord had said.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7장 22절을 보면 [출
7: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But the Egyptian magicians did the same things by their secret
arts, and Pharaoh's heart became hard; he would not listen to Moses and Aaron,
just as the Lord had said.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이 말 즉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할 것 또한 하나님이 아신 것입니다. 이 두
구절에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술들을 통하여 두 가지 모두가 사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로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완악하고 강팍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며, 순종하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거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강팍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조성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조성하실 수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속에 악한 심정을 창조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하시지도 않고 하실 수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을 보면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When tempted, no one should say, "God is tempting me." For
God cannot be tempted by evil, nor does he tempt anyone; 하나님께서는 악의 창시자가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으시고 결코 그 어느 누구도 시험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을 지으시지도
않고 그 악을 사람의 심령 속에 넣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대한 목적들 위해서
이미 존재하는 것을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악화 시키는 방식은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유기라는 단어의 영어 단어는 Preterition 입니다. 그 뜻은 the action of passing over or disregarding a matter 입니다. 지나치는 행위이며, 또한
무시하는 것입니다. 지나치는 행위 즉 죄인에 대하여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유기라는 말과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유기라는
말은 내가 소유하고 있으며, 애정을 두던 것을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유기라는 말은 내 소유가 아닌 것에 대하여 그냥 두는 것입니다. 그대로
두는 것 즉 완악함을 그 완악함 그대로 두는 것이며, 그 불순종을 불순종의 상태로 두는 것입니다. 바로에게는 10번에 걸쳐서
모세를 통하여 일어난 재앙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회개하기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순종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하며, 완고하게
합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악한 마음이 그 상태로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는 일에 있어서 불순종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창조하셨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실 수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완악하게 지으셨다면 그의 모든 책임은 바로 하나님의 책임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 17-18절을 보면 [롬 9:17-18]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For Scripture says to Pharaoh:
"I raised you up for this very purpose, that I might display my power in
you and that my name might be proclaimed in all the earth." Therefore God
has mercy on whom he wants to have mercy, and he hardens whom he wants to
harden. 바울의 진술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너를 세웠다는 말은 오해 받기 쉬운 표현입니다. 이 말은 내가 너로 하여금 서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원어에서 전달되는 의미는 어떤 사람이 나타나거나 어떤 사건이 무대에 나타나도록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찰스 핫지는 이렇게 번역하였는데 이 목적을 위해서 내가 너를 세웠고 네가 있는 그 곳에 있게 하였다 단번에
너를 제거해 버리지 않고 말이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원어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내가 너를 단번에 제거해 버리지 않고 너를 나타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목적을 위해서 너를 지었다는 뜻으로 즉 창조의 개념을 암시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런 의미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바로는 이 목적을 위해 지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는 어떠 역사적 특별한 시점에 무대의 장면에 나타나게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2장
7-8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7-8절을 보면 [벧전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Now to you who believe, this stone is precious. But to those who do
not believe,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and, "A stone that causes people to stumble and a rock
that makes them fall." They stumble because they disobey the message-which
is also what they were destined for. 이 말씀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들을 이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이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죄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걸려 넘어질 것을 정하셨다면 어떻게
이들이 정하신 것에 반하여 말씀에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게 하는 바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믿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이들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시지 않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범죄한 자들이 받아 마땅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 그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임을 믿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돌이켜 자신의 주인이신 창조주께 돌아가 그분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도록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하나님이 세상을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를 믿는 자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전파하게 하심으로 듣는 모든 자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나오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이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이
전파되어 자신의 귀에 들릴 때에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자신의 완악함을 버리고 거역함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복음을 귀담아 듣지 않으며, 이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의 가르침이나 교훈중 하나라고 여기며,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있고, 아직도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한 기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pass over 하신다면 당신에게는 구원의 기회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당신을 유기하신다면 당신에게는 자신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믿을 수 없는 가운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때에, 즉 복음이
선포되는 그 때에 바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믿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일 당신을 내버려 두신다고 하면 당신에게는 어떠한 구원의 기회가 다시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회를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얻는 기회로 삼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당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의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셔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